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7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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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띄우는 편지292(10월 19일)

개판오분전(開板五分前)

 

개판오분전(開板五分前)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머리도 꼬리도 없는 혼란스런 세상사에 어느 지성인의 글말이 글판에 올랐다. 점잖게 ”개 소리에 대해 공부합시다”로 글제를 붙였으니 세상이 ‘개판’이란 말씀이다.

 

‘개판’은 “상태, 행동 따위가 사리에 어긋나 온당치 못하거나 무질서하고 난잡한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우리의 슬픈 역사 6.25전쟁시 피난생활의 편린이다.

본래 밥솥 뚜껑을 여는 게 ‘개판’의 의미이나, 하루 한끼의 식사를 무료급식소에 의존하던 피난민들이 배식시간(개판) 전에 순서를 먼저 차지하려 소란과 무질서가 일어나니 ‘개판5분전’이 혼란의 상징으로 변용되었단다.

 

허나, ‘개판’하면 제 주인에게 충성하는 누렁이가 연상되는지 동향의 멍멍이도 웃을 일이다. 개 만큼 대접받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젠 “개 만도 못한 놈”이란 상스러운 욕도 그리 심한 비어는 아닐게다. 어린날 자식새끼 업어주던 내 어미 정성 만큼이나 보듬고 있는 애견들이 지천이요, 나라에서 혈통까지 관리하는 명견도 있으니 말이다. 비싼 먹거리에 오색 치장이요 고급 향수 수발은 기본인게다. 눈물로 장례식도 치른다니 “오뉴월 답싸리밑 개팔자”란 옛말이 생소하랴!

 

이상기후 탓일까? 장닭 대신 ‘개 소리’에 날이 새고 지니 어찌 된 일인가? 제 주인까지 물어뜯는 세상 들판이 정말 ‘개판오분전’이라 미쳐 죽을 지경이란 말씀이다. 쉼없이 짖어대는 ‘개 소리’엔 처방전이 없으려나? ‘개 소리’ 공부하려면 ‘개 족보’ 연구사는 필수과목이겠다.

 

젠장, 뒷동산 달맞이 함께 가던 검둥이는 어디갔나? 정월대보름 윷놀이 말판에도 기웃대는 다정한 벗들, 누이 치맛자락 어르다가 동네어귀 낯선이 들면 이어달려 짖던 바둑아 얼룩아, 너네들 어디 갔니? <엄마찾아 삼만리> 주인공 마르코를 향한 짠한 감동에 진돗개 백구도 ‘주인찾아 삼만리’를 했건만…

 

어데 ‘개 짖는 소리’ 들렸으랴! 순한 눈매에다 복실한 고향집 멍멍이가 참 보고픈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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