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잡으러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정말 몇 곳만 훑고 지나가네요.
돈키: 갈 수 없으니 여기서 맺어야지.
호새: 영변 약산에 꽃소식이라도 전하고 간다면요?
돈키: 애이불비(哀而不悲)… 소월의 심정으로 떠나는 거야. 가고 싶은 데가 어디 한두 곳이냐. 중강진의 살얼음 같은 추위도 맞아보고 싶고, 묘향산 휴정대사를 뵙고도 싶지.
돈키: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
“삶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 조각 뜬 구름이 흩어짐이다.
구름은 원래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살고 오고 감이 그와 같다―”
서산대사 ‘해탈시’야.
깨달은 바를 입적하며 남긴 노래란다.
호새: 그래서 젊을 때 더 부지런히 살아야겠지요.
돈키: 경험이 녹아 시공간을 초월한 노래야. 범부들은 젊어 채우고, 늙어 비워 정신의 포만을 얻는다고나 할까.
호새: 북한 유람해보니 어떠세요?
돈키: 나에겐 미지의 땅이라 상상에도 한계가 있지. 들녘 말뚝에 매인 소처럼, 정해진 공간에서 날아본들 어디까지 가겠어. 그저 선인들이 남긴 자취 중 지금도 도드라진 발길을 더듬어 본 것뿐이야.
가슴속 깊은 데선 두터운 벽에 가려진 길들이 자꾸 걸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개인의 욕망? 이념의 벽? 관습? 무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 구조?
더 나아가선 우주의 음양조화인가…
끝없이 이어지는 이 물음 자체가 의미인 걸까?
호새: 낙엽 떨어지는 소리에도 세상 물리가 트인다 하던데요.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에서 신공을 펼치고, 서희 특임장관이 담판 외교로 강동육주를 얻었다죠.
이런저런 발자취에 눈물 고이고 빗물 고여서 강이 되는 법입니다.
이즘엔 학계와 기관 교류 덕에 사료도 꽤 새롭게 밝혀지더군요.
쭉 가시면 돼요. 구도자와는 다른 길을 걷는 상상 유람입니다.
백두대간에 제때 진달래·개나리 피고, 뻐꾸기 울고, 고라니도 뛰어다녀요.
모두 제 모습대로 제공간(諸空間)에 살다 가는 거죠.
돈키: 달리는 공부보다 세상 공부를 더 했구나.
호새: 어젯밤 별자리 보는데, 오랜 어둠 뒤 천마총의 천마도가 하늘로 날아오르대요. 페가수스 자리에서 빛날 거예요.
앞일은 늘 ‘새옹지마’라 하지요.
돈키: 너랑 역할을 바꿔야겠어.
호새: 세상 뒤바뀐 일 많아요. 그마저 질서지만 준비가덜돼 문제일 뿐이죠.
돈키: 역지사지가 필요한데… 올해 사자성어 ‘아시타비(我是他非)’도 그걸 걱정하는 거야.
호새: 서산대사 뵈었으니 사명대사도 뵈러 가야죠?
돈키: 세상을 품은 분들이라 큰 걸음 남기셨지… 답답하니, 동해 바닷바람이나 쐬러 가자.
호새: 날개 꽉 잡으세요. 가슴이 울렁거릴 걸요.
돈키: 그래, 동해 너머 울릉도로 가볼까?
호새: 자, 떠납시다―고래 잡으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