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날에
시인.영화배우 우호태
24절기 가운데 세 번째 절기, 경칩이다.
만물이 약동하며 새로운 생명이 움트고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땅속에서 깨어난다는 때다.
개구리만 깨어나랴.
절기에 맞춰 날씨가 누그러지니 움츠렸던 내 몸도 절로 펴지고, 쭈그렸던 마음에도 생기가 돋는다. 자연의 섭리가 참으로 오묘하다.
가녀린 봄비의 빗살을 헤아리며 광교에서 용인으로 발길을 옮긴다. 저만치 앞서 걸어가는 봄맞이 여인의 자태가 참 곱다. 때이른 봄비 속에 스쳐 지나간 님의 모습처럼 휘리릭 흘러간 세월이 문득 무상하다. 젊은 날의 그리움이 얼마나 사무쳤던가.
지구촌 저 멀리서 들려오는 쿵쾅거리는 소식에 금융시장이 시끌하다 싶더니 이내 소강상태로 접어드는 모양이다. 지축을 흔드는 소리에 땅속 개구리들도 놀랐을 법하다. 녀석들의 속성처럼 금융시장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마음이 쓰인다.
행여나 하는 기대를 얹어 부평에서 지인과 두 장씩 사들었던 로또복권이 주머니 속에서 바스락거린다. 늘 꽝이건만 왜 또 사게 되는 걸까.
꽈당하기 전까지의 설레는 기다림, 그 값이 어찌 투자금액에 비하랴. 소시민의 행복이란 이런 것일 게다.
우리 삶 또한 늘 내일을 향한 기다림의 연속이다.
“흘러 흘러 세월 가면
무엇이 될까
멀고도 먼 방랑길을
나 홀로 가야 하나
한 송이 꽃이 될까
내일 또 내일.”
경칩날, 두 팔 벌려 대자연을 한아름 안는다.
봄비의 빗살 속에서 또 하나의 내일을 기다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