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띄우는 편지 447

  • 등록 2026.03.31 15: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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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며-천변기행 24

다리를 건너며-천변기행 24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번잡했던 한 주의 흐름이 멎은 휴일, 몸과 마음이 한결 느슨해진다. 활짝 핀 천변의 개나리와 마주하는 시간이다.

 

뚝방길을 따라 사십여 분을 걷자, 화성에서 오산으로 건너는 세마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인도가 없는 탓에 좁다란 난간을 더듬듯 건넌다. 매번 걷던 산책길의 반대편, 낯선 길이 오히려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한다.

 

황구지천은 국가준용하천답게 널따란 모래톱을 품고, 물길은 유연하게 굽어 흐른다. 수십 년은 족히 되었을 버드나무들이 천변의 운치를 더하지만, 가시박 덩굴에 뒤덮인 나무들은 숨을 쉬지 못한 채 서서히 말라간다. 자연과 어우러진 이 풍경이야말로 하나의 공원일 터, 제철을 맞은 개나리조차 제 빛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모습이 못내 아쉽다. 이곳에도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때다.

 

그 생각을 품은 채 걷다 보니, 동탄에서 안녕리 들판으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다리를 만난다. 광교산에서 서해까지 이어지는 물길 위에는 수십 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양편을 이어주는 단순한 구조물이라기보다, 삶과 삶을 잇는 통로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문득 다리는 기억을 건너게 하는 장치처럼 다가온다.

 

어느 소설 속 징검다리 위에 웅크려 앉은 소녀의 모습이 어른거리고, 들판 위로 내려앉은 까마귀 떼와 드문드문 보이는 까치들은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의 약속을 미리 건네는 듯하다. 멀리 견우와 직녀의 오작교가 겹쳐지고,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이면, 누군가의 기다림이 스며 있는 또 하나의 다리가 떠오른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문득, 터질 듯한 감정이 고여든다.
다리는 늘 만나기 위해 놓이지만, 그 위에는 언제나 스쳐 지나간 시간과 닿지 못한 마음들이 함께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 하나 짓지 못한 삶이라 할지라도, 살아가며 비로소 깨닫게 되는 이치가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어딘가를 건너며 살아간다는 것.

 

내 두 다리가 있어 오늘도 다리를 건넌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물길 위를 지나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이어진다.

 

나는 지금, 이 다리 위에서
나의 삶, 두 다리로 시간을 건너고 있다.

김경순 기자 forevernews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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