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바람 소리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주변에도 소나무 숲이 많은데, 굳이 그 먼 울진까지 가야 하나요? 돈키: 거긴 금강송 군락지잖아. 제대로 된 소나무의 품격을 볼 수 있을 거야. 태백산에 같이 갔던 일행도 함께 간다네. 돈키: “숨쉬는 땅, 여유의 바다” 울진이라… 이제 사람만 있으면 완벽하겠네. 농장맨: 태백산도 좋았는데, 이번 금강송단지 원행도 기대됩니다. 게스트: 이름부터 범상치 않네요. ‘금강송’이라니… 휘릭― 해설사: 국민 10명 중 6~7명은 소나무를 가장 좋아한답니다. 우리 삶 속에 늘 가까이 있어 마음이 편안한 나무죠. 리틀맨: 그래서 그런가요, 굽은 소나무도 선산을 지킨다잖아요. 농장맨: 정이품송은 임금에게 절도 올렸다던데요. 해설사: 맞아요. 또 유배지에서 이상적에게 완당 선생이 건넨 <세한도>의 주인공도 소나무죠. 혹독한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으니, 참 우리 민족의 기상과 닮았습니다. 돈키: 근데 ‘금강송’이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그렇게 불렸을까요? 해설사: 일본 학자가 붙인 이름이에요. 원래는 ‘적송’인데, 울진·봉화에서 금강산까지 이어진 소나무를 묶어 ‘금강송’이라 부른 거죠. 햇볕을 좋아하는 양수라서 참나무랑은 잘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호새: 고개 하나 넘으면 영남지방인가요? 돈키: 그래.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 사이, 바로 그 유명한 문경새재야. 새도 날아 넘기 힘들다 해서 ‘조령(鳥嶺)’, ‘새재’라 부르지. 하지만 그 고개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권세 높던 길이기도 했어. 호새: 문경이라면 반가운 이름이네요. 무슨 이야기가 들리나요? 돈키: 요즘이야 벚꽃은 북상하고 단풍은 남하하지만, 조선시대엔 장원급제 소식이 이 고개를 넘어 들려왔겠지. 이름 그대로 ‘문이 열린 고을’, 문경(聞慶)이라 하지 않았을까?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을거야. 옛적 토함산에서 피리 불며 신라의 영화(榮華)를 그리던 풍류객에다, 쇳물 끓여 철갑선을 만들었을 포항, ‘울산 큰 애기’ 미소를 띠며 자동차를 큰 배에 싣고 세계로 뻗어가는 울산도 있잖아. 호새: 안동, 경주, 포항, 김해… 영남의 길이네요? 돈키: 그렇지. 흥망의 역사가 고갯마루에 서려 있지. 통일신라 시절엔 도성 경주와 부도(副都) 충주를 잇는 길, 고려 때는 개성과 안동을 잇던 피난의 길, 조선시대엔 한성과 영남을 잇는 대로였어. 경부선, 고속도로가 생기며 옛 이야기가 되어가지만, 그 숨결은 아직 남아 있지. 호새: 천등산
울렁울렁 처녀가슴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 바다를 건너요. 뱃머리도 신이 나서 트위스트를 추고, 울릉도는 정말 아름답네요. 아가씨들 고운 얼굴, 달달한 호박엿 냄새,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말, 괜히 나왔겠어요? 오징어 풍년이면 시집간다던 그 노래처럼, 트위스트 한 곡 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돈키: 바닷바람 참 시원하다. 울릉도 트위스트, 뱃전에 나부끼면 더 신나겠는걸. 호새: 울릉도 아가씨한테 눈 팔 생각 말고, 저기 뱃머리에 서봐요. 오늘은 ‘돈키호태와 호새’가 아니라 ‘잭과 로즈’ 같잖아요. 눈 감고, 제 등에 올라서 봐요. 어때요? 돈키: 와– 바다가 끝이 없네! 호새: 이거 뭐예요, 장단은 맞춰야죠. 돈키: 쏘리 쏘리~ 그냥 해본 말이야. 울릉도 마라톤대회 다녀오고 오랜만에 다시 온 거라서 그래. 호새: 혼자 뛴 거예요? 돈키: 아니, ‘마라톤 삼총사’ 동창들이랑 같이 뛰었지. 호새: 그래도 뭔가 사연 있어 보이네요? 돈키: 있지. 왼쪽 눈 찡긋하면, 항구에 사는 아주머니가 달덩이처럼 웃으며 살이 통통한 놈으로 회를 썰어주시거든. 그 맛이란, 둘이 먹다 둘이 죽어도 모를 정도야. 게다가 울릉살이 덤으로
대전부르스 시인/영화배우 우호태 호새: ‘대전발 영시 오십분’이라—새벽열차도 아니고 아침부터 차표 한 장 쥐고 어디로 떠나요? ‘나처럼 울지도 몰라…’ 하던 ‘잊지 못할’ 그 여인과 사랑의 갈무리를 하러 가는 건가요? 돈키: 그래, 세 갈래길 한밭에서 ‘대전부르스’ 한 스텝 밟으련다. 호새: 세월 좋수다. 남들은 엉덩이 진물 나도록 공부하던디요. 돈키: 그렇게 공부해 남 주는 게 좋은 세상이야. 오늘은 외길을 걷는 연구단지 박사님과, 자칭 ‘이 나라의 정직한 호랑이’라 불리는 이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세상이 KTX 속도만큼이나 변하니, 오징어·땅콩에 맥주 한잔 나누던 통근열차의 낭만은 흑백영화 한 장면이 되었지. ---휘릭--- 호새: “대전부르스” 노래비, 찰칵하고 싶었는데 치웠다네요. 돈키: 왜 그랬을까? 70년 전에 태어난 노래지만 세대를 넘어 불린 명곡이야. ‘나만이 울 줄이야’—가려고 하지 않은 길이니 우는 거야. 사랑만 그런가. 인생도 그런 거지. 사람은 울면서 큰다잖아. 밤에만 울겠어? 낮에도 울고, 속으로도 울고, 목놓아 울며, 그렇게 지지고 볶으며 제 모습을 피워내며 제 길을 가는 거지. 호새: 세상살이가 뭐 산나물인가요, 지지고 볶게요?
김소운 시인의 「가난한 날의 행복」을 떠올리며 글 | 송용호 가난한 신혼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실직 중이었고, 아내는 돈을 벌기 위해 매일같이 출근했다. 집안에는 쌀 한 톨 남지 않아, 남편은 아침마다 굶은 채 하루를 보냈다. 어느 날, 그는 간신히 쌀 한 줌을 구했다. 퇴근할 아내를 위해 정성껏 밥을 짓고, 갓 지은 따뜻한 쌀밥 한 그릇에 간장 한 종지를 놓았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미안한 마음에 남편은 쪽지 한 장을 남겼다. > “왕후의 밥, 걸인의 찬.” 그리고는 조용히 집을 나섰다. 이 장면은 김소운 시인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때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던 글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 문구가 요즘 들어 자주 떠오른다. 오늘날 우리는 물질의 풍요 속에 산다. 돈이 행복의 기준이 되고, 경제적 능력이 삶의 가치를 재는 잣대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한다. 그러나 그 끝에서 얻는 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 텅 빈 마음 하나일 때가 많다. 선한 이들은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고, 사회는 갈라지고 있다. 인간관계의 질서는 오래전에 무너졌고, 이
고향으로 갑시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거두망산월이요 저두사고향이라(擧頭望山月 低頭思故鄕). 호새: 웬 고향 타령이오? 돈키: 날이 차면 고향집 방 아랫목이 그리워져. 엄마 품처럼 따뜻하고, 지친 몸과 마음이 다 풀리지. 톰 존슨의 “Green, Green Grass of Home”을 들어봐. 사람도 연어처럼, 인생의 끝엔 고향으로 돌아가잖아. 태어나 첫 울음 울던 그 자리, 바다뜰처럼 넉넉한 품이야. 그게 고향이지. 네 고향은 어때? 호새: 내 고향은 책 속 이베리아 반도라오. 별이 초롱초롱한 초원 같은 곳이지요. 돈키: 그리운 고향을 노래한 시가 바로 정지용의 <향수>야. 저기 동행한 아저씨 고향도 옥천이라며, 그 노래를 충청민국 애국가처럼 부르신대. 호새: 둥지에 찾아오신 거네요. 돈키: 그래. 엄마나 내 집이란 말만 들어도 마음이 녹듯, ‘고향’이란 말은 솜사탕 같아. 우린 나라를 잃고 허리마저 잘린 세대였잖아. 조국 산천의 흙 한 줌이 얼마나 귀했겠어. 수많은 이들이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지. 옛날엔 돌아와도 ‘환향녀’라 불리며 눈물 삼킨 여인들도 있었고. 호새: 식민시절이나 6·25 때 둥지 잃은 실향민들… 그 마음이 어땠을까요. 요
백제의 발자국- 정림사지 시인/영황배우 우호태 이른 아침, 부여로 향하는 길. 박찬호 야구장에서 출발하며 돈키가 투수폼을 잡는다. “자, 간다~ 휘익!” 고대 왕도 백제의 심장, 부여로. 김기자: “백제의 왕도를 유람한다니 흥미롭네요.” 성박사: “금강 따라 부여로 가는 길, 수변 풍경이 정말 장관이야. 백제는 패망의 역사 탓에 남은 유적이 많지 않아. 정림사지엔 5층석탑 하나뿐이지. 다행히 무령왕릉이 발굴되어, 그 찬란했던 문화를 엿볼 수 있게 되었어.” 정림사지는 사비시대 왕성의 중심 사찰이었다.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로 등재된 이곳은, 5층 석탑만이 남아 옛 영광과 상처를 함께 설명한다. 돈키: “백강 전투 후,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탑에 남긴 ‘대당평백제국비명’이 있잖아. 그 글귀를 보면 가슴이 먹먹해. 텅 빈 절터가 오히려 그 시대를 생생히 회상하게 하네.” 김기자: “서동요’의 무왕이 만든 궁남지도 사비의 절정기 작품이라네요. 선화공주와 마망태(서동)는 안 보이지만요.” 성박사: “그게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이야. 백제의 축조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보여주지. 사계절 연꽃과 국화가 아름다워 지금도 많은 이들이 찾아와. 부여는 백제·왜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오늘은 “대한독립만세”의 의미를 찾아 천안 독립기념관에 가보자. 호새: ‘대한’, ‘독립’, ‘만세’… 세 낱말이 이곳에 참 잘 어울려요. 돈키: 글자는 단순한 낱말이지만, 장소에 따라 울림이 달라지지. ‘대한’은 큰 나라를 뜻하고, ‘독립’은 스스로 선다는 의미야. 그 ‘독립’을 되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세월을 설움 속에 지내며, 얼마나 많은 의인들이 목숨을 바쳤겠니. 호새: ‘만세’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올려 외치는 소리잖아요? 돈키: 그래. 생명 탄생의 고고성보다, 천둥소리보다도 큰 외침이지. 3.1운동의 “대한독립만세”는 억눌린 민족의 응어리가 터져 나온 함성이었어. 그 외침에는 홍구공원의 폭탄소리, 하얼빈의 총성, 청산리 김좌진 장군, 봉오동 홍범도 장군의 호령이 함께 울려 있었지. 호새: 그야말로 ‘대한의 심장소리’네요. 돈키: 맞아. 그 ‘독립’이란 두 글자를 되찾기 위해 수많은 지사들이 풍찬노숙하며 만주, 상해, 연해주, 하와이, 중경까지 떠돌았지. 그건 마치 ‘엄마 찾아 삼만리’의 마르코처럼,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야. 호새: 이곳은 그분들의 혼을 기리는 자리군요. 돈키: 그렇지. 하늘의
중원의 쌍무지개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고대 왕국 제왕들의 발길이 닿았던 중원, 오늘의 충주(忠州)와 선인들의 숨결이 서린 단양(丹陽)을 찾아가 보려 해.” 신방구리: “온달산성, 장미산성, 충주 고구려비, 단양 적성비, 충주 탑평리 7층석탑(중앙탑), 박물관, 탄금대(彈琴臺), 단양팔경… 들를 곳이 참 많네요.” 돈키: “우선 국보들부터 봐야지. 고구려의 위세를 보여주는 충주 고구려비, 통일신라의 치세를 엿볼 수 있는 중앙탑, 그리고 고려 말 보각국사탑까지 둘러볼 거야.” 모마시지: “중원경이라면 지리적으로 나라의 한가운데란 뜻이네” 돈키: “맞아. 시대마다 부르던 이름은 달랐지만 통일신라 때 ‘중원경’이라 불렀으니, 그 중심의 뜻이 이어진 셈이지.” 신방구리: “그런데 왜 백제, 고구려, 신라가 그 땅을 두고 그토록 다퉜을까요?” 돈키: “해설사 말씀으론 충주 일대가 철의 고장이라 했어. 일본 ‘칠지도(七支刀)’도 이곳의 철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해. 옛말에 ‘철을 지배하는 자, 세상을 지배한다’ 했잖아.” 모마시지: “그렇다면 비문 하나에도 엄청난 의미가 담겼겠어.” 돈키: “그렇지. 금석문은 역사의 기초사료야. 호랑이나 곰이 영역을 표시하
[ 포에버뉴스 김경순 기자 ] 가을아, 한 잎만 떨구어라 시 손근호 가을아, 가벼이 낙엽을 띄우지 말라 하루에 한 잎만 만들 거라 하루에 한 번씩 떨구는 생애의 비잔함이 애절하다 여물면 여문 채로 꽃이나 필 것이지 눈물 따스한 나무가 애정을 버리는 이 가을아, 하루에 한 잎만 떨구어라 비련의 가을아, 어스러진 해가 넘어간다 가을 노을아, 눈물 다 마르고 잠을 자라 하는 동면의 겨울을 부르려는구나 가을아, 가지 마라 내 몸에 낙엽을 다 떨구어라 눈꽃이 피어도 깨끗한 나의 가지를 위해 더디게 가거라 ▲쪽지 한 장 그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사람은 누구나 가을을 맞이하면서 온몸으로 상쾌한 가을의 향기를 맡는다. 지난 여름은 어떤 이에게는 힘들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도 한다. 시인은 가을이 지나가는 하나의 계절로 아쉬움을 속으로 토로한다. 가을이 지나가지 않고 머물러 주기를 시인은 바란다. 그러나 가을은 머물렀다가 지나가는 토속적인 가을이다. 가을은 가을의 거룩함이 있는 계절이다. 이런 날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가을의 정취를 음미하면 더욱 좋은 날이다. ▲손근호 시인 -광주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미주기독교방송 2000년 3월 영문시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