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2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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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띄우는 편지 433

건달산, 정상 앞에서


건달산, 정상 앞에서
시인.영화배우 우호태

발안천의 물줄기를 따라 남양호로 이어지는 길목, 건달산을 찾았다. 동서남북 문화기행의 한 장면을 담기 위해 약속된 산행이었다.

산에 들어서자 말이 먼저 사라졌다.
고요가 길을 대신했다.

‘건달산.’
이름만으로는 통달이나 풍운의 기세를 떠올리게 하지만, 실상은 바위 많은 산이라는 소박한 유래를 지녔다. 이름과 실체 사이, 그 간극만큼이나 사람의 기대 또한 쉽게 방향을 바꾼다.

반 시간 남짓 올랐을 무렵, 길이 느슨해졌다. 정상이 가까우리라 여긴 순간, 발걸음은 다른 곳으로 기울었다. 문 닫힌 암자 주변으로 접어들며 우리는 이내 길을 잃었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산길에는 방향이 없었다. 안개 한 점 없는 날이었으나, 길은 분명 사라져 있었다.

눈앞에는 정상이 보였다.
그러나 더 이상 나아갈 수는 없었다.

오르지 못한 채 멈춰 선 자리에서, 비로소 숨이 들렸다. 거칠던 호흡이 가라앉고, 몸의 결마다 느리게 생기가 돌아왔다.

그때, 봄이 먼저 다가왔다.
진달래의 꽃망울과 개나리의 빛이 길 아닌 곳에서 조용히 피어 있었다.

산은 오르는 곳이면서 동시에 내려오는 곳이다.
푸른 소나무는 제 빛을 지키고, 낙엽은 발밑에서 제 소리를 낸다.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오감은 제자리를 찾는다.

왜 산에 오르는가.

산이 있기 때문이라는 오래된 대답은, 이 순간에 이르러 비로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오르지 못한 날에도, 사람은 이미 산 위에 서 있는 것인지 모른다.

건달산.
바위가 많아 붙은 이름처럼, 사람 또한 제 시간을 지나며 깎이고 다듬어진다. 선택할 수 있는 길을 벗어날 때, 비로소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알게 된다.

돌아서 내려오는 길.

나는 끝내 정상에 서지 못했으나,
그날의 산은 이미 내 안에 올라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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