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하 노피곰 도다샤 시인 · 영화감독 우호태 오전 여섯 시 기상. 편도 오백여리, 세 시간 남짓 걸리는 길을 달려 ‘정신문화의 수도’라 불리는 안동으로 향했다. 간밤에 내린 눈발 탓에 길은 조심스러웠지만, 마음만은 한결 가벼웠다. 재정자립도가 도시의 살림살이를 말해 준다면, 정신문화는 그 고장의 품격을 드러낸다. 반만년의 시간과 고대 사국시대의 화려한 역사로 한반도 곳곳이 문화의 결을 지니고 있지만, 고려와 조선을 관통하며 이어온 안동의 정신문화는 특별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더구나 평생 선비의 몸가짐을 잃지 않던 군대 동기생이 문화원장으로 취임하는 날이기에 설렘은 더욱 컸다. 전임 원장의 발자취를 잇고, 미래 세대와 호흡하는 문화운동을 다짐하는 작은 거인의 모습에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축하객들의 박수가 잊혀진 선비정신이 깨운 듯 장내를 가득 채웠다. 청춘 시절 푸른 제복 속에 담았던 굳건한 국가관, 중·장년의 단정한 한복 차림으로 이어온 삶의 절제. 전쟁사 속 영웅이나 통치자가 아닌, 21세기 문화의 시대에 걸맞은 또 다른 작은 거인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동기 모임 때마다 지역 사랑을 담아 건네던 안동소주와 간고등어 꾸러미, 절제된 몸가짐 속에 배어 있던
소리와 입체공간 생성 알고리즘 시인 · 영화감독 우호태 명절 연휴 동안 일상의 겉껍질을 벗겨내고 오래 붙들고 있던 화두는, 오감을 깨우는 놀이였다. 천재 발명가 박경화 씨가 이끈 <3·9, 소마, 펜토> 홀릭큐브 창의놀이를 체험하는 시간은 사유의 지평을 놀랍도록 넓혀 주었다. 훈민정음을 창제해 어린 백성을 깨우고자 했던 뜻을 떠올리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벽화로 알려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의 손자국에서부터 일론 머스크가 꿈꾸는 화성 탐사에 이르기까지 생각은 거침없이 확장되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와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 속 기호와 형상, 일상에서 들려오는 동물의 소리, 정월 대보름의 윷놀이, 그리고 수원화성 봉화대의 신호 체계까지 — 인류는 점과 선과 면, 몸짓과 소리와 구조를 통해 공동체를 이루어 왔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의 신호였던 소통은 이제 과학과 통신 기술을 만나 시공을 넘어선다. 소리 생성의 알고리즘은 훈민정음에 있다. 스물네 자모가 결합해 1만 4천여 음절을 만들고, 사라진 네 글자를 복원하면 1만 5천여 음절로 확장되는 이 구조는 단순한 문자의 차원을 넘어선 질서다. 발성 기관을 본뜬 자음과 천지인의 원리를 품은 모음이 만나 점이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시인 · 영화배우 우호태 글제는 어느 여가수의 노래 제목에서 빌려왔습니다. 일민 이기택 선생 10주기 추모식을 다녀온 뒤 가슴 깊이 젖어든 한 줄의 선율이기도 합니다. 이른 아침 길을 나서 국립4·19민주묘지 탑 앞에 섰습니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 시간은 묘역을 천천히 돌며 한 사람의 생을 따라 걸어보라는 조용한 허락처럼 느껴졌습니다. 제주에서, 부산에서, 영남과 호남, 충청과 수도권에서— 전국 각지의 발걸음들이 모여 하나의 시간 앞에 섰습니다. 헌법 전문에 새겨진 “4·19 민주이념의 계승”이라는 문장이 그날의 젊은 얼굴들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함께 싸웠던 사람들, 시대를 건너 새로운 정치를 꿈꾸던 동지들, 추모사와 회고담속에 그리움은 서로의 눈빛 속에서 말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정치는 잔재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는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 한다.” 생전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주신 말씀은 지금도 바람 속에서 되돌아와 우리의 등을 조용히 밀어줍니다.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시작된 정치의 길, 거리의 투쟁과 단식, 해외 동포를 향한 교육의 걸음까지— 그의 삶은 한 시대 민주주의의 굽이굽
[ 포에버뉴스 김경순 기자 ] 우리 설날은 내일이래요 시인 · 영화배우 우호태 달력 위에 붉은 숫자들이 길게 이어졌다. 설날을 품은 닷새 연휴다. 토요일부터 시작된 쉼의 시간은 자연스레 발길을 황구지천 둑방길과 가까운 동산으로 이끌었다. 오감이 먼저 다녀온 산책 덕분인지 몸과 마음이 한결 느슨해지고, 겨울 햇살 아래서 비로소 숨 고르는 기분을 얻는다. 설을 앞두고 서둘러 다녀온 성묘와 친척들과의 안부 인사는 시간을 순식간에 접어 넣는다. 사흘이 바람처럼 지나갔다. 세월은 늘 그렇듯 영화 필름 돌아가듯 빠르다. 잠시 멈춰 서서 돌아보면 지나온 길이 겨울 양지처럼 온순하게 다가온다. 바쁘게 살아낸 날들이 모여 만든 따뜻함일 것이다. 경기 남부와 북부 곳곳, 그리고 전국의 지인들에게 새해 인사를 건넨다. 《한반도 소나타》 집필과 《청소년국제폰영화제》를 함께 도와준 이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오른다. 평소 같으면 스쳐 지나갔을 인연들이 명절 앞에서는 또렷해진다. 설악산으로, 지리산으로, 바다로 떠난 가족 여행 소식까지 더해지니 연휴 풍경이 한층 넓어진다. 형님과 함께 찾은 오일장 장터에서는 호떡 하나가 시간을 되돌린다. 꿀이 번지는 달콤함 속에 어린 시절의 명절이 들어
[ 포에버뉴스 김경순 기자 ] 까치밥 – 천변기행 18 시인 /영화배우 우호태 황구지천에 청둥오리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몸짓에 맞춰 물길은 잔잔히 흐르고, 여느 때처럼 옹기종기 모인 오리가족의 모래톱 곁에 가마우지 한 마리, 유독 애처롭다. 몸 울림에 좋다 하여 두 팔을 내저으며 보폭을 넓힌 발걸음은 능안천과 만나는 곳까지 부지런하다. 바람 찬 겨울, 하늘 고가도로 곁 천변의 감나무 곁가지에 까치 한 마리 앉아 까악—깍, 울어댄다. 낯선 몸짓에 대한 경계일까,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 까치밥을 탓하는 걸까. 메마른 인정이 서러운 것일까. 《대지》의 저자이자 193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펄 벅(1892~1973). 그는 경주를 방문해 세상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까치밥과 농부’의 이야기에 깊이 감동했다 한다. 겨우내 날짐승을 위해 남겨둔 까치밥, 들일을 마치고 지친 소를 생각해 달구지 대신 지게에 짐을 나눠 지고 귀가하던 농부의 마음. 공존과 배려가 한국인의 품성임에 놀랐던 것이다. 더하여, 색감과 정감까지 담아내는 소리글자 한글이 ‘어린 백성’을 위해 창제되었다는 사실에 한민족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작가이기도 하다. 펄 벅뿐이랴. 철학자, 시인, 과학자,
국민의 마음을 잃은 리더십에 대하여 훈민정음 서문을 읽다 보면 세종대왕의 깊은 성군의 마음이 절절히 전해진다.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백성이 자기 뜻을 펴지 못하니…” 문자를 몰라 억울함조차 표현하지 못하던 백성을 위해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어 반포한 그 정신은, 단순한 언어 창제를 넘어 통치자의 책무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그것은 권력이 아니라 공감과 소통이었다. 문득 45년 전 기억이 떠오른다. 대학에 갓 입학해 처음 들은 철학개론 수업에서, 교수님이 “철학이란 무엇이고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느닷없는 질문을 던지셨다. 초·중·고 시절 한 번도 발표해 본 적 없던 나는 단상에 서서 다리가 후들거리는 가운데 이렇게 말했다. “법은 악법도 법입니다. 법은 사회규범과 달리 강제성이 있습니다. 철학이란 각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신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 순간이 생생하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과연 어떤 법과 어떤 철학, 어떤 리더십 아래 살고 있는가. 오늘날은 1년의 변화가 과거 10년보다 빠른 디지털 소통의 시대다. 그만큼 리더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분명하다. 공감, 소통, 그리고 대의를 설득하는 정치력이다. 그러나 최근
‘갑질’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정치권과 공공기관, 그리고 일상 곳곳에서 반복되는 갑질 논란은 시민들에게 분노보다 깊은 피로감과 허탈함을 남긴다. 문제의 당사자는 매번 다르지만, 유사한 장면이 끊임없이 되풀이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결국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왜 갑질은 사라지지 않는가. 최근 정치권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김병기 전 민주당 원내대표를 둘러싼 논란은 정치적 지위가 높을수록 언행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 무게를 가지는지를 보여주었고, 강선우 의원의 사례 역시 권한과 관계의 불균형 속에서 상대가 느끼는 압박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를 떠올리게 했다. 또한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은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도덕성과 조직 문화에 대한 감수성이 어디까지여야 하는지를 사회에 묻는 계기가 됐다. 이 논란들의 핵심은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권한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방식으로 행사하고 있는가에 있다. 갑질은 특정 개인의 성격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권한이 책임이 아니라 우위로 받아들여질 때, 그리고 그것을 제어할 문화와 구조가 부재할 때 나타나는 구조적 현상에 가깝다. 이
그대 나의 자랑이어라 시인 / 영화배우 우호태 밝은 사회자의 목소리에 장내가 환하다. 해마다 돌아오는 동문 신년 인사회다. 제꽃을 피울 재학생들 어울린 화음이 청초해, 큰 배움터 문을 나선 지 사십여 해가 지났건만 그 문턱을 밟던 날들이 몽글몽글 떠올라 나는 여전히 설렌다. 태생적 품성인지, 세상과 사람에 대한 끝나지 않는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또 누구의 삶이 내 느슨해진 마음을 일으켜 세울까. 인성과 지성으로 제 자리를 일군 동문들의 고운 무늬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남은 생을 조금 더 진지하게 살아야겠다고 조용히 다짐한다. 지구촌 최빈국에서 오늘날 위상에 이르기까지 몸으로 시대를 견뎌온 60·70·80년대 학번의 선배들 헌신 앞에 후배들은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그 박수는 다시 90년대 이후의 후배들에게로 옮겨가 이제 너희가 비상할 차례라며 힘찬 격려가 된다. 동문회장의 울림 있는 정제된 한마디에 장내는 박수로 가득 찬다. 동문 출신으로 학교 살림의 큰 그림을 그리는 총장님의 청사진, 그 비전에 힘을 보태겠다는 이사장님과 관구장님의 다짐, 제 분야에서 묵묵히 연구에 몰두한 교수진, 후배 장학에 마음을 내어준 동문, 사회 곳곳에서 제 모
인디언 감자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오후 햇살에 호숫가 오가는 새해맞이 발길들이 생동한다. 광교산 기슭 ‘한우리’ 시산제에 참여 후, 버스 종점부터 반짝이는 광교저수지까지 걷는 동안, 사포닌 성분이 풍부하다는 ‘인디언감자’에 대한 선배님의 이야기에 언뜻한 생각의 글발이다. 한민족의 이야기는 버티는 생명력이었다. 햇빛을 보지 못한 동굴 속, 곰은 깨어나 산마늘(*달래-이하 마늘로 사용)을 먹으며 시간을 견뎠다.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를 바꾸는 선택. 그 인내의 끝에서 곰은 사람이 되었다니 그 변신의 서사가 이 땅의 첫 서문인게다. 일찌기 대륙 중원과 해양 역사를 몸에 두른 민족. 몽골의 말발굽이 대륙을 덮을 때, 고려는 바다로 물러나 강화도에 섰다. 도망이 아니라 지연과 저항의 선택이었다. 섬은 고립이 아니라 버티는 공간이었고, 바다는 방패가 되었다. 곰이 동굴에서 시간을 견딘 것처럼, 고려는 섬에서 나라의 맥을 지켰다. ‘물러서며 생존의 길을 택한게다.’ 국가의 울이 무너질 때, 백성은 깃발을 들었다. 조선의 의병은 명령이 아닌 제 양심으로 일어났다. 농부의 호미, 선비의 붓, 상인의 정보가 무기가 되었다. 곰의 서사와 닮은 게다. 외부의 구원이 아니라 내부의
마력에서 매력으로-새해의 축원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어제와 오늘은 한 밤의 등성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 있었다. 그러나 해가 바뀌자 시간은 말의 안장을 다시 고쳐 매었다. 새벽, 우리는 독산으로 향했다. 해맞이는 오래된 의식처럼 반복되었으나 발걸음마다 새해가 실려 있었다. 누가 평가하지 않는 길, 누가 재촉하지 않는 오름, 각자의 소망은 숨처럼 가슴에 담겼다. 동이 틀 무렵 붉은 해가 솟아올랐다. 그 빛은 단순한 광명이 아니라 한 해를 밀어 올리는 힘, 마력(馬力)이었다. 그러나 이 마력은 계량기의 숫자가 아니었다. 땅을 박차는 말의 힘을 넘어 사람을 다시 걷게 하는 마력(魔力)이었다. 병오년, 붉은 해와 붉은 말이 겹쳐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맞물리니 적토마 한 필이 백두대간을 가로질러 달리는 형상이 떠올랐다. 시인은 속으로 읊조렸다. 붉은 해야 솟아라, 백두대간의 기상으로 적토마야 달려라, 그러나 말은 산에 머무르지 않았다. 땅을 달린 말은 끝내 하늘로 몸을 던졌다. 비마가 되고, 천마가 되어 경계를 넘었다. 신화 속에서 말은 늘 역사의 전령이었다. 페가수스는 하늘을 열었고 슬레이프니르는 세계를 건넜으며 부케팔로스와 마렝고는 정복자의 야망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