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화와 꿈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장거리 걷기엔 역시 등산화죠? 흙길, 자갈길, 아스팔트… 다 만나니까. 돈키: 그렇지. 발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장난 아니야. 밑창 두꺼운 신발이 충격을 흡수해줘야지. 호새: 예전에 운동화 신고 걷다가 고생하셨다면서요? 돈키: 2011년 ‘부산–화성’ 도보여정 때 말이야. 추풍령까지 운동화 고집하다가 발바닥에 불나고 물집 터지고… 그 뒤론 무조건 등산화야. 거리와 상관없이. 호새: 여름엔 또 통풍이 문제죠. 돈키: 맞아. 긴 바지에 스타킹까지 끼면 땀이 차서 걸음걸이도 어정대지. 오포 지나면서 길가에 할인 매장에서 반바지를 하나 샀어. 포켓이 여러 개라 참 편하더라고. 호새: 밀짚모자에 선글라스, 토시까지 차림이면… 험한 길 가는 분 같았겠네요. 돈키: 주인 아주머니가 보더니 어디 가느냐고 묻더라고. 안쓰러웠는지 아침에 쪘다며 옥수수 세 자루를 건네주셨지. 그 작은 정이 얼마나 고맙던지. 호새: 어머니가 해주시던 찐 옥수수 같았겠어요. 돈키: 그렇지… 비 오던 날의 냄새까지 떠올랐지. 터미널에 이를 때까지 식당 하나 없어서, 그 옥수수가 딱 든든한 간식이었어. 겨울에도 문 연다니 감사 인사라도 드려야지. 호새: 그런
첫 물음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한화생명 연수원 근처야. 경부고속도로를 건너려면 저 낮은 지하통로로 들어가야 하지. 고개 숙여야 겨우 지나가겠어. 호새: 우기에 물이 찰 것 같은데요? 돈키: 그러게. 조명도 너저분하게… 손볼 데가 많아 보여. 호새: 지금 시간이 두 시 반 넘어겠죠? 돈키: 광주경찰서 근처에서 늦은 점심 먹었지. 식후엔 또 커피 한 잔 했고. 호새: 그래서 탄천변으로 걸어온 거군요. 돈키: 응. 자전거도로 따라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 버드나무 그늘이 길게 드리웠더라고.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 왼편의 도시 소음이 스르르 멀어졌지. 호새: 산책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던데요. 개 데리고 걷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이어폰 끼고 뛰는 사람… 돈키: 그것도 천변의 풍경이지. 요즘 지자체들이 하천 부지에 생태공원을 잘 만드니까 시민들 쉼터도 되고. 호새: 죽전 e마트 앞에서 냇둑을 벗어났죠? 돈키: 맞아. 보도로 올라서 광주 방향 언덕길로 걸었지. 호새: 그리고 그분을 만났군요? 돈키: 그늘 아래 앉아 계신, 한 오십 년 세월을 묵묵히 보냈을 것 같은 분인데, 용인 수지에 산다며 아파트 분양 홍보 일을 한다 하더라고. 걷는 동안 길 안내는
밀짚모자-경부고속도로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드디어 출발이네요, 돈키! 2016년 8월 13일, 오전 11시 30분… 그때 커피숍에서 선배님 제주 생활 이야기 듣고 훌쩍 나온 거죠? 돈키: 그래. 선배의 격려를 등 뒤에 두르고, 한 걸음… 두 걸음… 보무도 당당하게 수원·신갈IC로 향했지. 호새: 오늘은 밀짚모자 쓰셨네요? 도시 한복판에서 보기 쉽지 않은데요. 돈키: 햇볕을 가리기엔 그만이야. 그런데 묘하지? 밀짚모자만 보면 농부 아버지가 떠올라. 배바지에 지게 걸고 굽은 등으로 살아오신… 호새: 그러고 보니 중절모 쓰던 시대도 있었죠. 요즘은 야구모자에 영어 이니셜이 대세고요. 돈키: 그렇지. 만약 밀짚모자에 ‘다저스’, ‘타이거’, ‘트윈스’ 같은 이니셜을 박으면 어떤가 상상도 해보고 말야. 국제경기장에 밀짚모자 등장이라… 호새: 흰 고무신 대신 등산화, 배바지 대신 등산바지… 완전 변신하셨네요. “한여름의 밀짚모자 중년 나그네.” 돈키: 허허. 오늘 목표는 광주 시외버스터미널이야. 약 28km. 첫날이라 몸을 천천히 풀어야 하는데… 강행하는 걸로 했지. 호새: 청명역 지나서 흥덕교차로, 한화생명 연수원, 죽전 e마트… 여정이 길군요. 돈키: 활시위
8일간의 여정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선생님, 요즘 마음이 답답하다고 하셨죠? 울고 싶은 날도 있다구요? 돈키: 그럴 땐… 걸어야지. 내게 묻고 내가 내린 처방이야. 부산에서 병점까지 천여 리를 걸었던 그때가 기억나. 김해, 밀양, 대구, 추풍령, 영동, 대전, 천안, 평택, 오산… 그 지명들이 몸에 새겨졌었지. 호새: 1000리 길을요? 그 여정 기록을 잃어버렸다고 늘 아쉬워하셨잖아요. 돈키: 그래도 일부 남아 있더군. 내 심신에 새겨진 애무 같은 시간. 그 뒤로 화성 전역을 걷고, 황구지천을 따라 서해대교까지 물길 여행을 했지. 그 소회를 모아 <화성소나타 >1·2·3권도 출간했어. 가끔 펼쳐보면 생활의 활력소리 돼. 호새: 그래서 이번엔… 한반도 횡단? 돈키: 자꾸 맴돌던는 생각이었어. 서해 화성에서 동해 강릉까지, 700여리길에 8일간의 여정. 한여름, 뜨거울수록 마음이 더 분명해져서 그런지…. 호새: 50대에 이런 여정이면 행운이죠. 돈키: 회사원으로, 정치인으로, 교육자로 살아오며 참 많이 미뤄둔 일들이지. 제2의 삶을 살겠다고 변명으로 여기저기 걷고, 마라톤도 뛰게 되었어. 그러다 보니 기행문도 쓰게되고. 호새: 이번 여정은 어떤
구름에 달 가듯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선다. 빛과 어둠이 서서히 맞바뀌는 이 계절, 또 한 해가 조용히 저물어간다. 생활일기이자 마음의 사초(史草)처럼 적어온 편지글은 어느덧 400여 회를 지나 500회를 향한다. 년초의 다짐에서 시작해 친목회, 동창.동문회, 강연회, 세미나와 박람회, 산행과 마라톤, 영화제와 대중집회까지…. 그 모든 자리에 남긴 발자국은 곧 한 해를 살아낸 내 몸의 궤적이자 마음의 지도였다. 아이와 학생, 친구와 노인… 스쳐간 얼굴들은 그 자체로 한 시대의 결을 이루었다. 2025년이라는 시간의 무늬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었음을, 겨울밤 문득 멈춰선 채 되새겨본다. 굳이 분별하자면 의미를 나누는 일이 무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깊어가는 이 밤, 되돌아보니 마음 한 켠이 은근히 젖는다. 정국의 격랑 속에서도 나름의 호흡과 보폭으로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스스로도 조용히 대견해진다. 십년 남짓 문인이라는 문패를 달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적어온 글들. <돈키호태유람>의 보정을 거쳐 <한반도소나타> 연재도 마무리했다. 이제는 화성에서 강릉까지 280킬로미터의 여정을 담은 <
고래잡으러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정말 몇 곳만 훑고 지나가네요. 돈키: 갈 수 없으니 여기서 맺어야지. 호새: 영변 약산에 꽃소식이라도 전하고 간다면요? 돈키: 애이불비(哀而不悲)… 소월의 심정으로 떠나는 거야. 가고 싶은 데가 어디 한두 곳이냐. 중강진의 살얼음 같은 추위도 맞아보고 싶고, 묘향산 휴정대사를 뵙고도 싶지. 돈키: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 “삶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 조각 뜬 구름이 흩어짐이다. 구름은 원래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살고 오고 감이 그와 같다―” 서산대사 ‘해탈시’야. 깨달은 바를 입적하며 남긴 노래란다. 호새: 그래서 젊을 때 더 부지런히 살아야겠지요. 돈키: 경험이 녹아 시공간을 초월한 노래야. 범부들은 젊어 채우고, 늙어 비워 정신의 포만을 얻는다고나 할까. 호새: 북한 유람해보니 어떠세요? 돈키: 나에겐 미지의 땅이라 상상에도 한계가 있지. 들녘 말뚝에 매인 소처럼, 정해진 공간에서 날아본들 어디까지 가겠어. 그저 선인들이 남긴 자취 중 지금도 도드라진 발길을 더듬어 본 것뿐이야. 가슴속 깊은 데선 두터운 벽에 가려진 길들이 자꾸 걸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누구의 주재런가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호새야, 드디어 금강산이야! 호새: 예전엔 남북교류의 상징이라 온 지구촌이 들썩였죠. 그런데 ‘빵!’— 단 한 방에 길이 막혔다면요. 돈키: 이 노래 알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늘 속삭이면서도 사랑한다 말 못하고…” 우리 만남처럼 빙글빙글 도는 세월 속 풍경이야. 호새: 철따라 이름을 달리하는 산이라죠? 돈키: 그래. 봄엔 금강산, 여름엔 봉래산, 가을엔 풍악산, 겨울엔 개골산. 금수강산의 밝은 기운이 솟구치는 천하제일 명산이지. 호새: 이름 따라 찾는 사람도, 머무는 이도 헤아릴 수 없겠네요. 돈키: 셀 수 없지. 그런데 말이야, 코로나 지나고 사고 없이 지능 괜찮은지 테스트나 해볼까? 세 문제당 한 사람 몫! 호새: 하세요.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눈 감고 상상 중입니다. 돈키: 금강산 주봉은? 호새: 비로봉! “그리운 금강산” 가곡 2절에 나오잖아요. 갑자기 웬 퀴즈예요. 돈키: 일만이천봉이라는데 누가 세어봤을까? 호새: 그럴 바엔 단풍나무 몇 그루인지 맞춰야죠. 돈키: 그럼 값은 얼마일까? 영국은 셰익스피어와도 안 바꾼다는데. 호새: 한 봉우리라도 부동산으론 값을 매기기 어렵죠. 돈키: 신선봉에
신고산이 우루루루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신고산이 우루루루, 함흥차 가는 소리 들리면 구공산 큰애기 또다시 보퉁이 싼다지. 삼수갑산 머루·다래야 엉키고 설켜 있는데… 나는 언제 님을 만나 얼크러설크러질까—” 이 맛이 신고산타령이지. 호새: 신고산 가락까지 나오니… 나진·선봉 경제특구는 그냥 지나치겠네요? 돈키: 서너 곳만 훑고 남하하자며? 북청군 한번 들렀다가 어여 월남하자구. 호새: 혹시 물장수 하려구요? 돈키: 하하, 북청물장수는 옛 소리야. 하지만 함경도엔 우리 귀에 익은 얘깃거리가 그득하지. 호새: 파인 김동환 시인의 새벽을 깨우던 그 북청물장수 발걸음도 이제는 전설이겠죠. 돈키: 파인 시인이 함경도 출신이라 그 감각이 남달랐어. 고향 사람들이 삼청동 약수를 길어다 파는 모습, 마치 신사업을 시(詩)로 그린 셈이야. 호새: 이북분들 재테크가 타고났나 봐요. 강물도 팔고, 약수도 팔고. 요즘엔 ‘백두산’ 생수도 나오던데요? 돈키: 그래, 수완 하나는 으뜸이지. 수방도가로 번창했다던데— 생수 회사의 원조라 해도 틀린 말 아니야. 앞서갔어, 시대를. 호새: 그런데 북청 하면 사자놀이 유명하잖아요? 한반도에도 사자가 살았던 건가요? 돈키: 아랍을 지나
그리운 내 님이여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내님을 싣고 떠나던 그 배는 어데로 갔소, 그리운 내님이여.” 1938년 김정구 선생이 부른 눈물젖은 두만강이야. 여섯 마디 넘으면 귀에 익은 노래지. 호새: 독립운동 나가느라 두만강 건너간 님을 그리는 노래네요. 돈키: 사람 살아가며 가장 힘든 게 뭘 것 같아? 호새: 먹고 사는 게 제일 힘들죠. 돈키: 그리움도 그 가운데 하나지. 내 힘으로 해소가 안 되잖아. 고향이든 연인이든, 갈 수 있고 볼 수 있으면 무슨 문제겠어. 상사병은 약도 없지. 님을 보내놓고 그리움이 얼마나 컸겠어. 이승에서 못 풀면 영혼도 떠돌걸. 호새: 그 그리움이 삶의 버팀대 아닌가요? 돈키: 그건 겪어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이지. 호새: 백두산에 내린 빗방울 한 방울은 압록강으로, 다른 한 방울은 두만강으로 흐르니 결국 남해에서 만나겠죠? 돈키: 한 어미가 낳았으니 가능할 수 있지. 호새: “엄마 찾아 삼만리” 마르코 형제처럼 물방울 형제인가요? 시점을 고조선 시대로 해볼까요? 상봉 시점은 언제로 할까요? 돈키: 감상에만 젖어서는 안 돼. 세상 녹록치 않아. 훼방꾼이 많으니 길조심부터 해야지.
푸른 정기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하늘연못, 천지에 가보셨어요? 돈키: 난 못 갔지만 주변 분들이 사진을 많이 보내오지. 민족의 영산이라 마음만으로도 높이가 2,744미터, 깊이가 384미터쯤은 되나싶어. 언젠가는 가겠지. 호새: 하늘과 땅(天地), 하늘 연못(天池), 하늘 근원(天元), 하늘의 명(天命)… 말 자체가 큰 기운을 담고 있어요. 돈키: 그렇지. 하늘과 땅 사이에 한반도가 있고, 그 상징이 바로 백두산이지. 호새: 1990년엔 조훈현 9단과 유창혁 4단이 한복을 입고 천지에서 기성전 이벤트 대국도 하더군요. 돈키: 흑백의 세계가 하늘 아래 놓인 셈이지. 바둑판 중앙을 천원(天元)이라 부르는 것도 그 까닭이야. 옛 기원에서는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 “대마불사(大馬不死)” 같은 말도 많이 들었는데, 알파고 이후엔 또 달라졌어. 호새: 요즘엔 대마보다 대호(大虎)가 더 귀하죠. 구석에라도 자기 모습은 펼쳐 살아야 하니까요. 돈키: 맞아. 백두산 호랑이는 사라졌지만 그 기백은 남아 있어. 내도 맹호부대 출신이야. 어느 분은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를 두고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 차리면 산다”는 뜻이라며 웃으셨지. 호새: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