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의 밤’ 수상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연말 송년회가 해를 한달여 앞서간다. 화성시 송산동 소재한 ‘안용중학교 12회 동창회 송년의 밤’이다. 의술 발전(?)을 위해 다섯해 동안 헌신한 필자에겐 오랫만에 즐거운 만남이다.
장소에 들어서니 무대 스크린에는 모임 때마다 동창들이 남긴 정다운 영상이 돌아간다. 반세기 흐른 그 옛적 아침모임 때마다 “역사 깊은 세마대를 앞에다 두고” 목청 돋워 부르던 교가도 등장해 쓸쓸한 날씨와 달리 맘이 따뜻해진다. ‘정직, 믿음’은 우리의 사명이라 합창하던 그 까까머리와 새침떼기들이 어느덧 손주들을 거느렸고 낼 모레면 ‘인생칠십고래희’다.
임원진의 고운 정성이 어울려 푸짐하게 마련된 송년모임이다. 늘 농사일에 분주한 동네 동창생도 만사를 제쳐두고 채를 잡고 식전 무대에 올라 동창들의 앞날의 행복을 기원하는 <비나리>를 풀고, 이어간 다른 동창생의 색소폰 연주가 흐느끼니 굽은 심신에 조용한 울림이려. 인생길 이골 저골에 넘나들던 반세기 세월의 강을 거스른 즐거움이다.
우정출연한 밴드단 연주에 스무너댓명 동창들의 목소리가 트였다. 굴렁쇠도 굴렸을게다. 메밀꽃 지천이던 물방앗간의 사랑이 생생하더라. 징검다리 개울 ‘윤초시 증손녀’도 만났더라만 “그 시절 푸르던 잎 어느 덧 낙엽”되고, 연분홍 치마가 휘날리던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흘러간 그 노래 그 세월속에 우리네 가슴에 묻은 소야곡이려.
남자 동창생이 옛노래를 부르고 내려오자 어느 여자 동창생이 좌중에게 묻는다. “왜 남자들은 옛노래를 좋아하냐고?”, 그 동창생 맘을 그 누가 알까만 글쎄, 답이 되려나?
“누구나 웃으면서 세상을 살면서도
말 못할 사연 숨기고 살아도
나 역시 그런저런 슬픔을 간직하고
당신 앞에 멍하니 서있네
언제 한번 소리내어
소리내어 울어 볼 날이
남자라는 이유로 묻어두고 지낸
그 세월이 너무 길었어”
안녕리 소재 아담한 호텔에서 안용중 동창생들의 안녕을 소원하는 송년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