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리 철가시울 돈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궁노루 산울림… 호새: 뭘 읊조리세요? 돈키: 응, 비목이란 노래야. 부를 때마다 한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릿해. 태극기가 저리 펄럭이는 게 바람 때문만은 아니야. 저곳에 산화한 수많은 청춘, 그들을 가슴에 묻은 가족의 한 맺힌 눈물이 흐르거든. 휴전협상 중에도 한 치 땅이라도 더 찾으려 치열했지. 피의 능선이나 백마고지 전투는 격전의 아픔을 생생히 전하고 있어. 호새: 저기가 DMZ군요. 돈키: 그래,155마일 한반도를 가로지른 허리벨트지. 노산 이은상 시인은 저 피어린 600리를 순례하며 가슴 저민 분단의 아픔과, 피워야 할 나라사랑을 노래했어. 호새: 한 서린 곳이네요. 돈키: 그래. 8·18 판문점 도끼 만행이나 남침 땅굴, GP 총격 같은 휴전 협정 위반 사건들이 요즘까지 꽤 있었지. 언젠가는 풀어야 할 과제야. 호새: 앞으로 어찌 될까요? 돈키: 글쎄, 누가 알겠니. 최근 남북 합의로 일부 GP를 철거하고 도로를 연결했다네. 지도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 한때 주목받던 소떼 방북도 전설이 되었고, 이산가족 상봉·개성공단·금강산 관광도 빛바랜 일이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바람이
격몽요결(擊蒙要訣)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사각사각, 가을 오는 소리가 들리네. 오늘은 율곡 선생이 제자들과 노닐던 화석정(花石亭)을 들러볼까 한다네. 호새: 아, 오천원권 지폐 속에 정자관 쓰신 그 선비 아저씨 말이지요? 돈키: 그래. 그분의 발자취가 크고 깊으니 살펴볼 만하지 않겠나. 화폐에 새겨진 이들은 저마다 불굴의 기상과 큰 뜻을 남긴 분들이야. 세종대왕, 신사임당, 퇴계, 율곡, 충무공 모두 그러하지. 호새: 그냥 멀리서 마음에만 두고 가지 않으면 안 될까요? 돈키: 어허, 뜻이 일면 몸도 움직여야 일이 빛나지. 가보자꾸나. — 휘릭 호새: 저기 화석정 현판이 보이네요. 전망이 확 트여 강과 산이 어우러진, 노을 질 무렵은 참으로 장관이겠어요. 돈키: 오길 잘했지 않나? 저 강물처럼 율곡 선생의 사상과 정신도 세월을 흘러 길이 이어지리라. 호새: 그런데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성리학을 자꾸 되새길 까닭이 있나요? 돈키: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라 성리학이 낡아 보일 수도 있지. 그러나 조선 오백 년을 이끈 통치 이념이었네. 지도자의 품성과 자세에 따라 나라의 품격이 달라지는 법,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례가 이를 증명하지. 호새: 그 성리학이란
세상을 바꾸는 힘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어디로 가시나요? 길을 알아야 발걸음도 덜 무겁지요. 돈키: 네 길, 내 길, 세상에 얼굴 내밀며 출판단지로 가는 거다. 호새: 머리만 굴려 글 쓰면 되는 건 아니겠지요? 돈키: 사람들, 다들 길을 잃은 듯 허둥대고 있지. 이분법에 매이지 않고, 내면의 울림을 글에 담아야 해. 글이 곧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 하지 않니. 호새: 저기 ‘쉬어가면 어떠리’ 카페에서 잠시 숨 좀 고르자구요. 돈키: 책은 좀 읽니? 양서를 읽어야 해. 공부는 남을 위해 하는 거다. 호새: 내 살기도 벅찬데 무슨 글이랍니까. 돈키: 아니야. 읽고 또 읽어야 한다. 감각이 깨어나면 마음도 깊어지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고 했거늘, 세상사에 눈 감고 살 순 없지 않겠니? 호새: 한 세상뿐인데 꼭 그러해야 합니까? 돈키: 두 세상도 아닌 단 한 세상이니 더욱 그래야지.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나면 세상도 흔들 수 있어. 네가 나를 만나 고생이 많구나. 호새: 주인님, 괜한 말씀 마시고 울렁울렁한 이야기나 풀어봐요. 돈키: ‘성냥팔이 소녀’ 아느냐? 성냥 세 개피로 세상 사람들 가슴을 젖게 했거든. 그것이 글이 가진 힘이
마음대로 달려 봐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돈키님, 도로명이 ‘자유로’라니, 마음대로 달리라는 뜻인가요. 돈키: 글쎄, 허나 속도 제한이 있지 않겠니? 이 길은 자유를 상징하는 길이야. 호새: 그런데 왜 하필 ‘자유로’라고 부르죠? 돈키: ‘자유’라는 말 속에는 큰 세상이 담겨 있단다. 힘없는 민족들이 피 흘리며 얻어낸 소중한 가치지.《빠삐용이나《안네의 일기를 읽으면 가슴이 먹먹해지잖아. 봄날 풀밭 위에 나비가 팔랑이고, 파란 하늘에 구름이 두둥실 떠가는 모습. 그것이 제 모습일 때 빛이 나는 거야. 그런 자유를 빼앗는다면, 세상은 숨이 막혀 메말라 버리지 않겠니? 호새: 그럼, 안네는 마치 상자속에 나비 같네요. 돈키: 그래. ‘자유’라는 말, 알아듣기 쉽지 않아, 행동으로 지키기는 더욱 어렵고. 초등학교 시절 방학이 되면 일과표를 벽에 붙여 놓곤 했어. 공부시간, 자유시간… 그리 나누었지만 결국 온종일 뛰놀았지. 그러니 생명체가 제때 제모습을 피워내는 게 자유가 아닐까 해. 호새: 듣고 보니, 프랑스 사람들은 그런 자유를 위해 왕의 목까지 날렸다고 하더군요. 돈키: 그랬지.아메리카에서도 패트릭 헨리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외치며 식민지의 멍에
행주치마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달포 전에 약속된 일정이라, 비가 와도 가는군요? 돈키: 그래, 젠틀맨 은회장, 작은 거인 송회장, 그리고 나. 오래 사귄 건 아니지만 이래저래 어울리다 보니 대화가 물 흐르듯 흘러. 호새: 은회장님, 본관이 행주라면서요? 은회장: 맞아요. 돈키: 행주 하면 뭐가 제일 먼저 떠오르시오? 은회장: 글쎄… 행주산성, 행주치마, 행주대첩, 행주대교 정도지. 송회장: 고양시 행주라… 그 넷이 다인가요? 돈키: 아니지. 행주가 낳은 은회장도 있잖소. (웃음) 호새: 초행길이라 설레네요. 한 시간쯤 걸리겠죠? (휘리릭) 돈키: 봐라, 이 성은 4국시대 축성 기법이 남아 있단다. 한성 가까이 위치해서 옛날부터 전략적 요충지였지. 호새: 임진왜란의 3대 대첩, 바로 행주대첩(幸州大捷)이 벌어진 곳이군요? 돈키: 그렇지. 권율 장군의 지략, 관군 화포의 위력, 치마부대 아낙네들의 돌멩이 지원이 어우러져 왜군의 기세를 꺾었지. 저 높게 솟은 대첩비를 보아라, 승전의 표상이 따로 없구나. 호새: 저기, 빗방울에 젖은 행주대교 위로 자동차들이 물방개처럼 달리네요. 돈키: 그래. 저 사람들, 내 땅의 힘을 돋우기 위해 제 일터로 가는 게지. 다
수원천 송가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드디어 광교산 정상에 올랐네요. 참, 바람이 상쾌해요. 돈키: 그러게, 사방이 탁 트여 시원하구나. 이곳은 용인시와 의왕시, 수원시가 맞닿는 경계에 명산이지. 호새: 잠시 쉬어 가는 김에, 이곳까지 이르며 떠오른 시상을 한번 들려주시면 어떨까요? 돈키: 음, 10여년전 이곳을 출발해 수원천 줄기가 황구지천에 흘러들어 한몸을 이뤄 평택호에 이르는 물길을 따라 걸었어. 그때 눈길에 담아둔 감정이야. <수원천 송가> 아득한 옛적, 하늘이 열렸더라. 큰 땅에서 바다에 이르도다. 한울림 흘러내려 백두대간이라 하고 그 한 줄기 자락에 솟은 묏 방울을 할배 할매들은 광교산이라 부르네. 넉넉한 품, 가르침의 품이런가. 어미의 새벽 정성이 하늘에 닿아 산정수리, 시루봉에 한 방울 굴러내려 풀꽃이 피어나고, 두 방울 이어 흐르니 새들도 노래하네. 가슴 설레는 이백리 물길여정 형제봉 아침 햇살 고운 단장에 물오리는 선남녀 눈길을 어루는데 나그네 발길은 물길 따라 흐르누나. 오호라, 문밖이 무릉도원, 화홍이려 아이들 웃음소리 물보라로 피어나고, 팔달청람에 산들바람이 불어오니 새색시 꽃가마 나불대는 버들이로세. 두물머리 물길, 잠
화성대문을 열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팔달문은 화성의 남문이라 들었습니다. 동란의 참화에도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네요. 돈키: 그래. 옛사람들은 “남문은 남아 있고, 북문은 부서지고, 서문은 서 있고, 동문은 도망갔다” 하며 우스갯소리가 전해오지. 그 말 속에 세월의 격랑을 견뎌낸 문들의 운명이 깃들어 있어.. 호새: 오늘은 창룡문 아래에서 윤규섭 선생의 해설을 들었다지요? 돈키: 그래. 화성의 역사와 사연을 품은 말씀에 귀 기울이다 보니 정오를 넘겼다네. 지동시장에서 순대국밥 한 그릇에 반주를 곁들이니, 가벼운 취기에 마음마저 느슨해져 흘러가는 강물 같더구나. 호새: 시장통 정조대왕 좌상 앞 ‘불취무귀(不醉無歸)’라는 글귀가 더욱 깊게 다가왔겠아요. 돈키: 그래,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말라.” 축성의 고단함을 위로한 임금의 말씀이지. 그 속에는 백성을 편안케 하지 못한 자책 또한 스며 있네. 왕의 무거운 심회를 술 한 잔 속에 녹여낸 것이야. 호새: 서장대 북소리를 상상하니 옛 군례의 장면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돈키: 둥둥, 북소리에 가슴이 뛰네.나도 문 안으로 들어서며, 시공을 거슬러 이백 년 전 정조시대에 발을 딛는 듯해. 호새: 팔달문이
대한국민에게 고함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오늘 아내와의 약속대로 독산으로 아침길을 나섰다. 발밑에 채이는 나무뿌리와 코끝에 스미는 솔향이 함께 어우러져 산뜻하다. 산책을 하다 보면 헐렁한 몸짓에 소소한 생각들이 이어져, 감각의 세계와 정신의 세계가 맞닿는 순간이 있다. 평소 풀리지 않던 고민이 번뜩이는 영감으로 풀리곤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걷다 보니 정치권의 장면이 떠오른다. 어제 본 야당 전당대회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단상 위에서 열정을 토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민주주의 제도의 본질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두 사람 이상이 모여 사는 집단이 사회다. 생존을 위한 먹거리 해결과 갈등의 조정은 정치의 본령이다. 정부에 권한을 위임하고, 정치인은 정당을 통해 권력을 행사한다. 권력남용을 막기위해 입법·행정·사법의 3권 분립, 견제와 균형은 국민행복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우리는 지난 100년간 기적 같은 변화를 경험했다. 왕조에서 제국으로, 식민지에서 독립국가로, 빈곤에서 경제부국으로. ‘한강의 기적’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언제나 그늘을 핑계 삼아 새로운 갈등의 나이테를 만들었다. 갈등 자체야 사회의 숙명이라지만, 지금의 정쟁은 도를 넘었다
수원천 서해로 간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와, 드디어 수원천의 물길, <화성>에 닿았네요. 저 문이 화홍문이죠? 돈키: 그래, 성 밖에서 안으로 드나드는 북수문이야. 문이란 게 늘 경계를 나눠. 안과 밖, 이승과 저승, 의식의 문턱 말이다. 학창시절, 창문 너머 비 오는 모습을 보며 또 다른 세상에 간 듯 했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니? 호새: 아, 그래서 “대문 밖이 저승일세” 같은 회심곡 가락이 가슴에 와 닿나봐요. 돈키: 그렇지. 문 밖의 세계는 늘 자유의 기운을 품어. 호새: 황구지천 근처엔 옛 성이 여럿인가봐요. 돈키: 고읍성, 독산성, 그리고 정조가 축성한 화성이 있어. 특히 수원화성은 정약용이 ‘성설’에 기술한 바처럼 전통과 새로운 공법이 결합된 명작이지. 거중기, 벽돌, 녹로 같은 신기한 장치로 공사기간을 줄였다지. 호새: 역사책이 아니라 눈앞에 펼쳐진 느낌이 달라요. 저기 보이는 무지개 아치, 정말 멋집니다! 돈키: 저게 바로 화홍문, 일곱 개의 무지개 모양의 수문이지. 여름날이면 물보라가 햇살에 부딪혀 무지개를 만들곤 해. 수원팔경의 하나, ‘화홍관창’이라 불렸어. 오른편 언덕에 있는 방화수류정도 보이지? 호새: 네! 천변의
독산성 둘레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조선 선비들은 유람길마다 시 한 수를 남겼다지요. 이곳이 사방이 트여 시 한 수 어떠세요? 돈키: 그래, 곳곳에 기행시와 서체, 무용담이 전해오지. 그게 다 인생길의 멋 아니겠느냐. <독산성에서> 한걸음 두걸음 머언 발길들 불어라 들바람 고개 너머로 금암리 선인들 머문 쉼터에 천년의 고인돌 고요 하구나 진달래 개나리 고운 몸단장 독산성 둘레길 노을이 지면 솔숲에 울리는 말울음 소리 그 이름 부르니 세마대로세 꽃뫼에 서린 애끊는 사부곡 화산뜰 감도는 황구지 물길 오신 곳 어느 뫼 어데로 가나 노을속 홀로 걷는 나그네여 달뜨는 밤이면 고향 가려나 눈감아 달려도 마음이 앞서 꿈엔들 잊으리오 내 고향 땅 죽미령 눈물꽃 젊은 넋이여 사방에 뻗어난 너른 큰길에 뜻세워 글읽는 배움터 불빛 어제를 돋우어 내일을 여니 온세상 밝혀 갈 등불이로세 —--졸저<한반도소나타>에서 호새: 돈키님, 이쯤이면 김삿갓 선생 못지않은 예인 아니겠소? 돈키: 글쎄, 주변 환경을 알면 누구나 한생각 들어설게야. 어찌 세상사가 제 뜻대로만 되더냐. “황하지수천상래…. 조여청사모성설…”을 인생을 노래한 청련거사 이백이나 방랑 시인 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