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저수지 순행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달포전에 약속된 만남이다. 여러 모임중에서 지위, 재산, 지식의 높낮이도 그저 털털하니 편안한 고향 동네 장년들의 모임 일칭 다람산친목회 나들이다.
예산에 저수지, 추사 김정희 생가, 삽교천을 순행하는 일정이라 부풀어 오른 기대감에 출발장소에 일찍 나갔다. 언제 만나도 그저 구수한 누룽지 맛나는 만남이라 저마다 옛 시골집 헛간에다 나뭇짐 부리는 환한 발길들이다.
차창가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어울려 지난 세월도 휙휙이다. 시간여 걸려 저수지에 도착하니 주차장이 벌써 만차다. 어린 맘으로 모노레일에 승차하니 꽤나 흥미롭다. 소나무, 참나무, 측백나무, …, 등이 늘어선 산허리를 돌고 산등성이를 오르락 내리락하니 마치 세상살이 모양새 같다. 저수지 둘레가 백여리요 동서길이가 오십여리에 이른단다. 온화한 수면에 어울린 건너편 산세도 제멋으로 누웠다.
산허리를 돌다 바라본 저수지 출렁다리다. 몸이 좌우로 흔들려 출렁다리란 느낌이 들어 <꽃마차> 타는 세상살이 대신 출렁다리의 놀이란 생각이다. 으악새 슬피우는 가을의 힐링길, 중간 쉼터에 도착해 사람들을 바라보니 얘기를 하며 제 중심을 유지한 채 건너오간다. 조명등이 설치돼 있어 이즈러진 조각달이 비친 밤풍경은 어떨꺼나? 바람따라 살아온 날들이 물결에 출렁여 어쩌면 목이 메일려나?
제일 고대하던 시간이다. 클레오파트라 콧대보다 높은 자부심일까? <내가 조선의 한우다>란 글자가 버섯에 낙인되어 제법 그럴듯한 한우고기 차림상의 맛난 점심이다. 먹거리 대부분이 수입산이건만 토종의 한우고기를 포식한 탓에 힘이나 등허리가 쫘악 펴졌다싶어 쭈욱 달려갔다.
널따란 잔디밭에 단장된 추사 선생의 생가다. <한반도소나타>를 쓰느라 제주도기념관에서 자료를 접했기에 생가로 발길했다. 집안 기둥에 걸어놓은 여러 글귀 가운데 '최고의 요리는 두부, 오이, 생강, 나물(大烹豆腐瓜薑菜요, 최고의 모임은 부부, 아들, 딸, 손자(高會夫妻兒女孫)란 글귀에 눈길이 멎었다. 건강식을 일렀으며 하비하미 소리 듣기 어려운 요즈음 세태를 예견했나보다. 우물가를 지나 탁트인 잔디밭을 거닐다보니 아람드리 은행나무 아래 주위에 떨궈진 잎새가 소복한 벤치에 앉아 한 갈래길만을 살아온 팔순을 넘긴 분들의 한담하는 모습이 매우 정답다.
끝 순행지가 삽교호로 <삽교천 유역 농업개발 기념탑>을 찾았다. 1979년 10월 26일 기념식을 마치고 귀경해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역사적인 날이다. 가신지 45년이 흘렀으나 <내 一生 祖國과 民族을 爲하여> 휘호에 담은 인생관은 우뚝하기만 하다. 나랏일 하는 지도자들이 갖춰야 할 명심보감이겠다. 가신 분의 숭고한 뜻을 기린 기념탑에서 한컷하려니 때 맞춰 배경에 갈매기가 날아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