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마라톤대회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달려라! 달려! 힘차게 달려! 오늘 아침부터 분위기가 뜨겁네요. 돈키: 그러게. 이른 아침 문을 나섰지. 친구 두 명이 참가했거든. 응원하러 온 거야. 아침 공기가 상쾌하지 않니? 문을 나서는 건 늘 설레. 누군가와 만나는 일이고, 만남은 사랑이니까. 호새: 위대한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기리는 마라톤대회인가봐요? 돈키: 아무렴, 한글은 위대한 지구촌에 으뜸 문자지. IT시대에 더욱 그 우수성이 입증돼 곧 세계 공용어가 될거야. 호새: 와, 하프코스 선수들이 벌써 출발했네요. 응원가도 흥겹고요. “오, 필승 코리아!”에다 “뛰어라 내 다리야~” 노랫소리까지! 기분나게 생일 맞은 참가자를 위해 생일 축하곡도 울리네요. 돈키: 이어서 10km 코스도 출발했구나. 여주답게 참 풍성하지 않니? 남한강, 도자기 축제, 세종대왕의 영릉, 신륵사 같은 고찰들…. “여주를 새롭게! 시민을 힘나게!”라는 슬로건 아래 아침을 힘차게 달려가네. 호새: 드디어 5km 코스도 출발했어요! 뒤이어 휠체어 선수들이 운동장을 돌며 본부석 앞에서 기념촬영도 하고요. 돈키: 현장 크로키 같지 않니? 알록달록한 모자, 제각각의 달리기 폼,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선생님, 오늘은 어디로 가세요? 돈키: 이천에서 경기도 전)시장·군수협의회 정기회의가 있어. 봄나들이라 기분은 들떴는데, 간밤에 내린 눈발이 걱정이네. 호새: 이천은 도자기랑 쌀로 유명한 곳 아닌가요? 돈키: 그렇지. 주먹 얘기로도 이름난 곳이지. 일찍 도착해서 청사 안팎을 둘러보니, 마당에 우뚝 선 일송정 소나무의 기상이 글제(글의 주제)를 담은 듯했어. SK하이닉스 반도체, 경기과학고까지 있으니 24만 인구의 알뜰한 도시가 곧 퀀텀 점프하겠지. 호새: 그런데 ‘이천’이란 이름은 어디서 비롯된 거예요? 돈키: 옛 시장님들 말씀을 빌면 고려 태조 왕건이 복하천을 건너 후백제를 멸하고 통일을 이뤘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어. 또 <주역>에 나오는 중요한 실천 항목 가운데 ‘이섭대천(利涉大川)’이란 설도 있는데, 큰 강을 건너는 듯 험난한 일을 실천해야 이롭다는 뜻이야. ‘이천’이란 이름이 거기서 비롯됐다 하니 새겨둘 만하지. 호새: 회의 분위기가 어떤가요? 돈키: 협회장님 덕담에 이어 현 이천시장의 시정 구상이 차르르 펼쳐졌지. 이천의 멋과 맛이 영사기 돌아가듯 이어졌어. 설봉공원, 테르메덴 같은 힐링 여행지, 서희테
기(氣)를 기(器)로 나타내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기(氣)를 기(技)로 담아낸 그릇이 도자기지. 비취빛 청자, 도예가 심수관, 도자비엔날레… 도자 전통의 맥을 잇는 고을에 가보자꾸나. 호새: 그런데 도기와 자기는 어떻게 다른 건가요? 돈키: 산화소성으로 굽는 게 도기, 환원소성으로 발색을 유도해 구운 게 자기야. 그 환원소성 덕분에 세계적으로 이름난 청자와 백자가 태어난 것이지. 호새: 지역별로도 차이가 있나요? 돈키: 그렇지. 광주는 왕실 도자기를 주로 만들었고, 여주와 이천은 생활 도자기를 많이 생산했어. 지금도 이 전통을 살려 도자기 비엔날레가 열려 명성을 이어가고 있지. 호새: 원래는 토기에서 비롯된 그릇 아닌가요? 돈키: 맞다. 고분에서 발굴되는 토기가 그 증거지. 정착생활에는 식량 저장용기가 필요했으니까. 기술이 발달하면서 햇볕에 말리던 단계에서, 흙에 안료를 섞고 유약을 발라 가마에서 구워내는 경지에 이른 거야. 특히 고려의 상감청자는 기법이 독특해 지금도 국제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높이 평가받지. 송나라 사신 서긍도 『고려도경』에서 찬탄했지. 조선시대엔 청화백자가 이름났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의 후예가 바로 심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긴 시간을 돌며 들은 게 많아요. 돈키: 많은 걸 보아도 결국 단순한 거야. 무엇을 보고 듣던지 전체 속의 한 부분일 뿐. 왜 일어났는지 그 흐름을 살피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게 바로 역사 공부지. 호새: 수어장대(守禦將臺)는 왕궁을 지키는 지휘소 아닌가요? 돈키: 맞아. 여러 산성에 장대가 있지만, 수어장대는 사적 의미가 크다네. 후금, 곧 청나라와 맞서기 위해 도성을 떠나 왕이 머문 궁성이 바로 남한산성이지. ‘수어(守禦)’라는 이름 자체가 말해주잖나. 영화 남한산성에서도 명분과 실리를 두고 갈등하던 인조의 고뇌가 잘 드러났지. 호새: 어렵네요. 돈키님은 어느 쪽이에요, 명분이요? 실리요? 돈키: 그보다 중요한 건, 왜 그 지경까지 가게 되었는가 하는 거야. 임진왜란·정유재란을 겪고 불과 한 세기 뒤에 정묘호란·병자호란이 이어졌지. 전쟁이 하루아침에 일어났겠나? 대비가 부족했음을 돌아봐야지. 무엇보다 백성의 사기가 관건이었어. 삼전도의 치욕이나 전쟁 승패에만 매달리기보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묻는 것이 더 중요하다네. 호새: 결국 일상에서 잘하라는 뜻이군요. 돈키: 그렇지. 우리 범부
수력은 국력이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와, 저기가 팔당대교군요! 하남시 창우동에서 남양주 와부읍을 잇는 다리라면서요? 길이가 935미터라니 꽤 크네요. 돈키: 그렇지. 너비만 해도 24미터나 되지. 저 시원스런 물줄기 좀 봐. 참 유려하지 않니? 호새: 와, 저기 하늘에 떠 있는 건 패러글라이딩이에요? 예봉산에서 날아올랐나 봐요. 꼭 독수리처럼 하늘을 유유히 선회하네요. 저도 저렇게 한 번 날아보고 싶어요. 돈키: 나도 그런 생각 자주 하지. 비가 내린 오후라 더욱 운치 있구나. 발아래로 구름이 스치고, 산과 들판을 내려다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결국 호기심이 꿈으로 자라는 거지. 호새: 그런데 주말이라 그런가요? 자전거 동호인들이 참 많아요. 다 같이 달리니 마치 행렬 같아요. 돈키: 팔당수변이 워낙 수려해서 그래. 탄천, 경안천, 팔당, 춘천으로 이어지는 자전거도로는 동호인들에게 여행길이지. 손 흔드는 모습이 참 정겨워. 호새: 강물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네요. 고대에는 한강을 아리수라 불렀다지요? 고대 삼국이 이곳을 두고 싸웠다면서요. 돈키: 맞아. 또 근세에는 ‘한강의 기적’이란 말이 나올 만큼 한국 경제 발전의 상징이었지. 사실 치수(治水)를
소요유(逍遙遊)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오늘은 또 어디로 가시려구요? 돈키: 동두천이야. 이름만 들어도 뭔가 낯설지? 백두산의 백두는 아니고, 산자락에 기대 선 동네지. 떠오르는 게 뭔가? 소요산 단풍, 미군부대… 그리고 휴전선 냄새가 좀 비릿하게 밴 곳이야. 호새: 오, 묘하게 긴장감이 느껴지는 곳이네요. 돈키: 그렇지. 근데 오늘은 심각한 일이 아니라 전·시장·군수협의회 모임이야. 동두천시청에서 열린다 해서 아침 일찍 길을 나섰지. 차로는 두 시간, 전철로는 쉰 정거장 넘으니 세 시간이야. 호새: 아이고, 긴시간 동안 뭘 하시려구요? 돈키: 독서삼매경이지 뭐. 과학책 하나 꺼내 읽어야지, 아인슈타인이 그러더군.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이해하려 애쓰는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기쁨이다.” 말이 근사하지 않냐? 호새: 와~ 그러니까 호기심이 많을수록 인생이 재미난 거네요. 돈키: 딱 그거다. 느려도 좋으니, 알쏭달쏭한 거 파고들다 보면 세상 보는 눈이 트이는 거지. 호새: 시청사가 참 단정하네요. 돈키: 시청사가 사치스럽진 않으면서도 기품은 있고, 자료를 살피니 축제며 각종 시설과 아트거리. 힐링코스를 알차게 꾸려놨어.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물테마촌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저 강 두 줄기가 만나네요. 여기가 두물머리죠? 돈키: 그래. 북한강과 남한강이 한 몸이 되는 곳이지. 이름도 그래서 양수리라 불려. 만남은 늘 큰 에너지를 만든단다. 음과 양이 만나 생명을 잉태하고, 남과 북이 만나면 통일을 이루듯이. 호새: 물줄기가 합쳐지는 모습이 꼭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 같아요. 돈키: 나도 예전에 둘째 형님이 이곳에 계셔 자주 오곤 했지. 장마 끝 물살은 거셌고, 물안개는 피어올라 장엄했어. 금강산에서 흘러온 북한강과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이 굽이굽이 돌아와 만나는 풍경은 대자연의 극치라 할 만하지. 호새: 수도권 가까이에 이런 한적하고 신비로운 곳이 있다니 놀라워요. 돈키: 맞아. 아침저녁으로 물빛이 달라지고, 안개가 피어나며, 일몰이 붉게 물들면 모든 근심이 녹아내리는 듯하지. 겸재 정선도 이 풍광을 ‘독백탄’에 담아 남겼을 만큼 사랑받아 온 곳이야. 호새: 그래서 사람들이 가족, 연인, 친구와 와서 추억을 쌓는군요. 돈키: 그렇지. 저기 느티나무는 소원을 들어준다 하니, 덤으로 복도 받는 셈이지. 나는 언젠가 이곳에 오래 머물며 물길을 바라보고 싶단다. 호새: 방금 말씀을 들으니 노자의
징검다리 로맨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오늘은 어디로 가요? 돈키: 서종면 오복집. 여기서 스무 리 남짓, 여유로운 길이야. 왼쪽으론 강변 풍경이 이어지고, 오른쪽으론 초목들이 눈길을 어루만져 주지. 호새: 길마저 운치가 있네요. 돈키: 서종대교 지나고 경춘고속도로, 노문삼거리를 건너면 도착이야. 가다 보면 ‘소나기 마을’ 표지판이 눈에 들어오지. 호새: 황순원 선생님 『소나기』… 소년과 윤초시네 증손녀의 이야기, 그 마을이군요? 돈키: 그래.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동네 어귀 우물가처럼 마음에 서성이곤 하지. 단테는 “지구를 움직이는 힘은 사랑”이라 했지만, 나는 우주를 움직이는 것도 결국 사랑이라고 생각해. 호새: 그러고 보니 요즘 노랫말도 사랑 이야기가 대부분이네요. 돈키: 맞아. 누구나 가슴에 묻어둔 그 순정이 삶을 지탱하는 힘이지. 동창회만 가도 러브스토리로 웃음꽃이 피잖아. 누가 누구를 좋아했네, 창문 너머로 바라봤네… 그런 이야기에 다들 다시 소년, 소녀가 되는 거야. 호새: 듣기만 해도 미소가 번지네요. 돈키: 세월이 흘러 자식을 낳고 어른이 되었어도 그 시절의 순정은 여전히 살아 있지. 징검다리, 섶다리, 뒷동산… 잃어버린 줄 알았던
별주부전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지난주엔 그 어려운 성리학 공부했잖아요. 오늘은 머리 식힐 겸 멋진 데 가면 어때요? 하늘은 높고, 호새가 살찌는 가을이 왔거든요! 돈키: 그래, 네 말 들으니 생각난다. 혹시 ‘별주부전’ 아니? 용왕님 약 고치려고 토끼 간 구하러 자라가 뭍에 올라와 토끼랑 수다 떨던 이야기. 토끼가 간 줄 수 없다며 버텨서 째지는 그 기분을 ‘재즈’로 풀려고 자라섬에서 페스티벌을 연다니, 가보자고! 호새: 자라 간이든 토끼 간이든 각자 달린 대로 사는 건데 뭘 거길 간다요? 근데 주인님은 재즈가 뭔지는 아시기는 해요? 돈키: 재즈? 알면 뭐 하냐, 그냥 몸이 먼저 흔들리면 그게 재즈지! 호새: 또 저번처럼 목 뒤로 젖혀 “마이웨이”나 한 곡 뽑으실거요? 돈키: 허허, 말 잘한다. 가을엔 떠나는 거야. 달빛에 들바람 불고, 강물은 물향기 실어 나르고, 솔숲에서 잣향기 은근히 풍기고… 운치가 장난 아니야. 게다가 코로나 스트레스도 훅 날려버릴 거라니까! _휘릭!_ 돈키: 근데 자라라는 놈이 원래 성실하고 지혜롭거든. 요즘 같은 세상엔 딱 맞는 캐릭터야. 자라만큼은 해야지. 넌 홍당무나 봐야 눈이 휘둥그레하지, 충직함은 글쎄~ 호새: 에이,
벌컥과 울컥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벌컥’은 문을 힘껏 열어젖힐 때, 물을 단숨에 들이킬 때 쓰이는 말입니다. ‘울컥’은 가슴속 깊은 감정이 차올라 목울대를 넘어서는 순간을 수식합니다. 청소년국제폰영화제가 어느덧 제4회를 맞습니다. 돌이켜보면, 무식이 용기를 낳았다 할까요. 선후배, 지인, 문화예술·교육 관계자분들을 끊임없이 귀찮게 하고 설득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누구나 손에 쥔 생활도구 ‘폰’을 매개로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깨우고, 자기 존재와 정체성을 확인하며, 나아가 진로에 작은 이정표를 세워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였습니다. 그 첫걸음은, 아마도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듯 ‘벌컥’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입니다. 올해도 8월 31일, 접수가 마감되었습니다. 한 달여의 분주한 일정이 지나갔지요. 해마다 10여 편씩 늘어나는 출품작, 그리고 높아져가는 작품 수준. 심사위원들의 전언만으로도 벌써 마음이 설렙니다. 주변 사물을 향한 눈길, 오감을 깨우는 호기심. “이게 뭐지?”, “한번 해볼까?”라는 물음에서 피어난 첫 생각이 글과 말로 싹을 틔우고, 행동으로 이어져 스스로의 창작품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설렘과 기쁨이야말로 내일을 열어가는 진짜 에너지입니다.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