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1446년, 세종 28년.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하는 한글날이다. 훈민정음.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다. 중국의 글자와 달라 제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백성을 어여삐 여겨 만들었다니, 그 창제 정신이 참으로 고맙다. 글자를 만든 데 그치지 않고 자음과 모음의 원리와 쓰임까지 해례에 담았으니, 그 과학적 깊이와 품격이 놀랍다. 나라를 잃고 제 말과 글마저 억압받던 시절이 있었다. 벙어리 아닌 벙어리로 살아야 했던 그때에도 선각자들의 노력으로 우리말과 글을 지켜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구촌이 하나로 이어지는 시대다. 세계 공용어의 위상은 현실적으로 국력과 깊이 맞물려 있다. 그렇다고 제 말과 글의 가치까지 다른 나라의 힘에 견주어야 하겠는가. 어린 시절 쓰던 입말이 떠오른다. 후라시, 스메끼리, 혼다디, 니쿠사쿠, 사라, 게다…. 그 시절에는 그 말들이 우리네 일상에 자연스레 들어와 있었다. 놀이판에서 주고받던 말도, 어른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말도 하나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컴퓨터, 커피, 하우스, 버스…. 글자는 한글이지만 말의 뿌리는 외국어인 경우가 많다. 거리를 걷다 보면 간판마저 외래어
햇살을 가르며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경국대학교에서 열리는 제14회 역동시조문학상 시상식에 참가하기 위해 이른 아침 안동으로 달려간다. 산등성이를 넘어 뻗쳐오는 햇살이 눈부시다. 오늘 아침에만 그러하랴. 충주 박달재를 지나고, 유명한 부석사를 품은 영주시를 지난다. 세 시간여를 달려 안동으로 향한다. 역동 우탁 선생의 「탄로가」 한 구절이 떠오른다. “백발이 저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어찌 백발만 그러하랴. 세월도, 세상도, 마음도 저마다 지름길을 안다. 때로는 사회의 탁한 기운이 사람의 가슴에 꼿꼿한 기개를 세운다. 인간의 심신 또한 우주의 한 조각이니, 자연의 순환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에게 주어진 섭리인지도 모르겠다. 도심의 번잡함을 벗어나자 산등성이가 길게 이어진다. 그 너머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올올이 흩어지기도 하고, 뭉텅뭉텅 풀어져 내리기도 한다. 얼마 만인가? 묵묵한 산들을 벗 삼아 달리는 찬란한 드라이브다.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나는 일 년에도 서너 차례 이곳을 찾는다. 동방 이학의 시조, 역동 우탁 선생의 후손으로서 문중 어르신들을 뵙기 위해서다. 오늘 시상식에서 만나는 수상작의 제목은 「새벽을 세운 붓」. “새벽에 한 획을 그어 겨레
대학축제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집에서 1km 남짓한 곳에 한신대학교가 있다. 서울 나들이를 할 때면 강남역 3번 출구 가까운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곤 하는데, 그때마다 이 대학 학생들을 만나곤 한다. 한때의 내 모습이 겹쳐서일까. 청춘들의 생기가 빵빵하다. 코앞으로 다가온 국제청소년폰영화제 마무리 점검으로 온종일 체크리스트에 매달렸다. 저녁을 먹고 나니 낮부터 들려오던 방송 소리가 음악으로 바뀌었다. 출력을 높였는지 열린 창문을 넘어 음악이 제법 크게 들려온다. 대충 점검을 마친 터라 그때의 청춘을 떠올리며 평생지기와 함께 축제장으로 나섰다. 정문 인근 주점에는 삼삼오오 젊은이들이 모여 앉아 있다. 언덕 비탈을 올라 축제장에 들어서니 대운동장에 마련된 무대가 조명으로 환하다. 눈부신 빛 속에 앞쪽에는 청춘들이 늘어서고, 뒤편에는 가지런히 놓인 테이블을 둘러싸고 젊음의 시간이 머물고 있다. 뒤켠에서는 구이 냄새가 연신 피어오른다. 공을 기다리는 외야수처럼 후각이 먼저 축제를 받아낸다. AI 사진 촬영기 앞에는 추억 한 장을 남기려는 남녀 청춘들이 줄을 섰다. 마음에 드는 배경을 고르고 찰칵. 그곳에서 집이 조암이라는 청춘도 만났다.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사진 한
서해와 황해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책상 머리맡에 놓인 지도를 바라보다 문득 경기만 일대를 살핀다. 지난여름 화성 관내 왕림고개에서 남양호까지, 발안천 물줄기를 따라 문화기행 영상을 만들었다. 새로운 사실을 찾아낸 것은 아니다. 익히 알고 있던 역사와 지리, 환경의 흔적을 다시 들여다본 것이다. 그러다 문득 묻는다. 왜 남양호일까? 경기만에는 남양만을 비롯해 군자만 등 크고 작은 만이 자리한다. 간척사업으로 바다의 일부가 육지로 바뀌면서 남양호, 화성호, 시화호 같은 호수가 생겨났다. 모두 서해와 맞닿은 물길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에는 이 바다를 황해라 불렀다. 지도를 다시 살피니 국제적으로는 지금도 Yellow Sea, 곧 황해라는 이름이 널리 쓰인다. 우리는 서해라 부른다. 동쪽에 동해가 있으니 우리 땅에서 바라보는 방향으로는 참 자연스러운 이름이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황해라는 이름이 그립다. 황해는 한반도의 서쪽에 놓인 바다이면서 대륙과 한반도, 한반도와 세계를 이어온 오랜 바닷길이기도 하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고려에 이르기까지 강과 바다는 물길이면서 길이었다.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 대동강, 예성강….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고
[ 포에버뉴스 김경순 기자 ] 오진택 경기도의원(더불어민주당·화성9)은 주민들의 일상과 직결된 교통·도로 문제 해결을 위해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의정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신안산선 송산그린시티~대부도 연장 등 광역교통망 확충과 반복되는 도로 침수, 대중교통 부족 등 화성 서부지역의 생활 현안 해결에 힘을 쏟고 있다. 인터뷰를 통해 화성 서부지역의 교통 문제와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앞으로의 의정활동 계획을 들어봤다. 의원님께서 생각하는 현장 중심 의정활동이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에 오 의원은 “의정활동의 출발점은 현장”이라며 “책상에서 보고서를 검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주민들이 어떤 불편을 겪고 있는지는 현장에 가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화성 서부지역은 도시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는 지역과 농어촌 지역이 함께 존재하다 보니 지역마다 필요한 정책이 다르다”며 “도로가 막히는 곳, 대중교통이 부족한 곳, 침수로 반복적인 피해를 보는 곳 등 주민들의 생활 속 민원을 직접 듣고 관계기관과 해결책을 찾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화성 서부지역의 가장 시급한 교통 현안으로는 지역 간 교통 격차 해소를 꼽았다. 오 의원은 “
도서정리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에 작은 도서관이 마련되었다. 아담한 공간이다. 또래 아이들이 한동안 깔깔대며 이마를 맞대고 호기심을 채워갈 곳이겠다. 봉사단 카톡방에 도서정리에 필요한 ‘손길 봉사요망’이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책을 가까이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어떤 책들이 들어와 있을까 하는 호기심도 생겼고, 작은 손길이나마 보태고 싶어 발길을 옮겼다. 체육실 옆, 눈에 익은 공간에 들어서니 이미 아이들과 단지 봉사단의 손길이 분주하다. 탐험심을 키우고 자연을 배우며 인성을 가꾸는 어린이 책들이 즐비하다. 포개놓은 책을 한 권씩 들어 서가에 분류해 꽂아가는 손길과 눈길이 바쁘다. 한아름씩 품에 안고, 손에 받쳐 든 책들. 누군가 이미 읽었거나, 이제 누군가에게 읽힐 책들이다. 옛적에는 책 한 권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책은커녕 글을 필사해 보는 것만으로도 큰 복이었다. 필자의 어린 시절 역시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했다. 요즘은 곳곳에 공공도서관이 있고, 아파트 단지에도 작은 도서관이 들어선다. 스마트폰만으로도 필요한 책을 손쉽게 구매하고 읽을 수 있으니, 글과 책을 접하는 길은 그 어느 때보다 넓어졌다. 필자는 지금도 가끔 책을 소리 내어
로드패션쇼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이곳저곳에서 가을빛 축제가 한창이다. 달리기, 노래자랑, 영화제, 문화제…. 지자체마다 행사가 열려 연휴의 눈소풍을 이룬다. 수원·화성 일대는 물론 서울, 옛 한양에서도 시가를 따라 능행차 대열이 시민들의 눈과 발길을 붙든다. 조선시대 정조대왕의 능행차를 오늘에 재현한 행렬이다. 한양 도성에서 화성까지 이어지는 100리 원행은 구간마다 지자체별 문화행사와 어우러져 가족 나들이의 볼거리가 된다. 무엇보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찾아 나선 길이니 효의 상징으로도 각별하다. 100리 길의 땅울림이다. 만장이 휘날리고, 형형색색의 제복이 빛난다. 갈빛 가을에 어울린 음악대가 행진하고, 문무백관의 행렬이 갈바람을 가르며 나아간다. 문득 궁금해진다. 어떤 보폭으로 걸었을까? 행렬의 대열은 어떻게 맞췄을까? 무슨 음악을 울렸을까? 집 앞 도로를 지나가는 행렬을 보며 평생지기와 함께 집을 나섰다. 며칠 전 한가위에 부모님 묘소를 찾으며 받았던 가을 햇살을 떠올리며 길가에 늘어선 구경꾼들 사이에 섰다. 옛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무술 시연, 건장한 갈색 말, 행진대열을 이루기 위해 제옷을 갖춰 입는 사람들…. 곳곳에 봉사단이 문화제 행사를 알린다
지도자의 역량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개천절을 연원으로 나라의 흥망성쇠를 살피니, 지도자와 참모, 관료와 지성인의 역할이 중요한 요소다. 새삼스러운 것도 없으나, 이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나라도 잃고 국토와 백성은 피폐해진다. 종국에는 시대의 전환을 맞게 된다. 그렇다면 지도자의 진짜 역할은 무엇일까? 결국 당대에 필요한 에너지를 찾아내어 국가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능력이라 볼 수 있겠다. 그 역할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국가건설에 이어 산업화 시대를 관통했던 질문이다. 이제는 조금 다른 질문이 놓여 있다. “AI 시대에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인간의 가치로 남길 것인가?” 아직은 조금 이른 질문일지 모르나, 이미 우리 앞에 놓인 시대의 과제인 게다. 축약하면 대한민국 현대사의 큰 방향은 국가건설 → 산업화 → 민주화 → 세계화 → 정보화 → 문화화 → AI화로 압축할 수 있겠다. 이를 하나의 관점으로 공식화하면, 국력(국가의 힘) = 사람의 에너지 × 제도의 에너지 × 기술의 에너지 × 문화의 에너지 × 외교 에너지다. 지금은 AI가 산업·정보·문화의 에너지를 다시 결합하며 새로운 국가 에너지를 만들어가는 전환기라 볼 수 있
단기 4359년 개천절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오늘은 5대 국경일 가운데 하나인 개천절이다. ‘하늘이 열린 날’이라는 뜻을 품은 개천절은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워 우리 역사에 첫 국가의 문을 열었다는 전승을 기리는 날이다. 서기 2026년에 2333년을 더한 단기 4359년. 반만년 역사로 이어지는 우리 겨레의 깊은 샘인 게다. 오늘에 이른 긴 역사의 뿌리인 게다. 《삼국유사》를 비롯한 여러 옛 기록에 전해지는 단군과 고조선의 이야기는 우리 민족이 오랜 세월 이어온 역사 인식의 한 줄기다. 한글날은 나라말을 기리고, 삼일절은 나라를 잃었던 아픔과 독립의 뜻을 되새기며, 광복절은 되찾은 나라의 기쁨을, 제헌절은 헌법과 법치의 의미를 새긴다. 그 바탕의 먼 연원을 생각하면 개천절은 우리 역사의 출발을 돌아보는 날이라 하겠다. 베란다에 태극기를 내걸었다.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한참 바라본다. 건·곤·감·리의 네 괘가 홍색과 청색의 태극을 감싸고 있다. 태극은 높고 낮음, 오르고 내림이 서로 어우러져 끊임없이 순환한다. 뜻을 하나하나 알지 못하더라도, 어린 시절부터 오늘까지 수없이 바라본 태극기는 어느새 내 삶의 풍경이 되었다. 문득 민들레 홀씨가 떠오른다. 아득
문풍지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문풍지는 문이나 창문의 틈새를 막아 찬바람과 소음, 먼지와 벌레를 막아주는 생활용품이다. 참으로 정감 어린 이름이다. 현대의 아파트 생활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지만, 어린 시절에는 겨울을 맞는 집안일 가운데 하나였다. 여름이면 헐렁한 문틈으로 바람이 드나들어 시원하게 통풍되던 문이었다. 겨울이 오면 달랐다. 찬바람이 문틈을 파고들고 문풍지가 바람에 떨며 운다. 팽팽팽— 한밤의 적막을 흔들어 깨우는 소리다. 바람의 세기가 가늠될 만큼 소리가 커지면 절로 이불을 머리맡까지 끌어당겼다. 새삼 문풍지를 떠올리는 것은 그 소리에도 나름의 운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풍지의 울음은 여인의 한 맺힌 설움 같기도 하고, 사나이가 삼킨 울분을 토해내는 깊은 떨림 같기도 했다. 요즘에는 옛스러운 풍경을 꾸민 음식점이나 박물관 전시에서나 간혹 만난다. 그럴 때면 반갑다. 수숫대며 벼며 콩이며 고구마며 해바라기와 고추가 창밖 가을빛과 어우러진다. 냇둑에 스멀스멀 피어나던 옛 고향집의 풍경이 유리창 너머에 펼쳐지는 듯하다. 팽팽팽— 고속으로 돌아가는 세상살이에서 잠시 걸음을 늦추는 한마당의 쉼이다. 떠오른 추억은 정서적 위무가 되고, 세찬 바람이 한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