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키호태유람1(서울특별시편)
너도 섬이냐 – 여의도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인간은 수십 조에 이르는 체세포를 지닌 신비한 존재지. 생로병사의 파도 위를 항해하면서, 희노애락이란 '미리보기'를 맛보며 사는 거야.
코로나라는 외부 변수 덕에, 문득, 염천에 상상의 날개를 달고 떠나본다. 나의 별호, '돈키호태' —
어쩌면 ‘나’라는 존재가 세상과 싸우기보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며 노래하려는 자인지도 모르겠어. 그래서 이 긴 유람길, 서울부터 한 번 예행연습해볼까. 여의도와 광화문, 그리고 강남…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슈퍼보드 대신 구름위성 타고 ‘코리아’에 착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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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
오정아, 저기 어렴풋한 저 땅이 어디냐?
사오정
네, 법사님. 웹서핑 결과 ‘여의도(汝矣島)’라고 합니다. 서울 영등포구 소속으로, 옛날엔 땅콩밭이던 섬이었답니다. 그러다 방송, 금융, 정치가 들어서며
팔도의 타짜들이 몰려든 땅이 되었어요. ‘너도 섬이냐’는 듯, 제 몸 하나로 큰 판을 벌인 곳이지요.
법사
타짜라니… 흥미롭군.
오늘은 그곳에 머물며 세속의 풍경을 살펴보자꾸나.
저팔계
삼겹살 같은 저팔계, 빠르게 다녀오겠습니다! — 휘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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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팔계
아저씨, 저기서 타짜들이 모여 칼질한다던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길손1
어디서 오셨나? 순진하신 분 같네. 그곳은 ‘칼잽이’들의 전당이야. 실제로 칼을 쓰진 않지만, 말과 펜으로 베고 베지. 궁금하면 직접 들어가 보시지.
저팔계
으으, 삼장님… 아슬아슬합니다. 고사상에 머리 올릴 뻔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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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
오공아, 아무래도 네가 다녀와야겠구나. 공손하게 여쭙는 법도 잊지 말거라.
오공
네, 법사님! 우랑바리나바롱~ 스카이로드 출발합니다! — 슝—
오공
선비님, 저 돔 건물 안에서 어떤 칼질을 한다는 말씀이신지요?
길손2
여의도(汝矣島)… 참 좋은 이름이었지. 그런데 이젠 그 ‘도(島)’가 ‘칼 도(刀)’로 변했어. 칼부림처럼 말싸움이 오가고, 이제는 도(盜), 즉 ‘훔칠 도’ 자로도 불리지. 무엇을 훔치냐고? 마음이지. 지혜를 가장한 욕망, AI와 리모컨으로 세상을 조정하려는 손길들.
오공
사람보다 기술이 상전이 되었군요…
길손2
그래, 머리가 좋을수록 조심해야 해. 생각이 아니라 뜻이 사라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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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
아… 섬이 되면, 외따라지고 도(道)가 무너지면, 길을 잃는구나. 이 땅이 ‘섬’으로 갇힌 건지도 모르겠어. 이곳엔 바람이 부는데, 그 바람이 너무 오래, 너무 외로워…
오공
법사님, 건물을 들어올려 태평양에 씻을 수 있을까요?
법사
여의도는 이름처럼 여(汝), 너를 위한 땅이어야지.
도(道), 길을 보여주는 섬이어야 하지 않겠느냐? 타짜들이 이 나라 백성의 미래를 위해 머리띠를 매고 펜을 들고 두 손을 모아 진심을 구하는 자리라면, 얼마나 아름답겠느냐.
오공
근데 지금은… 왜 이리 혼탁해졌을까요?
법사
사람은 원래 착한 존재란다. 하지만 그 착함을 표현하려면 배움과 훈련이 필요해. 마음이 가난한 자는 남을 다치게 하지. 욕망이가득 찬 이 곳이, 오히려 가장 가난한지도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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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새
눈에 뭐가 씌인 걸까요…세상은 보이는 대로만 흘러가진 않나 봐요.
돈키
그러게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바람은 여전히 시원한데… 우리 마음이 무더운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