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 속에 숨겨진 구조의 비밀 –홀릭큐브4 시인·영화배우 우호태 전통놀이에는 구조의 원리가 담겨있다. 아이를 가만히 바라본 적이 있는가. 아이는 이유 없이 웃고, 이유 없이 몸을 움직인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도리도리), 손을 마주치며 소리를 낸다(짝짜꿍). 단순해 보이는 이 움직임 속에는 이미 질서가 숨어 있다. 좌우의 반복은 균형과 방향을 만들고, 손의 접촉은 리듬을 낳는다. 리듬은 흐름이 되고, 흐름은 구조로 이어진다. 잼잼, 곤지곤지 또한 같다. 움직임이 연결되고, 연결이 쌓여 구조가 된다. 이제 시선을 넓혀 보자. 윷놀이는 우연과 선택이 만나는 구조다. 던짐은 확률이고, 말의 이동은 필연이다. 그 선택은 관계를 만들고, 판 전체의 흐름을 바꾼다. 369놀이는 시간 속 구조다. 숫자는 흐름을 만들고, 규칙은 긴장을 만든다. 그리고 특정 순간, 우리는 반응한다. 중요한 것은 계산이 아니라 흐름 속에서 규칙을 읽는 감각이다. 정리해보면 이렇다. 아이의 몸짓, 손놀이, 윷놀이, 369놀이까지— 모두 다른 듯하지만 하나의 원리로 이어진다. 움직임 → 연결 → 구조. 그 구조는 공간뿐 아니라 시간 속에서도 작동한다. 우리는 이것을 배우지 않았다. 그저 놀았을
세상은 물질이 아니라 관계로 이루어졌다-홀릭큐브3 시인.영화배우 우호태 지난 글(435)에서 우리는 물었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물질이라고 답한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들, 우리는 그것을 세계의 실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시선을 조금만 바꾸면 다른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무는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보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무가 된다. 길 또한 마찬가지다. 걷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길이 된다. 말 역시 듣는 이가 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이처럼 세계는 고정된 물체의 집합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구조이다. 그렇다면 이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이에 대한 설명과 이해를 위해 세 가지 단순한 개념을 떠올려 보자. 첫째, 비어 있음이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가능성의 자리다. 둘째, 연결이다. 흩어져 있던 것들이 서로 이어질 때 비로소 관계가 생겨난다. 셋째, 구조이다. 연결이 쌓이고 반복되면서 눈에 보이는 형태가 만들어진다. 이 흐름을 정리하면 이렇다. 즉, 가능성은 연결을 통해 관계가 되고, 관계는 구조로 드러난다. 이는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원리다. 흥
우리는 왜 생각을 잘 못할까 -홀릭큐브2 시인.영화배우 우호태 지난 글(434)에서 필자는 창의적 사고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손으로 흙을 일구듯, 생각 역시 직접 부딪히며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짚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는 왜 생각을 잘하지 못할까.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운다. 문제를 푸는 법, 정답을 고르는 법에는 익숙하다. 하지만 정작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문제를 만드는 일에는 서툴다.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그동안 ‘결과’를 배우는 데 익숙해져 왔기 때문이다. 공식의 결과, 역사의 결론, 정답이라는 이름의 도착점. 그러나 그 이전,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라는 과정과 관계는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 생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지식을 많이 아는 능력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 사이의 연결을 발견하고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내는 힘이다. 즉, 생각은 ‘관계’를 이해하는 능력이다. 수학, 과학, 예술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 세계는 언제나 연결 속에서 의미를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지식과 지식 사이를 잇는 ‘관계의 눈’이다. 세상은 물질의 집합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지고 변화하는 관계의 흐름이다. 우
창의적 사고-홀릭큐브1 시인.영화배우 우호태 이틀 연이어 드나들기 어려운 산자락 밭에 감자를 심었다. 씨감자 값에 기름값, 식대와 자재비, 세탁비까지 더하면 차라리 사 먹는 편이 경제적일 터이다. 그럼에도 손수 흙을 일구는 이유는 따로 있다. 푸릇한 새싹이 올라오는 순간, 그 생명의 기쁨이 비용을 넘어서는 까닭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농사를 놓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어둑한 산길을 돌아 나오며 한 발명가를 떠올린다. 한평생 발명에 몰두해 온 그의 사유는 이미 익히 알려진 물리학의 경계에 닿아 있다. 그가 고안한 홀릭큐브. 이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공간의 언어’라 할 만하다. 지식을 쌓는 결과보다, 과정 속에서 차오르는 깨달음을 경험하게 하는 장치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창의적 사고를 일깨우는 교육 도구로서 의미가 크다. “새처럼 날 수는 없을까?” “저 행성으로 갈 수는 없을까?” 이러한 질문이 비행기를 만들고, 우주선을 띄웠다. 결국 창의성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동안 글을 쓰며 생명과학과 에너지, 그리고 우주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났다. 서로 다른 영역이지만 공통점은 하나였다. 기존 질서를 넘어서는 호기심과, 그것을 끝
[ 포에버뉴스 김경순 기자 ] 대한민국 도예명장 단아 박광천 명장이 여주 아트뮤지엄 려에서 열린 ‘조선백자와 한국화의 만남展’을 통해 50여 년 도자 인생과 작품 철학을 밝혔다. 이번 전시는 여주세종문화관광재단 후원으로 3월 12일부터 24일까지 진행됐다. 박 명장을 만나 전시 의미와 작품 세계를 들어봤다. ■ 이번 전시를 열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50여 년을 흙과 싸우며 살아왔습니다. 긴 세월 끝에 대한민국 명장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이제야 고향의 품으로 돌아온 느낌입니다. 이번 전시는 작품을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저를 있게 해 준 사람들과 지역 시민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웠던 시절부터 묵묵히 지켜봐 준 분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명장이라는 칭호보다 더 귀한 것은 그분들의 믿음입니다. ■ 전시 성과는 어떻습니까. 대성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의미 있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작품을 아는 분들과 인연으로 약 13점 정도 판매가 됐습니다. 고가 작품도 있고 소품도 판매됐습니다. 여기서는 아주 고가 작품이 쉽게 나가지는 않지만, 작품을 알아봐 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보람입니다. ■ 이번 전시에서 황금
건달산, 정상 앞에서 시인.영화배우 우호태 발안천의 물줄기를 따라 남양호로 이어지는 길목, 건달산을 찾았다. 동서남북 문화기행의 한 장면을 담기 위해 약속된 산행이었다. 산에 들어서자 말이 먼저 사라졌다. 고요가 길을 대신했다. ‘건달산.’ 이름만으로는 통달이나 풍운의 기세를 떠올리게 하지만, 실상은 바위 많은 산이라는 소박한 유래를 지녔다. 이름과 실체 사이, 그 간극만큼이나 사람의 기대 또한 쉽게 방향을 바꾼다. 반 시간 남짓 올랐을 무렵, 길이 느슨해졌다. 정상이 가까우리라 여긴 순간, 발걸음은 다른 곳으로 기울었다. 문 닫힌 암자 주변으로 접어들며 우리는 이내 길을 잃었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산길에는 방향이 없었다. 안개 한 점 없는 날이었으나, 길은 분명 사라져 있었다. 눈앞에는 정상이 보였다. 그러나 더 이상 나아갈 수는 없었다. 오르지 못한 채 멈춰 선 자리에서, 비로소 숨이 들렸다. 거칠던 호흡이 가라앉고, 몸의 결마다 느리게 생기가 돌아왔다. 그때, 봄이 먼저 다가왔다. 진달래의 꽃망울과 개나리의 빛이 길 아닌 곳에서 조용히 피어 있었다. 산은 오르는 곳이면서 동시에 내려오는 곳이다. 푸른 소나무는 제 빛을 지키고, 낙엽은 발밑에서 제 소리
봄맞이 – 천변기행 23 우호태 청둥오리 머무는 물결 위에 말없이 흐르는 황구지천 어제와 오늘의 경계 없이 시간은 스미듯 지나간다 어디서 불어와 머무는 바람인가 봄빛에 실린 마음 하나 조용히 나를 향해 돌아와 내 안의 나를 깨운다 멀리 산자락 푸른 솔빛은 세월을 건너도 흔들림 없고 흐르고 견디며 살아온 시간 그 속의 내가 나를 안아준다 아, 고요한 나의 삶이여 때를 따라 스스로 피어나 밤하늘 가장 늦게 켜지는 빛이 되고 들판에 이름 없이 번지는 꽃이 된다 말없이 깊어지는 이 순간 나를 바라보는 나와 함께 봄은 그렇게 내 안에 머문다
빈의자–천변기행 23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천변의 저녁은 마치 보이지 않는 자기장 속에 들어선 듯, 발걸음마저 스스로를 낮추게 한다. 바람은 소리를 덜어내고, 물은 생각을 실어 나른다. 나는 그 고요의 가장자리에서 잠시, 나를 내려놓는다. 들고 나감이 없는 자리, 더할 것도 덜어낼 것도 없는 머무름 하나가 가만히 내 안에 앉는다. 세천이 합류하는 지점, 얼마전까지 하나였던 의자가 오늘은 둘이 되어 서로를 바라보며 놓여 있다. 누가 다녀갔을까. 혹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그 앞에 서서 문득 오래된 한 시(시인 조병화)를 떠올린다.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의자/조병화 비워둔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한 가장 따뜻한 준비라는 것을 이제야 알 듯하다. 등 뒤로는 모자를 눌러쓴 젊음이 바람처럼 스쳐가고, 앞으로는 봄을 한 걸음씩 들여오는 노인들의 발걸음이 시간의 결을 고르게 다듬는다. 빠름과 느림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같은 길 위에 나란히 놓일 때, 그곳이 곧 삶의 풍경이 된다. 문득 떠오르는 노랫말 하나, 낡은 기억 속에서 조용히 의자를 끌어온다.
무궁화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우리나라 꽃이다. 노랫말처럼 삼천리 강산에 피어나는, 우리 민족의 꽃이다. 그제 이른 아침, 무궁화나무 보급에 평생을 바친 원로 사학자께서 전화를 주셨다. 겨우내 땅속에 묻어둔 배추를 캐야 한다며, 맛이 좋으니 가져가라 하신다. 봄기운을 머금은 밭으로 달려가니 정성스레 다듬은 날배추가 한 상자 가득 담겨 있다. 그 넉넉한 손길 뒤로, 마당 둔덕에 줄지어 선 무궁화 군락이 눈에 들어온다. 돌아서려는 순간, 그분은 어린 묘목 몇 그루를 골라 캐어 건네신다. “울타리 주변에 심어보게.” 식목일이 가까운 봄비 젖은 땅, 생명의 뿌리가 내리기 더없이 좋은 때, 이른 아침, 동문굿모닝힐단지 봉사단, 관리소 직원이 함께 모여 아파트 울타리 따라 묘목을 심는다. 삽끝에 묻은 흙냄새 속에 이웃의 손길과 마음이 함께 묻힌다. 시간을 건너 이년 뒤의 풍경을 그려본다. 하양, 보라, 분홍… 무궁화 꽃이 이어져 피어나 울타리가 환하게 숨을 쉬는 날. 백 일 가까이 피고 또 피어나는 꽃, 그 끈질긴 생명력은 우리 민족의 시간을 닮았다. 어린 시절, 숨바꼭질 놀이 속에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우며 눈을 가린 채 세상을 기다리던 날들. 그 말 한마디가
웃음꽃이 피었네-천변 기행22 시인 · 영화감독 우호태 안녕하세요. 사전에 공지된 일요일 오후, 병점역 동문굿모닝힐 아파트 주변을 함께 청소하는 날이다. 쓸쓸한 날씨에도 30여 명의 이웃들이 마음을 모았다. 국토교통부 공동주택 우수관리단지 선정에 어울리게, 부지런한 단지 대표와 각 동 대표, 운영위원, 학생들과 입주민들이 함께 손을 보탠다. 자원봉사라서일까. 몸을 움직일수록 마음이 환해진다. 내 몸을 움직여 피어나는 마음꽃이, 봄꽃보다 더 아름답다. 천변에 흩어진 쓰레기들도 참으로 다양하다. 어느 님이 버리셨을까. 조개껍질이 수북한 걸 보니, 한때는 풍성한 식탁의 흔적이었겠다. 어느 님이 태우셨을까. 심심초 꽁초들이 벤치 아래 흐트러져 있다. 주식값이 떨어져 한숨을 쉬며 피웠을까, 아파트 관리비가 올라 걱정스러운 마음이었을까. 듬성듬성 종이컵과 우유팩, 녹슨 깡통도 눈에 띈다. 제 역할을 다하고 나서, 주인의 손길에서 조용히 떨어져 나온 것들일 터이다. 팔랑팔랑 뛰노는 아이들이 봄을 부르니, 담장 아래 매화 한 그루가 눈길에 봄을 달아맨다. 봄맞이 대청소를 하며 내 마음에도 어느새 앞질러 온 봄의 생기. 문득 한 폭의 수채화를 떠올리게 한다. 아파트 입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