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4 (금)

오피니언

<한반도소나타73> – 대구 청라언덕

봄의 교향악

 

봄의 교향악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대구에 가면 누가 안내를 해주나요?
돈키: 옛말에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했지. 대구는 큰 언덕, 달구벌이라 비빌 자리도 많아. 어제 전화했더니 군 동기가 흔쾌히 도와준다더군. – 휘릭

이박사: 합천에 다녀왔으니 이번엔 천천히 가보세. 계산성당, 청라언덕, 제일교회, 근대로, 김광석 거리, 그리고 팔공산까지. – 휘릭

이박사: 가야산에서 조금 지체했지. 날 어두워지기 전에 다 갈 수 있을까 모르겠네. 여기가 135년 역사의 계산성당일세. 저 건너편이 청라언덕. 계산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을 볼 수 있는 귀한 건물이지. 고 김수환 추기경께서 사제 서품을 받은 곳이네. 탑이 쌍탑인데, 저기 보이는 경북 최초 개신교 교회인 제일교회도 쌍탑이야.

돈키: 큰 언덕 위에 쌍탑이라… 섬김의 짝이 되는 모습 같네. 한 손으로는 교만이 되기 쉽지. 두 손이 모여야 섬김이 되고, 섬김이 만남을 이루고, 만남이 곧 사랑이 아닌가. 사랑이 깊어지면 두 팔 벌려 서로를 포옹하잖아. “편편황조 자웅상의”라, 세상도 서로 어울려야 아름답지.

호새: 여기가 청라언덕이군요. 라인강을 내려다보는 로렐라이 언덕이나, 예술혼이 불타는 몽마르트 언덕을 떠올리게 하네요. 봄날이면 머플러 날리며 오르는 여인의 뒷모습이 어울릴까요? 아니면 소슬바람에 코트깃 세우고 말없이 걷는 바바리맨?

이박사: 이 언덕을 오르면 오른편에 19세기 말부터 이곳에 들어온 선교사들의 자취가 남아 있어. 캘리포니아풍 건축, 대구사과의 기원을 이룬 사과나무, 예배터… 그리고 저기〈동무생각〉 시비가 보이네. 한 번 찍어보세. (찰칵).

돈키: 아릿한 시 한 줄에도 늘 한 사람의 그림자가 서 있지.
호새: 시인들은 왜 늘 아픈가요. 소월의 ‘애이불비’, 목월의 ‘나도 가야지’... 가슴을 왜 그렇게도 저며야 했나요?

이박사: 아파서 시를 쓴 게 아니라, 아픈 시대가 시인을 만들어냈겠지. 일본 유학파도 조국 현실 앞에서는 울었을 걸세. ‘서시’나 ‘광야’도 그렇잖아. 저 아래로 내려가면 이상화 고택이네. 그 시대 문인들의 호흡이 남아 있지.

돈키: 문인들의 숨결도 그렇지만,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었다니 근대사에 심장 같은 곳이었어.

이박사: 전란 속 피난살이로 문인들이 이곳에 모였다고 하더군. 고택에 가보면 그 시절의 시간을 느낄 수 있어. – 휘릭

이박사: 자, 이젠 김광석 거리로 가보세. 여름이면 사람들이 꽉 찬다네.
호새: 저기 기타 치는 동상 옆에서 한 장 찍어요. 찰칵.

돈키: 한 청년이 영혼을 태워 남긴 노래는 세월을 건너도 사라지지 않네. 불꽃을 피워 올리려면 먼저 스스로를 태워야 하나봐.

호새: 100세 시대라잖아요. 늙수그레 허리 굽히지 말고, 뒤로 젖혀 하늘 향해 한 번 소리쳐봐요. 빠삐용처럼 바다에 누워 외치듯. 세상은 제 멋대로 살아도 돼요.

이박사: 벌써 어스름이네. 팔공산은 어떻게 하지?
호새: 팔공인데 보름달 뜨면 판쓸이 되는 거죠.
돈키: <동무생각> 부르며 흘러간 내 청춘도 그려봤어. 근대로에서 어둠을 밀던 선지자들의 발걸음도 떠올랐고.

이박사: 통화할 때 그렇게 궁금해하던 것을 이제는 마음으로 깨달은 듯하군. ‘유레카’ 한 번 했을 것 같네.
호새: 아예 낙동강에 몸을 담글까요? 하하.

이박사: 대구도 정주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라네.
돈키: 이상화 시인이 말했지.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나는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올해도 청라언덕에 봄의 교향악은 울릴 걸세.
대구는 북팔공, 남비슬이 감싸고 있으니 말일세.

호새: 두 손이 섬기니 달구벌은 언제나 따뜻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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