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뒤이을 구절은 “시월의 마지막 밤”이다. 이용이 부른 <잊혀진 계절>의 노랫말로 가을을 품은 서정성이 뛰어나 오늘밤에 누군가는 눈 감은 채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지난 세월을 사릴게다. 소실점의 꾸깃한 기억이 살아나 창가로 다가오더니 이내 저멀리 들판을 가르며 흐르는 천변둑방길에 하나 둘 눕는다. 어찌 청춘시절의 추억뿐이랴! <잊혀진 계절>의 ‘10월의 마지막 밤’ 구절이 살아온 세월을 점젆게 대신해주니 그대와 나에게 참 좋은 노래인거다. <잊혀진 계절>의 키워드는 꿈이다. 꿈꾸는 사람은 행복하단다. “늦은 밤 창가에 앉아 꺼져가는 불빛을 바라보던” 콧수염 가수도,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프다던” 파마머리 가수도 한껏 목청을 돋웠으니 꿈을 꾸었던거다. 그 젊음의 울림으로 내 안에 나를 만나게 되어 오늘밤이 참 고운 시간이다. 돌려 앉아 벽에 걸린 사진액자 속에 젊은 내게로 눈길이다. 곁에 초롱한 눈망울의 네살박이 딸, 아내, 일곱살 아들녀석이 참 다정하다. 긴 시간 나를 태우던 환한 꿈인 게다. 그래, 열심히 살았네 자찬하려니까 눈이 시리다. 가슴이 먹먹하다. 늘 ‘시’공부를 깨우시던
62회 영화인의 날에 부쳐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충무로 나들이다. 영화계 발전에 한 획을 그었거나 긋게 될 신예들, 이들을 응원한 분들, 특히 영화를 사랑하는 분들이 어울린 105주년 영화인의 날이다. 영화인으로서 이렇게 큰 날에 수상을 한다니… 시상식에 앞서 <AI시대 한국영화의 혁신과 성장전략>기념 세미나가 있었다. 영화분야에 AI가 미칠 영향을 이곳저곳에서 들었던터라 저장된 기억들에 맞춰 되새김질이다. AI를 활용해 막대한 자본력과 기술 장벽을 넘어설 수 있다는 기조발표와 패널설명은 그리도 높은 헐리웃과도 맞짱 뜰 수 있음이니 영화계로선 매우 반길 일이다. 허나 세미나와 달리 그리 환하지 않은 영화인의 날이다. 영화발전을 위한 자정의 신호탄인가? 오랜 동안 투명하지 않은 일처리 결과인가? 법원의 ‘탕탕탕’이 그간 장정을 마무리 하는 것인가? 너무나도 한심한 일인게다. 수년간 우당우당하더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세미나가 끝나고 시상식에 앞서 법원선고에 대해 영총회장의 설명이 장내를 누그리나 안타까운 일이다. 기억할게다. 어느 가수는 ‘너와 나’ 사이에 바다가 있어 이별을 가정하고 어느 가수는 ‘너와 나’를 동반자로 간주하
예산저수지 순행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달포전에 약속된 만남이다. 여러 모임중에서 지위, 재산, 지식의 높낮이도 그저 털털하니 편안한 고향 동네 장년들의 모임 일칭 다람산친목회 나들이다. 예산에 저수지, 추사 김정희 생가, 삽교천을 순행하는 일정이라 부풀어 오른 기대감에 출발장소에 일찍 나갔다. 언제 만나도 그저 구수한 누룽지 맛나는 만남이라 저마다 옛 시골집 헛간에다 나뭇짐 부리는 환한 발길들이다. 차창가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어울려 지난 세월도 휙휙이다. 시간여 걸려 저수지에 도착하니 주차장이 벌써 만차다. 어린 맘으로 모노레일에 승차하니 꽤나 흥미롭다. 소나무, 참나무, 측백나무, …, 등이 늘어선 산허리를 돌고 산등성이를 오르락 내리락하니 마치 세상살이 모양새 같다. 저수지 둘레가 백여리요 동서길이가 오십여리에 이른단다. 온화한 수면에 어울린 건너편 산세도 제멋으로 누웠다. 산허리를 돌다 바라본 저수지 출렁다리다. 몸이 좌우로 흔들려 출렁다리란 느낌이 들어 <꽃마차> 타는 세상살이 대신 출렁다리의 놀이란 생각이다. 으악새 슬피우는 가을의 힐링길, 중간 쉼터에 도착해 사람들을 바라보니 얘기를 하며 제 중심을 유지한 채 건너오간다. 조명등이 설
햇살이 아까워라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주말의 수변드라이브는 장년에겐 나름 제멋을 지닌 모양새다. 무엇보다 그리 흔히 만나는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없기에 FM 음악방송에로 귀끌림이다. 오감 중 청각이 깨이자 차안에 들은 따스한 햇살로 전신이 아늑하다. 햇살이 계절따라 변하는가보다. 앞쪽 저멀리에 우뚝 솟아있는 <양산봉>의 총총한 나무들은 겨울채비하느라 제몸을 달구고, 지맥사이 골엔 가을 햇살을 바삐 담고 있다. “이렇게 좋은 날에”는 나무등걸에 걸터 앉아 자연인이 되어봄도 꽤 운치있을게다. 햇살과 어울려 제 멋을 드러낸 말없는 군상들과의 대화도 의미로운 시간인게다. 엊그제 일이다. 외출했다 돌아온 평생지기가 햇살이 아까우니 천변에 산책을 가잔다. 끄적댐을 멈추고 밖에 나서자 곧 몸이 환해졌다. 저수지둑에 서서 ‘해’를 바라보니 눈이 부시다. 휘릭하면 마치 오랜동안 빛이 차단된 공간에서 ‘빠삐용’이 나와 보았던 그 자유의 ‘해’이며. 휘리릭하면 검정 안경 쓴 늘날씬한 해변가 여인의 구릿빛 몸매를 강렬히 애태우던 ‘해’요, 그리스판 대자연인(?) 디오게네스가 인생에 대해 알렉산더를 깨운 현장학습장에서의 그 햇볕인게다. 해와 달은 대자연을 노래하는데 으뜸이
문고리와 문턱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두 달여만에 경기도청, 의회, 교육청을 방문했다. 매번 주차하느라 주차장을 서너바퀴 돌아야하는 번거로움에 걸어들었다. 현관과 지하층을 두어번을 왔다갔다 게걸음 후에 마침내 엘리베이터에 승차해 10층 방문장소에 도착했다. 빌딩만큼이나 권위가 하늘 높이 솟았나보다. 천리길(?)을 달려왔건만 문턱이 이리 높아서야 원. 눈을 감아야만 문고리 찾을 수 있으니 원. 문안에 무엇이 있길래 이렇게 힘들게 하나? 원래 문턱은 집의 문기둥의 좌우를 붙잡아 주는 것이거늘 발길을 맴맴하게 붙드나? 문을 여닫거나 잠글 때 쓰는 문고리이건만 어찌 장님 술래잡기놀이를 하게하나? 문턱과 문고리에 관련한 속담이 의미롭다 싶다. “문턱 높은 집에 무종아리 긴 며느리 생긴다”. “문턱이 낮은 글이 좋은 글이고 문턱이 낮은 사회가 좋은 사회다.” “장님 문고리 잡았다” 등 곱씹지 않아도 알아채는 말로서 어린시절 문턱을 밟으며 드나들 때 꽤나 집안 어른들에게 야단을 맞았던 기억이 난다. 누가 설계했을까? 누가 감리 했을까? 어린시절 미로 탐험놀이를 즐겼나보다. 백성을 섬기는 분들이 근무하는 건물들이다. 섬기는 것은 두 손으로 받치는 것이며, 지배하는 모습은 내
이즘 뭐해?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이즘 뭐해? 필자가 공인생활을 한 탓일까? 기억속에 따스한 정이 오가던 분들이 어쩌다 길에서 만나면 이즘의 근황을 묻곤한다. 의례적 안부와 궁금증의 버무림이기에 “그냥 잘지내요” 하거나, 심심치 않게 지낸다는 뜻으로 “글 쓰고 있어요” 또는 뭔가 일을 한다는 뜻으로 “단편영화를 제작해요”하며 미소짓곤 한다. 흔히 우리는 지인들의 물음에 늘림 말 없이도 ‘그냥 그렇지 뭐’로 답하는 까닭은 아마 내 삶의 결이요, 누구에게나 점철된 희노애락이 일상이요, 제때에 어울린 내 일과 사는 재미가 쏠쏠(?)한 생활탓인 게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 ‘어떻게’가 ‘뭐 해’보다 한계단 올라선 물음이렸다. 이즘 발길을 전해야겠다. 함께 어울린 분들과 나름대로 보람있는 선한 활동을 하고 있다. 누구나 노후에 하고픈 일이 있을게다. 필자는 작가로서 훗날 대하소설 출간을 위해 글쓰기를 연단 중이다. 30여년간 써온 글을 벗삼아 작은 일들을 벌였다. 청소년과 마을주민의 체계적 영상제작 지도를 위해 <폰영화아카데미>운영과 화성지역 역사문화와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화성동서남북 문화기행> 웹툰과 영상제작, 청소년의 창의적 놀이마당 축제
글은 발에서 나온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지역 주간지 화성000 7주년 돌잔치에의 덕담이다. 미국 심리학자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의 말을 빌리면 미운 일곱살은 ‘주도성’을 형성해가는 나이란다. 남.녀의 성인식은 물론 나름 경쟁사회에 들어서는 나이라니, 이를 인용해 축하의 말을 이어본다. 이따금 눈에 띈 지면이나 카톡에 전달된 기사를 살피면 꽤나 예리한 글맛이 나는 <화성000>다. 이는 예전에 보이던 언론의 고질적 기웃거림의 표피적 글 품새를 멀리 한 탓이겠다. 한구절 더 보태면 매체 운영진이 언론 본분에 닿으려 지난한 노력의 결실과 나름 매체에 대한 소신인가도 싶다. 조금 더 늘이면 기자다운 현장에의 발품과 그에 어울린 눈.귀의 냉철한 기능이 발현한 탓이겠다. 수 많은 기사가 넘쳐나며 실시간 생방송으로 현장소식을 전하는 세상이니 뉴스의 생명력은 현장에의 발길이지 않은가? 그를 바탕한 지역내 주요 사태에 대한 날카로운 촌평이 화성000가 세간에 눈길을 끄는 이유인게다. ‘그때’와 ‘그곳’ 생생한 현장이요. 부릅 뜬 두 눈과 쫑긋한 두 귀는 기자정신이겠다. ‘그때’ ‘그곳”에 <화성000>가 있었노라가 당당함이다. “시민이 믿는다, <화
생떼와 땡깡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오후나절 한통의 전화가 늘어진 몸을 깨운다. 미국에서 어제 들어오셔 불우한 분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주는 봉사일을 마친 후 귀가길에 통화란다. 팔순에도 매주말 이웃들과 소통하며 나름 실천하는 분이다. 질서존중, 봉사활동, 자기관리에 한평생 철저하셨기에 선한 영향력이 주위에 공명한다 싶다. 저녁 식사 후 어린 아이 수준의 물음을 던졌다. “미국과 한국 중에 어느 나라에 사는게 좋으시냐?” 자연스레 한국이라며 사는게 편리하기 때문이란다. 혹여 당신만의 생각이 아니냐고 하니 미국시민들도 한국에 대해 좀 알면 그렇게 생각한다니, 아마 국민총화로 일궈온 뻗어나는 발전상 탓인가 싶다. 문명사에 한획을 긋는 많은 인재들이 미국사회에서 배출되는 이유는 단지 선조들이 구축한 시스템 덕택이며, 저렴한 물가와 의료혜택도 한국이 우선하고, 미국에선 신속히 대사를 수행하는 게 어렵단다. 도로하나 개설하려 해도 이해집단의 방해로 십여년여 걸리니 개선하는 게 뭐든 그리 쉽지않고, 치안사정도 그리 좋지않아 도심이 홈리스들로 어지럽다는 말씀이다. 달포전 미국에 유학간 자식집에 한달여간 머물다 온 중학동창의 말과도 상통하니 미국에 향한 로망도 이제는 허상인가?
개판오분전(開板五分前)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머리도 꼬리도 없는 혼란스런 세상사에 어느 지성인의 글말이 글판에 올랐다. 점잖게 ”개 소리에 대해 공부합시다”로 글제를 붙였으니 세상이 ‘개판’이란 말씀이다. ‘개판’은 “상태, 행동 따위가 사리에 어긋나 온당치 못하거나 무질서하고 난잡한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우리의 슬픈 역사 6.25전쟁시 피난생활의 편린이다. 본래 밥솥 뚜껑을 여는 게 ‘개판’의 의미이나, 하루 한끼의 식사를 무료급식소에 의존하던 피난민들이 배식시간(개판) 전에 순서를 먼저 차지하려 소란과 무질서가 일어나니 ‘개판5분전’이 혼란의 상징으로 변용되었단다. 허나, ‘개판’하면 제 주인에게 충성하는 누렁이가 연상되는지 동향의 멍멍이도 웃을 일이다. 개 만큼 대접받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젠 “개 만도 못한 놈”이란 상스러운 욕도 그리 심한 비어는 아닐게다. 어린날 자식새끼 업어주던 내 어미 정성 만큼이나 보듬고 있는 애견들이 지천이요, 나라에서 혈통까지 관리하는 명견도 있으니 말이다. 비싼 먹거리에 오색 치장이요 고급 향수 수발은 기본인게다. 눈물로 장례식도 치른다니 “오뉴월 답싸리밑 개팔자”란 옛말이 생소하랴! 이상기후 탓일까? 장닭 대
애호박과 새우젓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밭 가을걷이도 끝물이다. 아침 식탁위 접시에 담은 애호박새우젓 볶음이 입맛을 돋운다. 어릴적 울타리나 밭두둑에 그리 흔히 보았던 애호박이건만 이즘엔 날개가 돋아 시장보기가 쉽지 않단다. 여름내 맴돌던 ‘국수와 전’에 곁들여지는 녀석이요 그맛이 이품은 되기에 연실 입에 들인다. 새우젓! 조금만 넣어도 짠 맛이 배어나 음식 맛을 어우른다. 애호박과 새우젓의 궁합이 제격이란걸. 선조들은 어찌 알았을까? 어느 해인가 동네 장년친목회에서 고군산열도의 비응도에 다녀오는 길에 나름 유명세를 지닌 강경 젓갈시장에 들렀다. 너도나도 새우젓갈을 파는 점포에 발길이다. 맛보기 권유에 못내 한 통이 두 통이 되어 양손에 들린 생필품 새우젓이다. 귀에 익은 마포나루와 강화도 새우젓 축제에도 한번 가볼 일이다. 뒤적거리니 “새우젓의 종류는 주로 어획 시기와 종류에 따라 나뉘며, 대표적으로 오젓, 육젓, 자하젓, 추젓, 동백하”가 있단다. “평생 굴곡이 심하여 고생을 많이 한다”는 ‘새우눈’이란 속설 탓일까? 액땜의 생활방편으로 맛난 먹거리로 진화되었나도 싶다. 김장김치 담글 때나 즐겨 찾는 순이네 순대국에도 새우젓이 들어야 입맛에 제격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