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사고
시인.영화배우 우호태
이틀 연이어 드나들기 어려운 산자락 밭에 감자를 심었다.
씨감자 값에 기름값, 식대와 자재비, 세탁비까지 더하면 차라리 사 먹는 편이 경제적일 터이다.
그럼에도 손수 흙을 일구는 이유는 따로 있다.
푸릇한 새싹이 올라오는 순간, 그 생명의 기쁨이 비용을 넘어서는 까닭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농사를 놓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어둑한 산길을 돌아 나오며 한 발명가를 떠올린다.
한평생 발명에 몰두해 온 그의 사유는 이미 익히 알려진 물리학의 경계에 닿아 있다.
그가 고안한 홀릭큐브.
이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공간의 언어’라 할 만하다.
지식을 쌓는 결과보다, 과정 속에서 차오르는 깨달음을 경험하게 하는 장치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창의적 사고를 일깨우는 교육 도구로서 의미가 크다.
“새처럼 날 수는 없을까?”
“저 행성으로 갈 수는 없을까?”
이러한 질문이 비행기를 만들고, 우주선을 띄웠다.
결국 창의성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동안 글을 쓰며 생명과학과 에너지, 그리고 우주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났다.
서로 다른 영역이지만 공통점은 하나였다.
기존 질서를 넘어서는 호기심과,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집요함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창조하는 기쁨이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라고.
어쩌면 삶의 행복은, 제때에 자기 모습을 피워내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곧 인간 안에 내재된 영재성의 발현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의 전통놀이,
어깨에 짊어진 지게질,
둥글게 둘러앉은 밥상머리의 대화가
이미 창의성과 소통의 본질을 품고 있었다.
오늘날 AI와 양자역학이 이끄는 급변의 시대.
발명가는 묻는다.
기존의 교육에 새로운 가능성을 더할 수는 없을까.
청소년폰영화제, 화성영화제, 동서남북문화기행 등
창의적 시도 속에서 이어진 인연,
그리고 더 큰 꿈을 향한 요청 앞에서
나는 홀릭큐브의 가치를 다시 바라본다.
놀이이자 언어이며,
사유를 깨우는 도구로서의 가능성.
이제 그것을 해례와 응용의 틀로 풀어내어
미래 교육 플랫폼으로 확장해 보고자 한다.
홀릭큐브는 묻는다.
우리는 아직, 얼마나 더 질문할 수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