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언제 철 들래?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근동의 고모댁, 외가댁 어른들을 찾아 뵈니 지난 추석명절 때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지난 일을 깜빡하시고 말씀들도 한층 어눌해지셨다. 흐르는게 아니라 아예 날아가는 세월이다. 총총 걸음하던 어린시절부터 터벅터벅에 이른 여섯마디에 담은 시간배열이 일순간 휘리릭이다.
앞으로 앞으로만 치닫는 바쁜 일상에 과거로의 시배열 순환을 가져오는 명절은 지친 삶에 힐링이요 명상의 시간이다. 외가댁에서 머물던 청년시절, 문풍지 떠는 한겨울밤에, 군불 땐 사랑방 아랫목에서 데우던 등허리의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후나절 눈덮힌 천변길에 나섰다. 어느 님이 만드셨나? 눈사람이 공원내 벤치에 홀로 있다. 거무튀튀한 요즘의 험한 말을 “꾸짖는 눈사내가 어쩐지 맘에 들어” 곁에 앉아 한컷 한 후, 순백의 산책길에 주욱 발자국을 내어간다.
최근에 들어 가난한 마음 탓일까? 좌우를 둘러보니 황구지천가에 무리진 오리들이 흘깃흘깃한다. 기러기, 까치, 비둘기 심지어 포르르 포르르 나는 참새들조차도 흐트린 발자국들을 꾸짖나도 싶다. 앞서 달려나간 네바퀴의 구른 자국이 선명한데 과연 어디로 갔을까? 멀리로 눈길을 내니 여의도, 한남동, …, 여러 곳에서 검은 카르텔 완장들이 벌린 무법천지 사태로 온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홀로 구를게다.
‘독과수이론’’ 하얀 눈밭에 큼직하게 쓰인 글귀다. 제대로 법공부했으면 알아들을 말이다. 법복을 입은 공복이라면 그간 살아오며 듣도 못한 헌법까지 밤새워 공부한 백성들에게 최소한의 예의차림이라도 있어야 하거늘, 거리에 버젓한 “고향에 잘 다녀오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위정자들의 입발림 현수막에 한없이 섧기만 하다.
탐욕이 끝이 없다지만 가관이다. 빈둥대다 조상이 애써 물려준 집안 곳간에 불싸지른 것도 모자라 아비목을 조른 채, 고향을 찾는 어린 백성들에게 무슨 고개든 인사란 말인가? 더우기 불을 끄기는 커녕 아예 집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집주인 자리까지 그어 대니 말이다. 공정, 양심, 절차, …, 모두 얼어죽은 시대의 코미디요, 훗날에 필연 세기적 ‘완장시기’라 이름할게다. 칼춤 추는 철부지 뻥튀기들의 얼빠진 행동에 “너흰 언제 철이 들래?” 꾸지람 소리가 지구촌 반대편에서도 들려오니 말이다.
완장들이여, 양심을 지키시라! 한 가정의 아비, 어미된 자의 도리라도 지키시라. 공복은 나라의 척추이지 않은가? “백성이 아무리 약해도 이길 수 없으며, 백성이 아무리 어리석어도 속일 수 없다”는 경구가 바로 하늘의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