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행복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가방 속에 시집 한 권을 넣었다. 고(故) 김남조의 <심장>. 심장이 아프다 했으나, 오늘은 눈이 먼저 뛴다. 의정회 정기모임을 마치고 평생지기와 함께 동해 쪽으로 차를 몰았다. 지인의 부름으로 나선 길, 모처럼 바다를 향하는 여정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말처럼 길은 늘 뜻밖의 선물을 숨겨 둔다. 수년 전, <한반도횡단소나타>를 쓰기 위해 화성에서 강릉까지 이백팔십 킬로미터를 걸었던 기억이 차창 밖 겨울빛 위로 겹쳐진다. 산과 들과 마을이 제 빛을 천천히 되찾는다. 눈에 생기가 도니 심신에 가벼운 날개가 돋는다. 도심을 벗어나서일까. 아니면 빛이 마음을 씻어주어서일까. 강릉. 대관령의 바람, 경포대의 물빛, 동해의 수평선. 고구려 때 ‘하슬라’라 불리던 고장, 큰 바다와 밝음을 품은 이름이 지금도 숨결처럼 살아 있다. 회의를 마치고 명함이 오간다. 이름 석 자가 손에서 손으로 건너갈 때마다 어느 시인의 구절처럼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온다. 한 사람의 일생이 건너온다.” 빛에 드러난 얼굴들. 만난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행복. 길 위에서 마주친 자작나무 숲, 산허리에 흰 숨을
하루 수상 시인 · 영화감독 우호태 점 하나가 길을 내어 선이 되고 선이 서로를 감싸 안아 면이 된다. 그 단순한 이치 하나가 벽에 붙은 작은 껌딱지처럼 떨어지지 않고 마음에 매달려 한 달 내내 나를 즐겁게 한다. 면이 숨을 불어넣어 부피를 얻고 정육면체로 일어서는 순간 닫혀 있던 세계가 열리고 공간은 갈라지며 상상은 별들 사이로 번져 다시 하나, 둘, 셋 숫자의 고향으로 돌아온다. 수학과 철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이마를 짚던 소년은 어느새 여섯 마디 세월을 건너와 그 사유 속에서 번잡한 하루를 벗어 던진다. 오래 묵은 책장 속 곰팡내 밴 말들이 봄볕에 눈 뜬 씨앗처럼 유와 무로, 선과 공으로, 이와 기로 되살아나 옛 철인들의 목소리를 데려온다. 전철은 화성시, 고양시, 서울 충무로와 수원을 잇고 나는 눈을 감은 채 흘러가는 하루의 소리를 듣는다. 구순을 넘어 떠난 부모를 말하던 친구의 담담함, 명대사를 되뇌던 배우들의 웃음, 종친 원로들의 낮은 한숨— “살다 보면 알게 돼” 노랫말 하나가 차창에 기대어 흔들린다. 정육면체에 난 작은 홀, 불쑥 솟은 혹 하나— 그것이 내 삶의 흔적이고 너의 시간이며 우리 모두의 초상이다. 하나, 두울, 셋 들꽃 한 송이가 피기
달하 노피곰 도다샤 시인 · 영화감독 우호태 오전 여섯 시 기상. 편도 오백여리, 세 시간 남짓 걸리는 길을 달려 ‘정신문화의 수도’라 불리는 안동으로 향했다. 간밤에 내린 눈발 탓에 길은 조심스러웠지만, 마음만은 한결 가벼웠다. 재정자립도가 도시의 살림살이를 말해 준다면, 정신문화는 그 고장의 품격을 드러낸다. 반만년의 시간과 고대 사국시대의 화려한 역사로 한반도 곳곳이 문화의 결을 지니고 있지만, 고려와 조선을 관통하며 이어온 안동의 정신문화는 특별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더구나 평생 선비의 몸가짐을 잃지 않던 군대 동기생이 문화원장으로 취임하는 날이기에 설렘은 더욱 컸다. 전임 원장의 발자취를 잇고, 미래 세대와 호흡하는 문화운동을 다짐하는 작은 거인의 모습에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축하객들의 박수가 잊혀진 선비정신이 깨운 듯 장내를 가득 채웠다. 청춘 시절 푸른 제복 속에 담았던 굳건한 국가관, 중·장년의 단정한 한복 차림으로 이어온 삶의 절제. 전쟁사 속 영웅이나 통치자가 아닌, 21세기 문화의 시대에 걸맞은 또 다른 작은 거인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동기 모임 때마다 지역 사랑을 담아 건네던 안동소주와 간고등어 꾸러미, 절제된 몸가짐 속에 배어 있던
소리와 입체공간 생성 알고리즘 시인 · 영화감독 우호태 명절 연휴 동안 일상의 겉껍질을 벗겨내고 오래 붙들고 있던 화두는, 오감을 깨우는 놀이였다. 천재 발명가 박경화 씨가 이끈 <3·9, 소마, 펜토> 홀릭큐브 창의놀이를 체험하는 시간은 사유의 지평을 놀랍도록 넓혀 주었다. 훈민정음을 창제해 어린 백성을 깨우고자 했던 뜻을 떠올리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벽화로 알려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의 손자국에서부터 일론 머스크가 꿈꾸는 화성 탐사에 이르기까지 생각은 거침없이 확장되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와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 속 기호와 형상, 일상에서 들려오는 동물의 소리, 정월 대보름의 윷놀이, 그리고 수원화성 봉화대의 신호 체계까지 — 인류는 점과 선과 면, 몸짓과 소리와 구조를 통해 공동체를 이루어 왔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의 신호였던 소통은 이제 과학과 통신 기술을 만나 시공을 넘어선다. 소리 생성의 알고리즘은 훈민정음에 있다. 스물네 자모가 결합해 1만 4천여 음절을 만들고, 사라진 네 글자를 복원하면 1만 5천여 음절로 확장되는 이 구조는 단순한 문자의 차원을 넘어선 질서다. 발성 기관을 본뜬 자음과 천지인의 원리를 품은 모음이 만나 점이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시인 · 영화배우 우호태 글제는 어느 여가수의 노래 제목에서 빌려왔습니다. 일민 이기택 선생 10주기 추모식을 다녀온 뒤 가슴 깊이 젖어든 한 줄의 선율이기도 합니다. 이른 아침 길을 나서 국립4·19민주묘지 탑 앞에 섰습니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 시간은 묘역을 천천히 돌며 한 사람의 생을 따라 걸어보라는 조용한 허락처럼 느껴졌습니다. 제주에서, 부산에서, 영남과 호남, 충청과 수도권에서— 전국 각지의 발걸음들이 모여 하나의 시간 앞에 섰습니다. 헌법 전문에 새겨진 “4·19 민주이념의 계승”이라는 문장이 그날의 젊은 얼굴들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함께 싸웠던 사람들, 시대를 건너 새로운 정치를 꿈꾸던 동지들, 추모사와 회고담속에 그리움은 서로의 눈빛 속에서 말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정치는 잔재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는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 한다.” 생전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주신 말씀은 지금도 바람 속에서 되돌아와 우리의 등을 조용히 밀어줍니다.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시작된 정치의 길, 거리의 투쟁과 단식, 해외 동포를 향한 교육의 걸음까지— 그의 삶은 한 시대 민주주의의 굽이굽
[ 포에버뉴스 김경순 기자 ] 우리 설날은 내일이래요 시인 · 영화배우 우호태 달력 위에 붉은 숫자들이 길게 이어졌다. 설날을 품은 닷새 연휴다. 토요일부터 시작된 쉼의 시간은 자연스레 발길을 황구지천 둑방길과 가까운 동산으로 이끌었다. 오감이 먼저 다녀온 산책 덕분인지 몸과 마음이 한결 느슨해지고, 겨울 햇살 아래서 비로소 숨 고르는 기분을 얻는다. 설을 앞두고 서둘러 다녀온 성묘와 친척들과의 안부 인사는 시간을 순식간에 접어 넣는다. 사흘이 바람처럼 지나갔다. 세월은 늘 그렇듯 영화 필름 돌아가듯 빠르다. 잠시 멈춰 서서 돌아보면 지나온 길이 겨울 양지처럼 온순하게 다가온다. 바쁘게 살아낸 날들이 모여 만든 따뜻함일 것이다. 경기 남부와 북부 곳곳, 그리고 전국의 지인들에게 새해 인사를 건넨다. 《한반도 소나타》 집필과 《청소년국제폰영화제》를 함께 도와준 이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오른다. 평소 같으면 스쳐 지나갔을 인연들이 명절 앞에서는 또렷해진다. 설악산으로, 지리산으로, 바다로 떠난 가족 여행 소식까지 더해지니 연휴 풍경이 한층 넓어진다. 형님과 함께 찾은 오일장 장터에서는 호떡 하나가 시간을 되돌린다. 꿀이 번지는 달콤함 속에 어린 시절의 명절이 들어
[ 포에버뉴스 김경순 기자 ] 까치밥 – 천변기행 18 시인 /영화배우 우호태 황구지천에 청둥오리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몸짓에 맞춰 물길은 잔잔히 흐르고, 여느 때처럼 옹기종기 모인 오리가족의 모래톱 곁에 가마우지 한 마리, 유독 애처롭다. 몸 울림에 좋다 하여 두 팔을 내저으며 보폭을 넓힌 발걸음은 능안천과 만나는 곳까지 부지런하다. 바람 찬 겨울, 하늘 고가도로 곁 천변의 감나무 곁가지에 까치 한 마리 앉아 까악—깍, 울어댄다. 낯선 몸짓에 대한 경계일까,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 까치밥을 탓하는 걸까. 메마른 인정이 서러운 것일까. 《대지》의 저자이자 193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펄 벅(1892~1973). 그는 경주를 방문해 세상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까치밥과 농부’의 이야기에 깊이 감동했다 한다. 겨우내 날짐승을 위해 남겨둔 까치밥, 들일을 마치고 지친 소를 생각해 달구지 대신 지게에 짐을 나눠 지고 귀가하던 농부의 마음. 공존과 배려가 한국인의 품성임에 놀랐던 것이다. 더하여, 색감과 정감까지 담아내는 소리글자 한글이 ‘어린 백성’을 위해 창제되었다는 사실에 한민족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작가이기도 하다. 펄 벅뿐이랴. 철학자, 시인, 과학자,
국민의 마음을 잃은 리더십에 대하여 훈민정음 서문을 읽다 보면 세종대왕의 깊은 성군의 마음이 절절히 전해진다.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백성이 자기 뜻을 펴지 못하니…” 문자를 몰라 억울함조차 표현하지 못하던 백성을 위해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어 반포한 그 정신은, 단순한 언어 창제를 넘어 통치자의 책무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그것은 권력이 아니라 공감과 소통이었다. 문득 45년 전 기억이 떠오른다. 대학에 갓 입학해 처음 들은 철학개론 수업에서, 교수님이 “철학이란 무엇이고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느닷없는 질문을 던지셨다. 초·중·고 시절 한 번도 발표해 본 적 없던 나는 단상에 서서 다리가 후들거리는 가운데 이렇게 말했다. “법은 악법도 법입니다. 법은 사회규범과 달리 강제성이 있습니다. 철학이란 각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신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 순간이 생생하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과연 어떤 법과 어떤 철학, 어떤 리더십 아래 살고 있는가. 오늘날은 1년의 변화가 과거 10년보다 빠른 디지털 소통의 시대다. 그만큼 리더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분명하다. 공감, 소통, 그리고 대의를 설득하는 정치력이다. 그러나 최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