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콩 네몸짓 놀이와 가위·바위·보 놀이
시인 · 영화감독 우호태
놀이는 배움의 다른 이름이다.
교과서보다 먼저 다가와
몸으로 익히고 마음으로 깨닫게 하는
삶의 첫 스승이다.
반세기 세월을 건너온 이들이라면
마루에 둘러앉아
아가의 재롱에 웃음꽃 피우던 장면 하나쯤은
가슴에 간직하고 있을 게다.
도리도리,
짝짝꿍,
잼잼,
곤지곤지.
작은 손짓과 고갯짓 속에
우주의 질서가 숨어 있었다는 걸
나이 들어서야 알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배우고,
손뼉을 마주치며 ‘관계’를 익히고,
손을 펼쳤다 오므리며 ‘의지’를 깨닫는다.
손끝을 짚으며 ‘존재’를 확인한다.
두뇌는 자라고
정서는 고요해지며
언어는 움트고
사회성은 싹튼다.
나는 이를 편의상
<콩콩 네몸짓 놀이>라 부른다.
마당자락 앞밭에서
콩깍지를 까며 콩콩 뛰놀던 기억,
강낭콩처럼 몽글몽글 여문 추억이
지금도 가슴을 두드린다.
먼 데서 오신 전문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 몸짓들은 유아율동의 뿌리가 되어
지구촌을 향한 새로운 창작 춤사위로
뻗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머지않아 등장할 유아율동이
또 하나의 한류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세상 어디에나 있는 놀이,
Rock–paper–scissors.
가위는 자르고
바위는 버티고
보는 감싼다.
서로 이기고 또 지며
어느 하나도 절대가 되지 않는다.
상생과 상극,
균형과 순환의 질서가
아이들 손끝에서 자연스레 펼쳐진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힘 대신 약속으로
다툼 대신 웃음으로
결정을 배우는 지혜다.
어쩌면 우리는
어린 날 이미
세상을 살아갈 법도를
다 배웠는지도 모른다.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놀아라.”
“학교 가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해야지.”
짧은 두어 마디가
삶의 명심보감이 되어
긴 세월을 이끈다.
여섯 마디쯤 건너온 인생의 언덕에서
서녘 하늘에 번지는 노을을 바라본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대보름날이다.
창밖을 보며 네몸짓을 가볍게 해 보니
오늘도 어릴 적 그 손짓처럼
조용히,
콩콩,
마음이 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