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새마을운동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요즘 건강운동이 화두라더니, 형님은 벌써 오래전부터 몸이 생활 자체였죠? 돈키: 우리 중·장년 세대는 따로 운동이 필요 없었지. 초·중학교는 걸어서 다녔고, 고등학교도 집에서 수원 시내까지 8km를 자전거로 통학했어. 대학 다닐 땐 서울까지 한 시간씩 서서 다녔고. 호새: 그 시절엔 자리 양보가 미덕이라며요? 돈키: 그게 일상이었어. 군대가서 더 했어. 아침구보, 산지훈련에 20kg 군장 메고 80km, 200km 행군까지… 그 덕분에 다리가 알아서 단련됐지. 주말엔 조기축구, 등산, 장거리 걷기, 마라톤이 기본이었고. 호새: 듣기만 해도 체력이 국력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요즘도 등산, 골프, 승마, 수영, 걷기, 마라톤, 자전거 여행… 다들 종류별로 즐겨요. 돈키: 국민소득이 3–4만 달러쯤 되면 자전거와 걷기, 마라톤이 취미가 된다는 말이 있어. 초등학교 동창 00도 자전거 여행 가자고 권하곤 하는데, 아직은 따라 나서지 못했지. 호새: 군대동기들도 동호회를 만들어 자전거 타던데요? 밴드에 사진이 자주 올라오던데. 돈키: 전국 어디든 자전거로 갈 수 있는 시대야. 아직 정비할 곳도 많지만, 몸으로 지역의 역
수력이 국력이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돈키님, 저기 보이는 다리가 팔당대교죠? 물길이 환하게 트였네요. 돈키: 그래. 하남 창우동에서 남양주 와부읍 팔당리를 잇는 다리야. 길이만 935미터, 폭도 24미터. 비 내리던 오후에 여기서 바라보는 풍경이 제법 멋져. 저기 봐, 예봉산에서 패러글라이딩 뜨는 사람들. 독수리처럼 하늘을 원을 그리며 선회하지? 호새: 정말 悠悠 하네요. 저도 한 번 저렇게 날아보고 싶어요. 산과 들판을 내려다보는 기분은 어떤 걸까요? 돈키: 누구나 품을 만한 꿈이지. 팔당 수변이 워낙 수려하니 사람들도 많이 몰려와. 주말이면 자전거 동호인들이 무리지어 달리고, 마주칠 때마다 손 흔들며 인사하곤 해. 탄천–경안천–팔당–춘천으로 이어지는 이 코스는 동호인들에겐 여행길이지. 호새: 팔당호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을 보면 마음이 오래 머물러요. 돈키: 고대엔 한강을 ‘아리수’라 불렀지. 그리고 삼국이 각축하던 중심이기도 했고. 근세엔 ‘한강의 기적’의 무대였어. 정치를 ‘치수(治水)’라고도 하지 않나. 법(法)도 물 수(水)자에 갈 거(去)자가 들어간 회의문자고. 결국 국력도 물을 잘 다스리느냐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야. 호새: 그런 의미
상상이 세상을 바꾼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축구 보다가 출발이 늦으셨다면서요? 9시 반인데, 오늘 30km 코스가 괜찮겠어요? 돈키: 길이 부른다는데 괜찮고 말고. 경안천에서 팔당대교 지나 양수리까지 이어 걸으면 돼. 준비물도 진열대처럼 척척 정리해놨으니 걸음만 내딛으면 돼. 호새: 그런데 천변 풍경이 유난히 산뜻하네요. 어젯밤 비 때문일까요? 돈키: 오감(五感)이 밤새 쉬었는지 생기가 돌아. 광주시청 지나 상번천 삼거리까지 6km는 경보하듯 훅 지나왔어. 중부고속도로 교각 밑에 그늘? 천국이지. 배낭 베고 누워 바람 맞는 맛. ‘사서하는 고생’이라 더 편하다니까. 호새: 그래도 30km면 장거리죠. 마라톤처럼. 돈키: 그 마라톤 말인데… 매년 서너 번씩 풀코스 도전해. 지친 사람들이 골인점을 향해 비틀비틀 가는데, 응원들이 “돈 주고 뛰라면 안 뛸 거야!” 하고 웃지. 그런데도 달리는 건, 하고 싶은 일이니까 고통도 즐거움이 되는 거야. 호새: ‘마지못해 하는 사람’,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 ‘즐기는 사람’… 그런 차이가 세상을 바꾸는 건가요? 돈키: 그렇지. 증기기관, 전구, 컴퓨터… 다 상상의 발명품이지. 상상은 즐거울 때 튀어나와. 그런
등산화와 꿈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장거리 걷기엔 역시 등산화죠? 흙길, 자갈길, 아스팔트… 다 만나니까. 돈키: 그렇지. 발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장난 아니야. 밑창 두꺼운 신발이 충격을 흡수해줘야지. 호새: 예전에 운동화 신고 걷다가 고생하셨다면서요? 돈키: 2011년 ‘부산–화성’ 도보여정 때 말이야. 추풍령까지 운동화 고집하다가 발바닥에 불나고 물집 터지고… 그 뒤론 무조건 등산화야. 거리와 상관없이. 호새: 여름엔 또 통풍이 문제죠. 돈키: 맞아. 긴 바지에 스타킹까지 끼면 땀이 차서 걸음걸이도 어정대지. 오포 지나면서 길가에 할인 매장에서 반바지를 하나 샀어. 포켓이 여러 개라 참 편하더라고. 호새: 밀짚모자에 선글라스, 토시까지 차림이면… 험한 길 가는 분 같았겠네요. 돈키: 주인 아주머니가 보더니 어디 가느냐고 묻더라고. 안쓰러웠는지 아침에 쪘다며 옥수수 세 자루를 건네주셨지. 그 작은 정이 얼마나 고맙던지. 호새: 어머니가 해주시던 찐 옥수수 같았겠어요. 돈키: 그렇지… 비 오던 날의 냄새까지 떠올랐지. 터미널에 이를 때까지 식당 하나 없어서, 그 옥수수가 딱 든든한 간식이었어. 겨울에도 문 연다니 감사 인사라도 드려야지. 호새: 그런
첫 물음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한화생명 연수원 근처야. 경부고속도로를 건너려면 저 낮은 지하통로로 들어가야 하지. 고개 숙여야 겨우 지나가겠어. 호새: 우기에 물이 찰 것 같은데요? 돈키: 그러게. 조명도 너저분하게… 손볼 데가 많아 보여. 호새: 지금 시간이 두 시 반 넘어겠죠? 돈키: 광주경찰서 근처에서 늦은 점심 먹었지. 식후엔 또 커피 한 잔 했고. 호새: 그래서 탄천변으로 걸어온 거군요. 돈키: 응. 자전거도로 따라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 버드나무 그늘이 길게 드리웠더라고.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 왼편의 도시 소음이 스르르 멀어졌지. 호새: 산책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던데요. 개 데리고 걷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이어폰 끼고 뛰는 사람… 돈키: 그것도 천변의 풍경이지. 요즘 지자체들이 하천 부지에 생태공원을 잘 만드니까 시민들 쉼터도 되고. 호새: 죽전 e마트 앞에서 냇둑을 벗어났죠? 돈키: 맞아. 보도로 올라서 광주 방향 언덕길로 걸었지. 호새: 그리고 그분을 만났군요? 돈키: 그늘 아래 앉아 계신, 한 오십 년 세월을 묵묵히 보냈을 것 같은 분인데, 용인 수지에 산다며 아파트 분양 홍보 일을 한다 하더라고. 걷는 동안 길 안내는
밀짚모자-경부고속도로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드디어 출발이네요, 돈키! 2016년 8월 13일, 오전 11시 30분… 그때 커피숍에서 선배님 제주 생활 이야기 듣고 훌쩍 나온 거죠? 돈키: 그래. 선배의 격려를 등 뒤에 두르고, 한 걸음… 두 걸음… 보무도 당당하게 수원·신갈IC로 향했지. 호새: 오늘은 밀짚모자 쓰셨네요? 도시 한복판에서 보기 쉽지 않은데요. 돈키: 햇볕을 가리기엔 그만이야. 그런데 묘하지? 밀짚모자만 보면 농부 아버지가 떠올라. 배바지에 지게 걸고 굽은 등으로 살아오신… 호새: 그러고 보니 중절모 쓰던 시대도 있었죠. 요즘은 야구모자에 영어 이니셜이 대세고요. 돈키: 그렇지. 만약 밀짚모자에 ‘다저스’, ‘타이거’, ‘트윈스’ 같은 이니셜을 박으면 어떤가 상상도 해보고 말야. 국제경기장에 밀짚모자 등장이라… 호새: 흰 고무신 대신 등산화, 배바지 대신 등산바지… 완전 변신하셨네요. “한여름의 밀짚모자 중년 나그네.” 돈키: 허허. 오늘 목표는 광주 시외버스터미널이야. 약 28km. 첫날이라 몸을 천천히 풀어야 하는데… 강행하는 걸로 했지. 호새: 청명역 지나서 흥덕교차로, 한화생명 연수원, 죽전 e마트… 여정이 길군요. 돈키: 활시위
8일간의 여정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선생님, 요즘 마음이 답답하다고 하셨죠? 울고 싶은 날도 있다구요? 돈키: 그럴 땐… 걸어야지. 내게 묻고 내가 내린 처방이야. 부산에서 병점까지 천여 리를 걸었던 그때가 기억나. 김해, 밀양, 대구, 추풍령, 영동, 대전, 천안, 평택, 오산… 그 지명들이 몸에 새겨졌었지. 호새: 1000리 길을요? 그 여정 기록을 잃어버렸다고 늘 아쉬워하셨잖아요. 돈키: 그래도 일부 남아 있더군. 내 심신에 새겨진 애무 같은 시간. 그 뒤로 화성 전역을 걷고, 황구지천을 따라 서해대교까지 물길 여행을 했지. 그 소회를 모아 <화성소나타 >1·2·3권도 출간했어. 가끔 펼쳐보면 생활의 활력소리 돼. 호새: 그래서 이번엔… 한반도 횡단? 돈키: 자꾸 맴돌던는 생각이었어. 서해 화성에서 동해 강릉까지, 700여리길에 8일간의 여정. 한여름, 뜨거울수록 마음이 더 분명해져서 그런지…. 호새: 50대에 이런 여정이면 행운이죠. 돈키: 회사원으로, 정치인으로, 교육자로 살아오며 참 많이 미뤄둔 일들이지. 제2의 삶을 살겠다고 변명으로 여기저기 걷고, 마라톤도 뛰게 되었어. 그러다 보니 기행문도 쓰게되고. 호새: 이번 여정은 어떤
구름에 달 가듯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선다. 빛과 어둠이 서서히 맞바뀌는 이 계절, 또 한 해가 조용히 저물어간다. 생활일기이자 마음의 사초(史草)처럼 적어온 편지글은 어느덧 400여 회를 지나 500회를 향한다. 년초의 다짐에서 시작해 친목회, 동창.동문회, 강연회, 세미나와 박람회, 산행과 마라톤, 영화제와 대중집회까지…. 그 모든 자리에 남긴 발자국은 곧 한 해를 살아낸 내 몸의 궤적이자 마음의 지도였다. 아이와 학생, 친구와 노인… 스쳐간 얼굴들은 그 자체로 한 시대의 결을 이루었다. 2025년이라는 시간의 무늬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었음을, 겨울밤 문득 멈춰선 채 되새겨본다. 굳이 분별하자면 의미를 나누는 일이 무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깊어가는 이 밤, 되돌아보니 마음 한 켠이 은근히 젖는다. 정국의 격랑 속에서도 나름의 호흡과 보폭으로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스스로도 조용히 대견해진다. 십년 남짓 문인이라는 문패를 달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적어온 글들. <돈키호태유람>의 보정을 거쳐 <한반도소나타> 연재도 마무리했다. 이제는 화성에서 강릉까지 280킬로미터의 여정을 담은 <
고래잡으러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정말 몇 곳만 훑고 지나가네요. 돈키: 갈 수 없으니 여기서 맺어야지. 호새: 영변 약산에 꽃소식이라도 전하고 간다면요? 돈키: 애이불비(哀而不悲)… 소월의 심정으로 떠나는 거야. 가고 싶은 데가 어디 한두 곳이냐. 중강진의 살얼음 같은 추위도 맞아보고 싶고, 묘향산 휴정대사를 뵙고도 싶지. 돈키: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 “삶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 조각 뜬 구름이 흩어짐이다. 구름은 원래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살고 오고 감이 그와 같다―” 서산대사 ‘해탈시’야. 깨달은 바를 입적하며 남긴 노래란다. 호새: 그래서 젊을 때 더 부지런히 살아야겠지요. 돈키: 경험이 녹아 시공간을 초월한 노래야. 범부들은 젊어 채우고, 늙어 비워 정신의 포만을 얻는다고나 할까. 호새: 북한 유람해보니 어떠세요? 돈키: 나에겐 미지의 땅이라 상상에도 한계가 있지. 들녘 말뚝에 매인 소처럼, 정해진 공간에서 날아본들 어디까지 가겠어. 그저 선인들이 남긴 자취 중 지금도 도드라진 발길을 더듬어 본 것뿐이야. 가슴속 깊은 데선 두터운 벽에 가려진 길들이 자꾸 걸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누구의 주재런가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호새야, 드디어 금강산이야! 호새: 예전엔 남북교류의 상징이라 온 지구촌이 들썩였죠. 그런데 ‘빵!’— 단 한 방에 길이 막혔다면요. 돈키: 이 노래 알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늘 속삭이면서도 사랑한다 말 못하고…” 우리 만남처럼 빙글빙글 도는 세월 속 풍경이야. 호새: 철따라 이름을 달리하는 산이라죠? 돈키: 그래. 봄엔 금강산, 여름엔 봉래산, 가을엔 풍악산, 겨울엔 개골산. 금수강산의 밝은 기운이 솟구치는 천하제일 명산이지. 호새: 이름 따라 찾는 사람도, 머무는 이도 헤아릴 수 없겠네요. 돈키: 셀 수 없지. 그런데 말이야, 코로나 지나고 사고 없이 지능 괜찮은지 테스트나 해볼까? 세 문제당 한 사람 몫! 호새: 하세요.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눈 감고 상상 중입니다. 돈키: 금강산 주봉은? 호새: 비로봉! “그리운 금강산” 가곡 2절에 나오잖아요. 갑자기 웬 퀴즈예요. 돈키: 일만이천봉이라는데 누가 세어봤을까? 호새: 그럴 바엔 단풍나무 몇 그루인지 맞춰야죠. 돈키: 그럼 값은 얼마일까? 영국은 셰익스피어와도 안 바꾼다는데. 호새: 한 봉우리라도 부동산으론 값을 매기기 어렵죠. 돈키: 신선봉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