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서면 고생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신방구리:
그때 어머님 팔순잔치가 있었다면요?
돈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땐 기행 워킹을 중단해야 하나 한참을 망설였어. 친구에게 자문을 구했지. 그랬더니 어머니 팔순잔치는 한 번뿐이니 들렀다 가라더군.
그래서 이곳에서 올라갔어.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한 후, 도보여정에 공감한 두 사람이 더 합류해 다시 이곳으로 내려와서 오던 길을 이어갔어.
마침 점심때가 되었으니 지난번에 들른 식당에 가볼까?
올갱이국이 참 시원했거든.
그때 식당에서 세 가지 추풍령의 멋을 들려주던 펀치 아주머니도 혹시 계시려나. 그분과 차 한 잔 나누면 좋을 텐데…
― 휘릭.
신방구리:
한낮에 아스팔트를 걷는데, 발은 괜찮았어요?
돈키:
몸을 가볍게 한다며 운동화를 신었더니 발바닥에 불이 나더군. 복사열까지 더해져 아스팔트가 후끈 달아올라, 걷는 게 고통이었지.
팔순잔치에 다녀오며 등산화로 바꿔 신으니 그제야 한결 낫더라고
그 후, 장거리에 나설 땐 꼭 등산화를 신어. 소금은 필수고. 빼재에로 형님이 일러준 대로 소금통을 챙겼었는데, 그걸 도중에 잃어버려 물통을 수없이 비움느라 혼쭐이 났지. 그래도 소중한 경험이었어.
신방구리:
도중에 만나는 사람들은 없었어요?
돈키:
지금이야 걷는 사람들이 많지. 학생들 국토순례 행진도 흔하고.
그땐 드문 경우였어. 힘들게 왜 걷느냐고들 묻더군. 특별히 답할 말도 없어 그냥 걷는다고 했지.
그냥 걷는 거야.
흐트러진 심신을 다잡으려면 먼저 몸이 힘들어야 하거든. 그래야 제맛이 들어.
신방구리:
스스로를 달구느라 걸었으니 기분도 좋았겠어요?
돈키:
어느 날은 밤새 걸었어. 새벽녘, 동이 트는 동안 길옆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있으면 물안개가 피어오르는데…장관이야…. 고요 속 풀벌레 소리만 들리거든.
뭐랄까? 이슬에 젖는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야. 밤새 걸어 무거워진 몸마저 은은해진다 해야하나.
저녁노을도 그만이지.
산과 산이 겹치고, 그 사이로 난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황홀하거든. 불타는 노을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숯가마처럼 벌겋게 달아올라. 그 기운이 잠자리에 들어서도 짙은 여운으로 남더군.
신방구리:
집 나서면 고생이라던데, 숙박은 어떻게 했어요?
돈키:
피곤하면 다리 밑에서도 자고, 모텔방이나 지인의 신세도 졌어. 대전이나 천안 같은 큰 도시에선 불가마에 들러 충분히 쉬기도 했지..
한낮의 열기를 피해 새벽에 걸어보니, 깨어 있다는 게 매우 값진 일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