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물음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한화생명 연수원 근처야. 경부고속도로를 건너려면 저 낮은 지하통로로 들어가야 하지. 고개 숙여야 겨우 지나가겠어.
호새: 우기에 물이 찰 것 같은데요?
돈키: 그러게. 조명도 너저분하게… 손볼 데가 많아 보여.
호새: 지금 시간이 두 시 반 넘어겠죠?
돈키: 광주경찰서 근처에서 늦은 점심 먹었지. 식후엔 또 커피 한 잔 했고.
호새: 그래서 탄천변으로 걸어온 거군요.
돈키: 응. 자전거도로 따라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 버드나무 그늘이 길게 드리웠더라고.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 왼편의 도시 소음이 스르르 멀어졌지.
호새: 산책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던데요. 개 데리고 걷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이어폰 끼고 뛰는 사람…
돈키: 그것도 천변의 풍경이지. 요즘 지자체들이 하천 부지에 생태공원을 잘 만드니까 시민들 쉼터도 되고.
호새: 죽전 e마트 앞에서 냇둑을 벗어났죠?
돈키: 맞아. 보도로 올라서 광주 방향 언덕길로 걸었지.
호새: 그리고 그분을 만났군요?
돈키: 그늘 아래 앉아 계신, 한 오십 년 세월을 묵묵히 보냈을 것 같은 분인데, 용인 수지에 산다며 아파트 분양 홍보 일을 한다 하더라고. 걷는 동안 길 안내는 몇 번 받았지만… 처음으로 그때가 통성명한 순간이었지.
호새: 뭐라고 물어보던가요?
돈키: 배낭에 꽂힌 깃발을 보고선 “어디로 가세요?” “왜 걸어서 갑니까?” “날도 뜨거운데 고생 많겠어요” 하고 묻더라고.
호새: 사람의 첫 질문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조금씩 드러나는 법이죠.
돈키: 맞아. 그래서 첫 만남, 첫 물음이 더 특별한 거야.
호새: 뭐라고 대답했어요?
돈키: 그냥 “걸어요.” 그 한마디였지.
호새: 너무 담백한데요?
돈키: 그 사람도 그걸 눈빛으로 읽었어. 때론 말보다 눈빛이 더 많은 걸 말해 주거든. 살아온 세월은 말의 허식도 가려 보게 하거든.
호새: 그래도…폭염속 장거리 도보라니, 보통 일은 아니죠.
돈키: 그렇지. 하지만 그런 난관을 통과하며 정신이 오히려 고요해져.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거잖아. 이런저런 설명은 사족일 뿐이지.
호새: 결국엔 그 질문이 돌아오는 거네요. “왜 사니?”
돈키: 그래. 그 흔한 물음이지만, 답은 늘 새로워.
호새: 이번엔 뭐였나요?
돈키: “우주에 하나 뿐인 나, 그 나를 피워내기 위해 걷는다.”
호새: …그게 사는 이유라면 충분하네요.
돈키: 같이 사진 한 장 찍고, 이웃 동네니까 언젠가 술 한잔하자고 했지. 자리를 정리하자 오포읍 가는 길을 알려줬어.
호새: 그래서 그쪽으로 걸어간 거군요?
돈키: 응. 유진레미콘 수지공장 방면으로 발걸음을 옮겼어. 길은 계속 이어지니까. 인생길도 그런 셈이지.
<인생>
묻고 ?
깨닫고 !
바라보고.
………….『그대가 향기로울 때』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