황구지천변기행13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한해가 저문다. ‘치자의야(治者意也)’를 새김질하며
번잡한 일들을 미지의 수, X로 대체해 배낭에 넣어 천변산책이다.
정남면 용수교 아래 체육공원에서 양감면 수직교에 이르는 왕복8키로여미터의 천변길로 집근처 송산교에서 4키로미터여 떨어진 곳에서의 출발이다. 둑방길 왼편에는 정남면 용수리, 금복리, 제기리 뜰이 이어가며 그 언저리엔 화성-평택간 고속도로가 뻗어가고, 오른편에 괘랑리, 발산리, 계향리, 귀래리 뜰이 펼쳐져있다.
나름 복장을 단단히 채비하고 나선지라 느슨한 발길과 눈길에 든 사방이 한가롭다. 공놀이 하는 서너명의 청소년들과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부부, 자녀와 한적한 휴일의 편안함을 즐기는 중년 가장, 천내의 천둥오리들을 배경으로 우드볼놀이에 열중인 여섯분 노인들이 체육공원의 겨울을 덥히고 있다.
고즈넉한 길에서 누군가와 마주침은 나름 생각하는 ‘나’를 깨우곤 한다. 따르르 지나치는 자전거, 웃통벗은 채 달려나가는 마라토너, 바사삭 마른 억새풀, 돌아갈 여정을 위해 무리져 나는 기러기떼, 높이 솟은 미류나무 우듬지에 까치 힌마리 등 텅빈 들판에 어울린 천변의 풍경이다. 점점이 걸어가는 겨울나그네의 모습도 둑방길 운치에 한몫이겠다.
얼마전 내린 폭설탓인가? 그리 풍성하던 수풀이 내려앉아 천내의 모습이 훤히 보여 모래톱에 나앉은 통통하게 살찐 오리들을 무심히 헤아린다. 수령이 수십년은 되었을 뽕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둑방길에 늘어섰다. 회색구름 사이로 언뜻언뜻한 햇살이다. 주위 눈끌림에 쉼없이 시간여를 걷다보니 메고온 X는 잊은 채 기억에 저장된 시.공간이 휘리릭이다. 마치 <황야의 무법자> 모습이려! <월든> 호숫가의 ‘소로’ 인게다. 죽장망혜 ‘고산자’ 모습도 상상한다. 영화를 만드느라 여기저기 기웃대며 바삐 지낸 한해다.
흐르는 냇물이 내 마음 같아 어찌 걸림이 있으랴! 그저 그대들 거기에 내 여기 있어 두 손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