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산성 둘레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조선 선비들은 유람길마다 시 한 수를 남겼다지요. 이곳이 사방이 트여 시 한 수 어떠세요? 돈키: 그래, 곳곳에 기행시와 서체, 무용담이 전해오지. 그게 다 인생길의 멋 아니겠느냐. <독산성에서> 한걸음 두걸음 머언 발길들 불어라 들바람 고개 너머로 금암리 선인들 머문 쉼터에 천년의 고인돌 고요 하구나 진달래 개나리 고운 몸단장 독산성 둘레길 노을이 지면 솔숲에 울리는 말울음 소리 그 이름 부르니 세마대로세 꽃뫼에 서린 애끊는 사부곡 화산뜰 감도는 황구지 물길 오신 곳 어느 뫼 어데로 가나 노을속 홀로 걷는 나그네여 달뜨는 밤이면 고향 가려나 눈감아 달려도 마음이 앞서 꿈엔들 잊으리오 내 고향 땅 죽미령 눈물꽃 젊은 넋이여 사방에 뻗어난 너른 큰길에 뜻세워 글읽는 배움터 불빛 어제를 돋우어 내일을 여니 온세상 밝혀 갈 등불이로세 —--졸저<한반도소나타>에서 호새: 돈키님, 이쯤이면 김삿갓 선생 못지않은 예인 아니겠소? 돈키: 글쎄, 주변 환경을 알면 누구나 한생각 들어설게야. 어찌 세상사가 제 뜻대로만 되더냐. “황하지수천상래…. 조여청사모성설…”을 인생을 노래한 청련거사 이백이나 방랑 시인 난고
세심대(洗心臺)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사방이 탁 트여 시원하네요. 한 바퀴 돌아볼까요? 돈키: 그래. 우리 세대에겐 초등학교 시절 소풍장소로 익숙한 곳이란다. 이 산성은 백제 시대에 쌓은 성인데, 정상엔 ‘세마대(洗馬臺)’라 불리는 정자가 있어.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말을 씻겼단 전설로 그렇게 불린 거지. 호새: 아, 예전에 문화탐방 모임 따라 왔던 기억이 나요. 돈키: 그렇지? 이곳에 서면 고대에서 현대까지 이어진 역사가 한눈에 들어와. 동쪽으론 삼성반도체 화성단지와 동탄 신도시가, 그 옆으로는 붓끝처럼 뾰족한 필봉산이 보이지. 남쪽으로는 금암리 지석묘군과 물향기수목원, 공자를 모신 궐리사도 자리 잡고 있단다. 서쪽은 서봉산 너머로 석양이 스며드는 물길이 서해로 흘러가니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아. 북쪽으로는 황구지천 건너 화산뜰이 펼쳐지고, 그 위로는 미국 존슨 대통령이 다녀간 흔적을 기념한 ‘존슨동산’이 있지. 조금 더 가면 정조의 사부곡이 서린 융건릉과 원찰 용주사가 자리하고 있어. 저 멀리 수원 광교산과 팔달산에서 발원한 수원천이 수원비행장 아래에서 황구지천과 합쳐져 넓은 들을 가로지르며 흐르는모습이란다. 송산·양산·안녕뜰의 풍경이 너르게
제부도 연가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아버지, 여긴 하루에 두 번 물길이 열린다면서요? 신기해요. 돈키: 그래, 제부도야. 이름난 섬이란다. 저기 매바위며 고운 백사장은 명사오리라 부를만 하잖니? 산 위에서 맞는 밤바다의 적막은 세사에 찌든 영혼이 정화되는 심연에 이르게 하지. 마치 밤하늘 빛나는 별이 등대처럼 태고적 부터 걸어온 내게 가야 할 삶의 좌표를 일러준단다. 호새: 와… 시상이 절로 떠오르겠어요. 돈키: (미소 지으며) 맞아. 내 청춘 시절, 바로 이곳에서 노래를 만들었거든. 들어볼래? :돈키: (바다를 바라보며 노랫말을 읊조린다) <제부도연가> 나 홀로 찾아 왔어요 님이 그리워 하루에 두번 가슴을 연다는 제부도 길을 잃었소 바람 불었소 정녕 돌아올순 없나요 그대와 사랑을 속삭이던 매바위엔 눈물만 흐른다오 아아~ 보이나요 작은섬에 저 외로운 등대 들리나요 밤바다 울리는 파도소리가 내 영혼의 눈물인 것을 이젠 알것 같아요 사랑도 미움도 아픔이란걸 둘이 만나 산다는 의미를 둘이 만나 하나되어 살아가는 의미를….. ……졸저 <한번도소나타>국학자료원 2021년 11월 호새: (숨죽이며 듣다가) …가슴이 찡하네요. 돈키: 임마, 장
지도자의 정체성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관되게 유지되는 고유한 실체”다. 안으로는 흔들리지 않는 동일성이며, 밖으로는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고유한 빛, 존재의 등불이겠다. 지도자에게 정체성이란 말과 행동이 하나로 이어지는 힘, 신념과 통찰이 삶으로 구현되는 무게다. 정체성이 없는 정치 지도자는 그저 스쳐가는 바람일 뿐이다. 지금 정치의 광장은 소란하다. 여권은 브레이크 없는 질주요, 야권은 전당대회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돌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그 목소리 속에서 국민이 듣고자 하는 방향은 잘 보이지 않는다. 국민은 외양간을 단단히 고쳐 수레의 한축을 담당해주길 고대하건만, 한 지붕 아래 다른 빛깔들이 모인 탓에 흐려지고 있는 비전을 강조하면 울림이 있을게다. 세계 경제는 폭풍우 속에 있다. 기업은 살기 위해 껍질을 벗기고, 서민은 치솟는 물가와 불안한 일상에 가슴을 조인다. 어느 기업 총수가 강조한 말이 떠오른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 그만큼 절박한 시대이건만. 정치권의 언어는 여전히 가벼운 공방이다. 민생의 절규와 정치권의 언어 사이에 깊은 골이 생겼다. 정치가는 원래 국민을 설득하고, 국민을 깨우며,
알라딘 요술램프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와, 바닷길 따라 달리다 보니 여기 화성호 안길이네요. 그런데 저기 보이는 게 현대자동차 연구소 맞죠? 돈키: 그렇단다. 원래는 바닷가였는데, 방조제가 들어서면서 뭍으로 변했지. 그런데 그 땅 위에 세계 자동차 문화를 이끄는 두뇌들의 연구소가 자리 잡고 있으니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구나. 호새: 화성에 자동차 관련 시설이 꽤 많네요? 돈키: 마도에는 성능시험장이 있고, 우정에는 기아자동차 공장, 그리고 남양에는 현대·기아자동차차 연구소가 있지. 마치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반도체·IT 기업으로 가득하듯, 화성의 남서부 지역은 자동차 산업으로 가득하단다. 그래서 나는 인근을 **모터밸리(Motor Valley)**라고 부르고 싶어. 호새: 모터밸리라… 멋지네요! 그런데 왜 하필 글제가 알라딘 요술램프예요? 돈키: 요술램프처럼 연구소에서 새로운 모델이 ‘펑! 펑! 펑!’ 하고 터져 나오잖니. 알라딘 램프에는 자동차가 없었지만, 이곳 화성에서는 세련된 자동차가 튀어나와 지구촌에 인기짱이잖아. 창조의 즐거움이란 정말 대단하지 않니? 호새: 그런데 방조제 공사로 사라진 포구들도 있죠? 돈키: 맞아. 호곡선창, 왕모대 같은 옛
웰빙섬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바다를 바라보며) 가슴이 울렁울렁해요. 저 수평선… 끝이 보이지 않네요. 돈키: 수평선은 늘 그리움을 낳는 법이지. 호새야, 시 한 편 읊어보겠니? 호새: 네, 화성시 서편 끝자락에 있는 작은 섬…<국화도>란 시에요. <국화도> 어서와 사는 게 무겁지… 그래도, 웃어야지 노을처럼 마음을 뉘어봐 몸 부수는 파도소리 들릴 거야 갈매기도 속울음 울고 있잖아 아득히 긴 세월이나 들고나는 저 검푸른 멍마저 바람에 씻긴 작은 몸뚱이마저 아침햇살에 눈이 부셔 불러도 손짓해도 뱃길 떠나는 섬색시 마냥 점점이 멀어 가는데 해당화 필 무렵 돌아오려나 눈꽃송이 날리면 오시려나 네 생각에 가끔은… 눈물 날 거야 온 세상이 깜깜해도 네 안에 등대가 되어 나, 여기서… 널 기다릴 거야 돌아봐주련… 딱, 한 번 한 번만 불러 볼게 내 사랑… 그대… 국화도여! ………….. 졸저 <화성소나타3>, 2015년 9월 호새: (숨을 고르며) …어때요? 돈키: 호새야, 네 목소리에 바람이 묻어 있네. 아마 그 섬이, 네 마음을 다 들었을 거다. 노을 속에 섬 그림자가 길어지고, 그 길 위로 물결이 네 그리움의 그 자리까지 데려
연인의 불타는 가슴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호새야, 지명이란 게 참 묘하지 않냐? 미래를 여는 힘이기도 하고 말이지. 호새: 그러게요. 그런데 예전엔 ‘화옹호’라고 불렀다면서요? 돈키: 맞다. 화성의 ‘화’와 옹진의 ‘옹’을 합쳐서 화옹호라 했었지. 화성 땅인데 옹진 이름이 붙은 게 좀 이상했어. 지금은 ‘화성호’로 불리니 다행이지. 호새: 여기 꽤 크네요. 돈키: 우정읍 매향리에서 서신면 궁평리까지 물막이 공사로 만든 호수야. 17.3㎢, 드넓지? 시화호처럼 사람과 자연이 어떻게 어울려 살 수 있을까… 모두의 숙제였지. 호새: 여기도 ‘바다농장’이 있네요? 돈키: 그래. 호수 상단에 대형 토마토 생산시설이 있지. 지역 농협들이 힘을 합쳐 운영한다고 하더군. 요즘 농업이 6차 산업으로 바뀌고 있잖아? 생산부터 유통, 마케팅까지 전문성을 갖추면 화성 원예농업에 큰 전기가 될 거야. 호새: 저기 태양광 집광판도 있네요? 돈키: 응. 신재생에너지 교육장 같아. 돋보기로 종이를 태우던 어린 시절 놀이 기억나냐? 그 초점의 원리를 여기서 쓰는 거지. 옷을 태워서 할머니께 혼난 기억도 난다, 하하. 호새: 방조제가 참 길어요. 돈키: 직선으로 9.7km. 해류의
남양황라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호새야, “남양황라”라는 말 들어본 적 있니? 호새: 황라… 황금빛 무언가를 뜻하나요? 좀 시적인데요. 돈키: 맞아. 옛 남양군, 남양만에서 이름을 빌려 장안 들판의 가을 황금물결을 표현한 거지. 가을이면 황금빛 들판이 참 장관이라 <화성팔경>에 선정되었는데 요즘들어 환경오염 탓에 빛이 바래 안타까워. 호새: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 곡식이 익어가는 냄새가 섞인… 그런 풍경이겠어요. 돈키: 그렇지. 발안천과 금곡천이 만난 물길이 남양호로 흘러들고, 주변 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지. 가지런히 정리된 들판길을 걷다보면 마치 삶의 주인공이 된 듯 자신을 돌아보게 돼. 호새: 듣기만 해도 고요하고 평화로워요. 돈키: 얼마 전 큰아버지랑 다녀왔는데, 한적한 길을 로드바이크 동호인들이 달리더라. 마라톤 훈련 코스로도 참 좋을 것 같더구나. 우리도 다시 가기로 했지. 호새: 그 들판이 마치 사람의 인생 같군요. 돈키: 맞아. 황금빛으로 물든 가을 들판은 장년기의 풍요로움과 닮았지. 벼를 벤 텅빈 들판은 노년의 아름다운 비움과 같아 그 비움 속엔 채움에서 느낄 수 없는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단다. 호새: 결국 젊은 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