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다-홀릭큐브23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모든 피어남은 결국 지는 순간을 향한다. 찬란했던 꽃도 언젠가는 빛을 잃고, 꽃잎은 하나둘 바람에 흩어진다. 우리는 흔히 이 순간을 끝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자연은 그 끝을 다르게 말한다.
꽃이 지는 자리는 비어 보인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이미 다음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고 있다. 보이지 않을 뿐, 씨앗은 그 안에서 조용히 여물고 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삶 또한 이와 닮아 있다. 지나간 시간들, 끝났다고 여겼던 순간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것들. 그것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으로, 경험으로, 또 다른 선택의 힘으로 우리 안에 남아 있다. 그리고 어느 날,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시 피어난다.
끝은 단절이 아니라 전환이다. 하나의 이야기가 닫히는 순간,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 ‘처음’은 더 이상 같지 않다. 모든 경험을 품은 채 새롭게 시작되는 또 하나의 출발이다.
그래서 삶은 직선이 아니라 원에 가깝다. 끝없이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매번 다른 높이에서 이어지는 나선의 움직임이다.
지는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