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구지천 천변기행4
시인/ 영화감독 우호태
저녁나절 천변으로 아내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기승을 부리던 낮더위가 한풀 꺾여 선선하다.
황구지천 건너편 네온 불빛이 하나 둘 피어난다. 잔잔한 수면에 아파트, 상가, 가로등이 통째로 물속에 거꾸로 세워져, 마치 초현실주의자들이 즐겨쓴 찬란한 데칼코마니다. 이따금 바람에 물결이 일어 에펙 빛 번짐 효과도 연출되고, 둑방 풀벌레와 물방개 같은 자동차들이 도로위에 달리며 음향을 곁들인다. 상가불빛, 가로등, 아파트, 바람, 하천, 자동차 들이 어울린 예술작품이겠다
산책은 사유의 시간이다. 재미있는 <수궁가>의 굼뜬 별주부와 잰 토선생의 눈길처럼 저 멀리 양산봉 마루턱과 곁에 흐르는 황구지천 수중의 용궁을 왔다리 갔다리다. 죽장에 삿갓 쓴 방랑거사 ‘난고’ 선생은 이 풍경을 어찌 표현하려나? ‘송강’선생이 붓길을 낸다면 ‘황구지천별곡’이라도 탄생할거나? 이백은 강서성 ‘여산’의 폭포수를 바라보며 그 비경을 1km 남짓한 길이의 “비류직하삼천척”이라 과장해 읊었겠다, 허면 양산봉과 독산성에서 바라본 굽이굽이 유유히 흐르는 “황구지천이백리” 물길은 어떻게 묘사하려나!
젊은이들이 다릿발 아래 마련된 족구장에서 환한 조명아래 족구를 하고 있다. 팔팔한 청춘들이다. 주변의 어둠에도 불빛이 환해 푸른 산책길이다. ‘ㅍ’에는 생명력이 있나보다. 팔팔하다, 푸른 하늘, 푸른 물결, 푸른 잎새, 푸른 과일, 풋사랑, 풋내기 글자에 공히 들어있는 ‘ㅍ’이다. 서투름속에 나아갈 희망도 곁들여졌다. 둑방길에 송송한 강아지풀이 부드러운 바람결에 눈길을 어룬다. 풀벌레 소리를 가슴에 담아 아파트 후문에 돌아오니 솔나무 울 너머 검푸른 하늘엔 초승달이 외로이 빛난다. 만월을 향해 꿈에 젖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