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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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마음을 잃은 리더십에 대하여

 

국민의 마음을 잃은 리더십에 대하여


훈민정음 서문을 읽다 보면 세종대왕의 깊은 성군의 마음이 절절히 전해진다.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백성이 자기 뜻을 펴지 못하니…”


문자를 몰라 억울함조차 표현하지 못하던 백성을 위해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어 반포한 그 정신은, 단순한 언어 창제를 넘어 통치자의 책무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그것은 권력이 아니라 공감과 소통이었다.


문득 45년 전 기억이 떠오른다.
대학에 갓 입학해 처음 들은 철학개론 수업에서, 교수님이 “철학이란 무엇이고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느닷없는 질문을 던지셨다. 초·중·고 시절 한 번도 발표해 본 적 없던 나는 단상에 서서 다리가 후들거리는 가운데 이렇게 말했다.


“법은 악법도 법입니다. 법은 사회규범과 달리 강제성이 있습니다. 철학이란 각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신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 순간이 생생하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과연 어떤 법과 어떤 철학, 어떤 리더십 아래 살고 있는가.


오늘날은 1년의 변화가 과거 10년보다 빠른 디지털 소통의 시대다. 그만큼 리더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분명하다. 공감, 소통, 그리고 대의를 설득하는 정치력이다.


그러나 최근 제1야당 대표의 단식을 바라보며, 그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단식인지, 명분은 무엇인지 많은 국민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무엇을 배우라고 말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단식은 소통이 완전히 단절됐을 때, 목숨을 걸고 호소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과거 지부상소보다도 강한 정치적 행위다. 그렇기에 단식이 반복된다는 것은 곧 정치력의 부재를 의미한다. 내부 결속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대다수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박정희 대통령조차 부마항쟁 당시 계엄을 쉽게 선택하지 못했고, 전두환 정권 또한 대학가의 거센 민주화 요구 속에서 결국 6·29 선언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디지털 첨단 시대를 사는 오늘,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고 이를 둘러싼 무책임한 내각과 극단적 지지 구호, 혐오를 부추기는 현수막들이 난무하는 현실은 국민을 혼란과 피로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많은 이들이 한때는 의구심 속에서도 믿고 동조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깨닫는다. 우리는 속았고, 지금도 여전히 진실보다 선동이 앞서고 있다는 사실을. 이것이 과연 민주공화국의 모습인가.
작게는 지방자치부터, 크게는 제1야당과 집권 세력까지 묻고 싶다.


이 모든 행위가 정말 국민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출세와 권력 유지를 위한 것인가. 정치가 국민의 삶을 비추는 등불이 아니라, 국민을 피로하게 하는 소음이 된 현실이 씁쓸할 뿐이다.
이제 다시 돌아봐야 한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통해 보여준 백성을 향한 진심,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마음을 먼저 헤아렸던 그 자세를.


시대에 따라 역할과 방식은 변해야 하지만, 변하지 말아야 할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화랑도의 정신, 忠·孝·信일 것이다.


정치는 물론 가정에서도, 사회의 모든 리더는 누군가를 이끄는 위치에 있다.
권위가 아니라 소통으로, 명분 없는 극단이 아니라 책임 있는 설득으로.
국민의 마음을 잃은 리더십은 오래갈 수 없다.
깨어나야 할 때다.
— 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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