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부여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사물에 감응해 내맘에 이는 알고 싶어하는 기를 호기심이라 부른다. 지적 생명체의 본능이라 주변 것에 관심을 보태고 나서는 필자는 호기심이 많다. 그 호기심이 부풀면 꿈이요 실천하면 창조행위다 허니 호기심 일게 하는 스승의 동기부여는 제자에겐 크나큰 삶의 추동력이다. 하여 '청출어람청어람'의 의미는 세상 진화와 발전에 아주 깊은 물길이다. 짧은 인생에 호기심 일어 밤낮 새김질한 과제를 공적 공간에서 다중에게 가르치는 스승의 진지한 모습들이 감동이다. 제자 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훌륭한 동기부여라 하겠다. 주입된 이념에 찌들어 일그러진 청춘시절을 보내 나이들어 삶의 회한을 토로하는 글을 이따금 보니 지난날 낭비한 내 모습도 언뜻언뜻하다. 지팡이 놓고 나서는 발길에 "분류도해불부회"(奔流到海不復回) 맘가짐을 달아매야겠다. 가슴엔 "오기왕지불간"(悟已往之不諫), "각금시이작비"(覺今是而昨非) 쪽말에 담긴 뜻도 헤아린다. 새벽 창밖이 아른아른하다. 저만큼에 다가선 목소리 더빙한 상상영상이 멋스레 돌아간다. "자네 시방 뭐하는 겨?" "영화 찍는디요" "어허, 이보시게 세상이 무대고 누구나 배우거늘 무얼 찍는단 말인고? 그래 올해 나이가
봄날은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오늘은 경칩이다. "24절기 중 세번째에 해당하는 경칩(驚蟄)은 삼라만상이 잠에서 깨어나 활동할 것을 알리는 천지(天地)의 신호다". 어찌 개구리만 깨어나랴! 봄의 발자국 소리 성큼성큼 다가섰다. 겨우내 두터운 옷을 벗고, 앙상한 가지에 푸른 빛 돌더니 그새 남부 지방에는 산수유 매화 꽃망울이 활짝 피웠다는 소식이다. 굼뜬 몸으로 메타버스를 탄채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로 시대 경계를 얼쩡거렸다. 고금의 무용담과는 달리 꽤 지루한 설명이다. 나름 쟁여둔 앎, 양약고구"라니 꾹꾹 눌러 담으려 겅중겅중 건너 뛴 동.서문명 이야기 새김질에 머리가 띵하다. 역시 머리 공부는 찬바람 이는 가을이 제격인가도 싶다. 그저 사지가 스멀대는 봄날에는 들판으로 팔랑대는 제몸 놀림이 제멋이려나. 소홀한 건강관리로 '이렇게 좋은 날'에 창밖만 바라보니 대체 이 뭣고? 마음이 청춘이요, 세마치 장단에 몸 흔듦이다. "얼씨구 저 절씨구 너를 안고 내가 내가 돌아간다 황진이 황진이 황진이 내일이면 간다 너를 보러 간다 ~~ 사랑아 사랑아 내 사랑아 개나리도 피고 진달래도" 피는 봄날이다. [야호~ 산마루에 메아리 날면 나물캐는 누이 얼굴
오체투지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간밤에 그토록 가고 싶던 '차마고도'에 순례자들을 따라 너댓시간이나 '오체투지'한 탓에 티벳 고원의 깊은 기운에 취해 오전에 달디단 잠에 들었다. 창가에 봄볕이 졸고 있는 오후 나절이다. 경기도 이고을 저고을 고을 수령이셨더라. 구순 연세에도 등산을 하시고, 모임체에 정신적 기둥이신 원로(별호 지사)께서 카톡방에 올린 동영상-관중석과 거리로 저돌적인 종횡무진의 투우의 모습과 하단 표제인 "이런 소를 국회로 보내자"-이 한여름 열기에 시원한 한바탕 소낙비에 비견하려. 몇번을 홀딱하니 젊잖은 오체에 푸릇푸릇 차오르는 생명력이 씩씩하다. 한때 서점가에 유명세를 떨친 오도다께 히로타다의 <오체불만족>[훗날 '오체만족'의 오명을 달음]을 읽고난 후에 두 다리, 두 팔, 머리의 건강한 오체에 감사했었다. 봄날이다. 사방에 피어나는 생명체의 본연의 제모습이다. '오체투지' 낯이 설던 어구였다. 다섯마디쯤 날들에 내곁에 가까이 누운 계기는 젊은날에 늘상 꼿꼿한 허리로 머리로 세상을 떠받치느라 온세포가 피로한 탓이려나. 돌아보니 '신체발부수지부모'이라 건강한 오체를 낳아주신 부모님 은혜가 가이 없건만 마른 들판에 그간 나홀로 외쳤더라
삼삼한 날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얼마전 한우데이에 맞춰 반값으로 할인한다는 소고기에 이어, 반값에 세일한다는 돼지고기 얘기가 귀에 언뜻하다. 삼겹살데이란다. 비계가 삼겹으로 겹쳐 보인다해 '삼겹살'이라 부르는 유명세를 지닌 돼지고기와 저녁 데이트를 하는 날이다. 강물집, 순이네, 돼지엄마, … 길다란 뒷골목이나 옆골목에 들어 불판에 뒤적이며 소주잔을 넉넉히 기울이던 맘편한 상호일테다. 석삼자가 겹쳐 삼삼한 3월 3일이니 그 모양새도 삼삼, 맛도 삼삼, 값도 삼삼하다니 '위하여' 술잔도 삼세번은 부딪히려나. "큰집 잔치에 작은집 돼지 죽어나간다"는 속담에 어린날에 시골 대동잔치에 어른들 돼지 한마리 잡는 왁자지껄한 정경, 청춘시절에 신이나 쌩하니 삼겹살 대바덕에 담아 오토바이에 싣고 퀵서비스와 퇴근하며 넥타이 풀고 동료와 이얘기 저얘기 세상사를 삼겹살에 겹쳐 상추쌈 하던 일들이 일순 휘리릭이다. 몸 고장으로 발 묶인지 몇날인가? 고산 선생은 수석과 송죽 그리고 달을 벗삼아 무료함(?)을 달랬건만 무엇을 벗할거나. 세월을 주무른 다산 선생의 여름날 ‘소서팔사(消暑八事)’를 일별하니 그중 시작(글쓰기)이 몸놀림도 음식도 제한된 공간에선 그만이겠다. 글제를 정해 상
우리는 시인/영화감독 우호태(3월1일) 글제는 대중가수 송창식이 부르는 노래다. 104주년 3.1절을 맞는 감회를 얹는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수 있는 우리는 아주작은 몸짓 하나라도 느낄수 있는 우리는" 모두가 작은 애국자다.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此)로써 세계 만방에 고하야 인류 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 고교시절 교과서에 실린 육당 최남선의 독립선언서를 암송하느라 애썼던 기억이다. 오늘날 우리가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자유' 독립을 이루기 위해 선열들이 피눈물 흘린 긴어둠을 어찌 잊으리오. 허나, 어찌된 일인가? '삼천만이 하나된 방방곡곡 목메여 부르던 자유대한 만세 소리'가 1세기 지난 오늘날에도 광화문에서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 수년간 외쳐오니 말이다. 수년간 시절이 하수상하기에 우리는 모여 외쳤다. "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는 우리는" 작은 애국자다. "마주치는 눈빛 하나로 모두 알수 있는 우리는" 진정 작은 애국자여야 한다. 이는 내 자신의 양심의 발로요 내 자손에게 본이요 가르침이리라. 뜨거워라. 내 나라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충무공이 버텨선 광화문 네거리로 달
손거울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대학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이야기다. 삶에 청춘시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느라 청춘예찬을 거론하며 학습을 이루기 위해 문방사우(붓, 벼루, 먹, 종이)와 농야사우(삽,괭이, 낫, 호미)를 빗대어 곁들였다. 청춘사우는 뭘까? 대답으로 여학생의 손거울이 등장해 한바탕 웃음 후에 짧은 정적이 강의실에 머물렀다. 사족을 달지 않아도 흐트러진 자신들의 일상에 순간의 성찰이 있었기 때문이겠다. 청춘은 꾸미지 않아도 내면의 푸릇푸릇 생명력이 피어나건만 가방에서 손거울을 수시로 꺼내 그 예쁜 얼굴을 들여다보니 그저 귀여운 녀석들은 무얼 그리 들여다 볼까? 하기야 여섯마디 필자도 내면은 고사하고 얼굴에 점만 보이니… 익히 들은 바의 명경지수는 생각과 마음이 맑고 깨끗하다는 것을 거울에 비유하는 말이요, 명경대는 저승 입구에 있다는 거울로 지나는 사람의 생전의 행실을 그대로 비춘단다. 한편, 공자가어에 "수지청즉무어(水至淸則無魚)요, 인지찰즉무도(人至察則無徒)(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친구가 없다)" 하니, 이즘 물고기처럼 떼지어 방패들고 다님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 크다 하겠다. 사회의 손거울? 대다수의 양심인 일게다.
화살기도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서예와 지역문화탐방의 인연으로 절기마다 갖는 가톨릭 신자인 지역 어른과 교회 장로님과의 만남의 자리였다. 한때 한시에 매력을 가져 당송팔대가를 비롯 유명 시인의 싯구를 나름 멋내어 낭송했던 까닭에 화선지에 흘린 어른의 서예체를 살피며 시골정경을 수백여년 거슬러 허공에 달아매는 희열감을 갖는다. 간간이 살아온 인생지락을 버무린 말씀은 일상에서 정제해야 할 몸가짐이겠다. 또한 수년간 문화탐방을 하며 보았으나 지나친 현판의 서체에 새김질을 하니 때론 기다려지는 만남이요 서예와의 어울림이다. 메모가 습관인 탓에 들려준 말씀 중 귀가 언뜻한 글제다. "새벽미사 독서나 복음, 강론 말씀 중에서, 아니면 아침 기도 시편이나 찬가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는 딱 한 구절만 선택한 기도"가 화살기도란다. "영혼의 활을 당겨서 하느님께 쏘아 올리는 기도"라며 일상을 지난날 후회되는 일을 털어내며 맘을 가벼이 하신단다. 개신교에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행위"를 중보기도라며 장로님도 한 말씀이다. 기도의 효과는 과학적인 근거도 있으나 그 옛적 길 떠난 자식들 위해 우리 할매, 어매들은 정한수 떠놓고 두 손 모음으로 '화살기도와 중보기도'를 했지
구름 한점 없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글제의 모습은 올려본 높푸른 가을 하늘일게다. 고추잠자리도 높이 날았다. 마음자리에 무심한 가을 하늘정경이 들었다. 때 아닌 2월의 끝자리에 왠 가을타령인가? 고관절 탓에 1년여를 지팡이를 들고 나들이를 하니 지인들의 우스개 소리가 한 방구리요 측은지심도 한고랑이겠다. 왜 그리 되었나 물음에 "세상살이가 두 다리로 버텨서기 어려워 세 다리로 서는 거다" 답하니 돌아오는 말도 가관이다. 진즉 세 다리로 살아왔는데 새삼스레 왠 다리타령이냐다. 혹자는 그리 마라톤을 즐긴 댓가라며 몸관리를 잘하란다. 간병인 아내는 수년간 삼복 더위에 수백키로를 걸어 혹사한 탓에 관절에 이상이 생긴게 당연하단다. 수 많은 민간요법을 따르나 천성이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니 좀체로 나아지지 않고 아픈 부위도 넓어져 몸의 기우뚱이 여간 아니다. 혹시나 바램으로 전문의를 수차례 면담해보니 결단을 내리란다. 어느날, 병원을 찾아 두어 시간을 자고나서 며칠간 움직거리니 살 것 같다.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난다". 백넘버 부착한 러닝복장으로 마라톤 동호인들과 이 대회 저 대회를 찾아 전국토를 걷고 달렸나 싶다. 어느 여가수는 저 하늘에 구름이나 되길
"철학은 우주라는 위대한 책에 쓰여 있다. 우주는 항상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다." "그러나 이것을 이해하려면 우주의 언어를 먼저 배워야 한다, 자연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여 있다."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말이다. 천문, 물리, 화학, 수학,...등 자연과학의 심오한 세계를 어찌 알랴! 400년전의 단순한 문장이나 주장함에는 목숨을 걸어야 했던. '우주의 언어', 그 담긴 뜻을 헤아릴 려면 적어도 동네울에 막힌 관계를 넘어 깊은 사유의 터널을 지나야 할테다. 그저 귀에 익은 노벨과학상을 통해 그저 우주에 대한 경이로움을 가질 뿐이다. 우주의 점이려나. 지구촌에 문자나 소리로 소통하는 생명체가 인간이려. 지구촌 공용어는 아무래도 영어이겠다. 디지털시대에 IT문자도 생활말이 되었다. 계묘년 벽두에 중산층이 사용하는 서울말, 한글 표준어로 두 마리 곰을 이어 '곰곰'히 생각한다. "고개들어 하늘을 보라"는 호킨스 박사의 말과는 달리 겨울 빙판길에는 고개숙여 제몸 관리가 우선 이었겠다. 곳곳에 '강아지 조심'에다 엎어질라 조심조심한 세월의 징검다리를 건너왔단다. 내 사고의 울이 이웃, 지구촌, 우주에로 뻗어가련만 여섯마디 넘어서니 숨소리 마저 가쁘단
[가방을 둘러멘 그 어깨가 아름다워 옆모습 보면서 정신없이 걷는데 활짝핀 웃음이 내 발걸음 가벼웁게~길가에 앉아서 얼굴 마주보며 지나가는 사람들 우릴 쳐다보네]. 흥이 솟아 몸 흔들며 부르던 김세환의 "길가에 앉아서"의 노래말이다. 그 '가방을 둘러멘' 소년 소녀들이 '세월을 어깨에 둘러멘' 채 어엿 여섯마디 중반에 이르렀다. 정신없이 내딛은 발길에 졸업후 반세기 세월이 휘리릭이다. 1호선 전철에서 방송되는 "병점역"의 인근에 자리한 1966년도에 병점초등학교를 입학한 22회 남.녀 동창생들의 신년 인사회 날이다. 다들 모임 장소에 오느라 자동차로 돌아본 그 시절의 생활터전은 사라지고 추억만 남아있나 싶다. 그 옛적 마을들 이름이 다정하다. 진안리(참말, 곡말, 미득골,..), 병점리(벌말, 안화동, 느치미,...), 기산리(반쟁이, 틀뫼, 능동,...), 능리(개나리, 독재울, 송골이) 모두다 어디갔나? 봄이면 진달래 개나리 흐느끼던 다람산, 구봉산, 동학산이요, 여름날엔 기산천, 삼미천, 방죽에는 피라미 붕어 송사리가 유유하던 때이다. 칙칙폭폭이 쉬어가고 가을날 코스모스 한들대는 한가로운 병점역(떡점거리)에 가설극장 들때면 동네 형아.누이들 야단스런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