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배운대로 하소서! 어른들 말씀이 기억난다. “네살박이 아이도 손에 쥔 사탕을 누군가 뺏으려하면 버둥대며 버티려 하는데 다 큰 사람 물건을 뺏으면 쓰나”. “생활소음·진동 규제법 시행규칙 제20조에 근거하여 주거지역 65dB(A), 상업지역 70dB(A)을 기준으로 하여 초과시 행정처분을 내린다”. 살피면 이는 소유물과 아이의 본능적 방어와 정서 지장에 대한 공동체 생활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규범이겠다. 말을 튀겨 이으면 사회를 이끄는 분들을 일컬어 지도자로 부른다. 지도자도 여러갈래다. 우선, 풍전등화의 나라를 위해 행동하신 선각자들이 있겠다. 필연코 몸바친 희생이 따른다. 또한 가난과 무지몽매했던 백성을 위해 배고픔을 면케하고 문맹퇴치 계몽에 힘쓰신 분들도 지도자일게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애민 정신과 지행합일의 모습이다. 갖은 장애와 고난에도 스스로 세운 정신이 기둥이요 뿌리인 까닭에 오직 한길을 걸었다. 이에 그런 울림있는 분들에게 그저 소사에 희비하는 평범한 우리네는 존경심을 갖고 우러른다. 애민의 표상인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그랬으며, ‘백의종군’의 수난에도 나라를 위해 꿋꿋한 충무공도 그러하거니와 개인영달이 아닌 <동
훈민정음 예찬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이삿짐을 싸다 서가에서 눈에 띈 시집을 꺼내들고 기억나는 몇편의 시를 휘리릭 살폈다. 선각자 한용운이 남긴 나라잃은 설움을 형상화한 <님의 침묵>가운데 한귀절이다. [님은 갓슴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님은 갓슴니다. … 우리는 맛날때에 떠날것을염녀하는 것과가티 떠날때에 다시맛날것을 믿슴니다. 아아 님은갓지마는 나는 님을보내지 아니하얏슴니다. …] 새삼스레 이글을 짓는 이유는 우연히 알게된 훈민정음에 대한 자긍심이겠다. 백성을 어엿비 여겨 훈민정음(한글)이 창제되었다. ‘님을 보내지 않아’ 나랏말 잃은 모진 세월을 버텨내고, 다시금 ‘서광이 비치는 아침의 나라’(코리아)의 한류(K-POP, 한글, ….)가 지구촌에 물결쳤다. 이는 소리문자(표음문자) 한글이었기에 가능한게다. 문자의 발달은 인류 문명사와 상관한단다. 프랑스 작가 사르트르(J. P. Sartre)는 “문자는 이 세상을 정복하는 수단”이라고 까지 언급하니, 한글이 과학적인 첨단문자인 까닭에 디지털시대에도 최적이라 인류문명에 미칠 영향이 그지 없을 것 같다. 수많은 저명인사와 학자들의 한글예찬을 훑어보자. .최초 외국인 한글학자 호머 헐버트(Homer Be
운무 더불고 <화성에 살어리랏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간밤에 후덥지근한 날씨로 아침부터 비가 내리니 구수한 기름냄새의 빈대떡 생각이 절로 난다. 어린날 한방구리 추억이 솥뚜껑 위에 지글지글해 거실에 서성대니 눈치가 구단인 아내가 주방으로 가 부침가루를 풀고 애호박, 감자, 김치를 썰고 갈아대 기대감에 기분이 짱이다. 휘릭~ 가스렌지 불기운에 땀흘리는 아내에게 미안해, “야아! 증말 맛있겠다.” 내 알랑거림이 이어가자, 아내는 “맛있어요? 나는 할머니가 돼지기름 둘러 부쳐주신 빈대떡이 기억나요”하며 어릴적 기억을 추스린다. 연실 입을 향한 빈대떡에 어머니, 할머니 모습이 선하다. 부치는 김에 너댓장 더 부쳐 옛 추억을 형제들과 공명할겸 좀 세어진 빗발을 가르며 발안으로 향했다. 오랫만의 만남이다. 상상은 즐거운 놀이마당이지 않은가! “..... 와하하하 우셥다 이히히히 우셔워 에헤헤헤 우셥다 에헤헤헤 우셔워 돈없으면 집에가서 빈대떡이나 부쳐먹지…..” 가는 동안 옛스런 <빈대떡 신사>가 빗소리에 매(?)를 맞는다. 원탁에 둘러 앉은 형제들이 빈대떡에 덧말을 놓아 어린시절 함께 놀던 추억도 한층 폴폴폴 피어난다. 빈대떡, 요놈이 추억 도우
나는 어디에 자리하는가?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 오직 나만을 위한 그 약속과 내곁에서 날 지켜 준다는 말 이번 만큼은 제발 변치않길”, 가수 조항조가 부른 <거짓말>이다. 노랫말을 음미하니 비련의 발길들이 꽤나 바닷가를 찾았을 그런 ‘고짓말’은 밋밋한 개인 인생길에 멋진 추억이겠다. 매스컴에 보도되는 지도층 인사(?)들의 지(지들)만을 위한 ‘거짓말’과 ‘일구이언’ 심화되어간다 싶다. 한 해 두 해가 아닌 까닭에 그러려니 하건만, 때 이른 무더위에 보태져 한층 불쾌지수를 높인다 싶다. ‘다 그런거 아니야’ 자조를 넘어서, 이즘엔 아예 사회를 지탱할 생명력 마저 고갈된다 싶던 차에 그나마 공권력이 서서히 얼차리니 다행이겠다. ‘일구이언(一口二言), 말을 이랬다저랬다 하니 부풀리면 인격을 가늠하는 말일테다. “정직해야 한다”. 스승님에게 그리 배웠고 자식들에게 그리 가르쳐들 왔다. 변신의 귀재인 카멜레온은 기분과 환경에 따라 처신한다지만 인간이 두 얼굴이라면?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소시민에겐 그런 인사들의 ‘거짓말이나 일구이언’은 복창터질 일이지 않은가? 얼이 깃든 얼굴이라고 한다. 얼빠져 한입으로 두 말하거나 ‘거짓말’로 저명해진 인사의 말재
울려거든 제대로 우소서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치매와 질병이 겹쳐 ‘고희’ 나이에 이승을 떠나 주변에 안타까움을 남긴, 친지의 장례식에 이른 아침 다녀오며 한 생각에 붙들렸다. 고인이 그간 살아오며 조용히 베푼 마음씨에 여러 친지들이 모여 슬픔을 공명한다. 빈손으로 빈손으로 왔다가는 인생이라지만, 삼가 고인의 궤적을 수채화로 비유하련다. 70년간 손.발,몸짓으로 그려낸 그림을 감상하자니, 때론 봄날의 목가적 전원의 스케치요, 여름날 장대비에 쓸려내린 토사에 멍한 눈길을 허공에 묻은 시간이 몇년이던가? 어찌, 어둔 색으로 붓칠하랴! 누런 알곡 자식농사로 가을햇살에 허리굽은 환한 미소도 화판에 피어났건만 아, 이 안타까움은? 겨울들판의 텅빈 멋을 활짝 펴지 못한 채 이른 이승에의 떠남이겠다. 떠난 빈자리에 소복히 쌓이는 당신의 뒷이야기가 고고성에서 눈물울음까지 이은 열두마당 판소리요, 별부스러기 육신이 대자연과 어울려 빚어낸 교향곡이리. 이순간, 귀한 몸 태워 하늘/대지로 고향길 나서니 마중하는 이 누구며, 배웅하는 이 뉘신가? 그대여, “갈래면 가지 왜 돌아보오 찢어지는 아픔을 느껴야 하나요” 이승에 미련두지 마소서! 생자여, 울려거든 제대로 우소서! 소리낸 울
걸음걸이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걸음걸이는 “몸무게나, 키, 나이, 지형, 짐, 문화, 힘, 신체에 따라 다양하며 사람의 평균 속도는 한 시간에 5킬로미터이다. 걷기는 달리기 보다는 느린 걸음걸이다.” 오랜만에 냇둑을 걷는다. 몸고장으로 세다리로 걷다 드뎌 두다리로 풀냄새 그득한 천변길을 걷노라니 이 기쁨 무엇에 비견하랴! 돈다리(?)탓에 꽤나 아픈 나날을 보냈기에 거리에 오가는 걸음걸이에 눈길이 난다. 아가의 아장아장에서 노인의 쉬엄쉬엄에 이른 걸음걸이가 삶의 궤적- 토도독거리는 유소년, 휘이익 나르는 청년, 관조하는 장년.노년의 발길-이지 않은가? 기고, 걷고, 뛰고, 날으는 인생 마당놀이가 흐르는 세월따라 시나브로 저무는 날처럼 고요해가니 말이다. 인류는 700만년전 직립보행을 했다니 이는 문명사 발달에 한축일게다. 하여 “... 이리오너라 앞태를 보자, 아장 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방긋 웃어라 입 속을 보자, 아매도 내 사랑아 …” 멋진 판소리 사랑가도 태어났을테다. 꿈 실은 <날개>- “일어나라 아이야 다시한번 걸어라”-를 펼치고,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 하숙생이 우리네 삶일지니, 걷기의 중요성을 일깨운 어느 책의
능소화 시인/우호태 지난 토요일 지역내 작은 음식점에서 평소 알고지내던 선배님의 칠순전치가 열렸다. 칠순, ‘인생칠십고래희’라는 당나라 시성 두보의 말이 무색할정도의 팔팔한 선배의 모습이다. 늘상 지역봉사를 해온 터라 아름아름 찾아온 축하객들로 식당안이 붐볐다. 인사와 축하 말씀을 이어 어디 잔치날에 신명나는 노래가 없으랴! 여러 분들이 흥을 돋우니 시골스런 현대적 놀이마당이 한바탕 펼쳐진다. 오호라! 녹슬은 목소리이건만 들이댄 마이크에 박경원 선생이 부른 <만리포사랑>, 구십리 뱃길에 고운 은비늘 물결을 수놓고, 이은 노래는 ‘백수”에 이르는 건강한 삶을 기원하는 아이러니하게 쟈니리의 <뜨거운 안녕>이 홀에 퍼졌다. 돌아오는길 천변길을 달리며 “신고산이 우르르…”, “석탄 백탄 타는데 연기만….” 듣노라니 가슴 한켠에 젖어든 가락에 듣는이 없어 목청돋워 맘껏 노래(?)를 불렀다. 그날의 끈이 이어져 어느 지인의 절절한 인생고개인 추풍령의 한많은 능소화 사연을 전해와 옮겨본다. <능소화> 그리워 그리워라 따스한 님의 손길 뜨거운 님의 숨결 천리길 떠나셨소 만리길을 떠나셨소 울다울다 지친 이내 몸 눈물꽃을 피옵니다 서러워 서러워
‘습관’에 대하여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왠지 어감이 콘크리트화된 네모난 공간으로 들어선 느낌이 드는 ‘습관’이다. 습관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격언중에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으뜸일게다. 이어질 속담은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이겠다. 어릴적에 방정한 품행을 위해 부모님, 동네어른, 초교 선생님들께서 들려주시던 말씀-반찬을 골고루 먹어야지, 바르게 앉거라 …., 등 식습관과 자세습관의 기초 가르침이겠다. 하여 초교졸업시 수여하는 우등상장- "품행이 방정하고 학업 성적이 우수하여 이 상을 줌”-의 글귀에도 ‘품행의 방정’이 학업성적의 우수함보다 앞서 강조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린시절에 ‘품행 방정’이 채 읽혀지지 않았으나 긴 삶의 행보에 무엇보다 중요함을 일러준 가르침일게다. 아침식탁에서 아내의 잔소리가 어제 오늘이 아닌 탓에 고벽(痼癖)이 되어버린 내 습관을 생각하며 글을 짓는다. 여섯마디 중반까지 내게 길들여진 습관 중 좋은 것과 나쁜 것은 무얼까? “…..밖에 나가서 놀아라, 많이 먹어야 힘을 쓴단다, 책을 많이 읽어 보렴, 생각하고 말하는 거야,.......” 누구나 한번쯤 부모님, 선생님, 동네 어른, 상사에게 들었던 입말이요 뒤적인 책들에서 여운이
심야수상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쏜 화살처럼 아침나절이 날았다. 제3회폰영화제 준비하느라 교육, 홍보, 연출, 언론, … 등의 관계자들과 소통하다보니 점심을 맞았다. 오후나절도 쌩하니 달렸다. 결혼해 여태껏 살아온 집의 이사준비로 공인중개사, 세무사, 동사무소, .. 등에서 필요 절차를 밟다 보니 그새 햇살이 눅는다. 저녁나절은 가족울내의 정담이 한가로이 걷는다. 10여년전 작고하신 아버님 추모일이라 형제들이 모여 앞산, 안골, 곶장대, 미륵골, 허벅머리, 지게, 삼태기 …등 고향의 곳곳에 서린 유년시절의 추억을 되새김질하다 보니 사방이 진즉 어둠에 잠겼다. 집에 돌아와 이생각 저생각에 잠못들어 하다, 빗소리에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섰다. 맘이 촉촉하다. 커튼을 걷고 창밖을 보자니 거리를 비추는 가로등과 어울린 짠한 영상이 순간 스친다. 핸폰을 켜 ‘불멸의 가수’라는 배호가 부른 <안녕>으로 조용히 밤비 마중이다. “.....빗속에 젖어 서글픈 가로등 밑을 돌아서며 남몰래 흐느껴 울며 안녕”하며 흐르는 때맞춘 심야곡이 제멋에 제맛을 낸다. 모처럼 맞은 행운(?)으로 심야의 산책이다 과연, 노랫말 주인공 그니가 후회도 울지도 않았을까? 호숫가 찾아
<대한민국을 지켜낸 당신의 희생을 기억합니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제69주년 현충일 추모식장에 새긴 슬로건이다. 빼앗긴 국권을 찾으려, 자유평화를 지키려 희생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기리는 현충일이다. 어찌 몇줄 글로 그 고귀한 희생을 기릴 수 있으랴만 희생된 유가족의 세세한 부분까지 살피겠다는 대통령께서 밝힌 추념사가 새삼스레 큰 울림이다. “선배님, 올해는 작년과는 달리 공공기관이 조기를 다 달았네요. 내년엔 현충일만이라도, 때도 없이 이벤트 행사처럼 자신의 이름을 다다닥 내다거는 정치인들의 현수막처럼, 거리나 아파트에 게시되면 좋겠어요.” 늘 발품을 파는 언론사에 근무하는 지역 후배의 현장에서의 전언이다. 필자도 아침 늦게 베란다에 조기를 게양한지라, 후배의 말에 뜨끔하여 10시 정각 동부출장소에서 울린 사이렌 소리에 정성스레 묵념을 했다. … <6.25참전 학도병을 추모하며> 가까이 멀리에도 총소리가 들릴려나 포성이 멎은 산야에 풀벌레 소리 찌르르... 소쩍새 소쩍 소쩍꿍… 달빛은 휘영청 밝은데 철울 두른지 일흔 해 모로 누워 있어도 그날이 아프다 가신 님들 누운 곳에 노랑 애기똥풀 지천일까 하얀 망초꽃도 피었을까 두고 간 고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