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시인 · 영화배우 우호태
글제는 어느 여가수의 노래 제목에서 빌려왔습니다.
일민 이기택 선생 10주기 추모식을 다녀온 뒤
가슴 깊이 젖어든 한 줄의 선율이기도 합니다.
이른 아침 길을 나서
국립4·19민주묘지 탑 앞에 섰습니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한 시간은
묘역을 천천히 돌며
한 사람의 생을 따라 걸어보라는
조용한 허락처럼 느껴졌습니다.
제주에서, 부산에서, 영남과 호남, 충청과 수도권에서—
전국 각지의 발걸음들이 모여
하나의 시간 앞에 섰습니다.
헌법 전문에 새겨진
“4·19 민주이념의 계승”이라는 문장이
그날의 젊은 얼굴들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함께 싸웠던 사람들,
시대를 건너 새로운 정치를 꿈꾸던 동지들,
추모사와 회고담속에 그리움은 서로의 눈빛 속에서
말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정치는 잔재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는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 한다.”
생전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주신 말씀은
지금도 바람 속에서 되돌아와
우리의 등을 조용히 밀어줍니다.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시작된 정치의 길,
거리의 투쟁과 단식,
해외 동포를 향한 교육의 걸음까지—
그의 삶은 한 시대 민주주의의
굽이굽이 흐르던 강물과도 같았습니다.
전국의 도시와 골목을 따라
현장에서 들려주시던 음성은
이제 보이지 않는 나침반이 되어
제 삶의 방향을 바로잡아 줍니다.
“이 어려운 때 그분이 계셨다면…”
누군가의 회고 속 탄식은
곧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통찰과 포용, 담대함에 대한
깊은 그리움일 것입니다.
좌우명 호시우행(虎視牛行)—
호랑이의 눈으로 세상을 꿰뚫어 보고
소의 걸음으로 끝내 도달하라는 뜻.
그 느리고 단단한 걸음이
오늘 우리 가슴에 다시 놓였습니다.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납니다.
해 뜨는 동해와
물결 너른 남해와
노을 붉은 서해를 바라보시며
바람 속에서
검은 롱코트 자락이 스치는 듯합니다.
훤칠한 풍모로 걸어오시던 모습이
아직도 그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총재님,
당신이 남긴
자유와 민주와 정의의 길—
우리는 끝내 놓지 않겠습니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어느 날 다시,
당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