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콘강을 건너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레테의 강물 같달까? 압록강에 한번 가보고 싶었지.
호새: 임진강, 예성강, 대동강, 청천강… 건너온 강도 많은데요.
돈키: 그래도 이 강은 달라. 중국과 우리의 경계를 가르는 압록(鴨綠)의 맑은 물.
두만강은 푸른 물, 예성강 모진 바람, 낙동강 강바람, 백마강 달빛….
노랫말만 들어도 귀에 스미잖아.
특히 이곳에서 남쪽 천 리 떨어진 수원고등학교 교가에도
“압록강 맑은 물 흐르고 흘러…”라 하니 정겨워.
호새: 코리아의 가장 긴 강인가요?
돈키: 백두산에서 발원해 옛 고구려 땅을 가로질러 황해로 드는 긴긴 물길이지.
청일 간 1909년 간도협약으로 잃어버린 간도도 이 강가에 걸려 있고. 조지훈 시인은 “칠백리 강마을에 술 익어 간다” 노래했지만 이 이천 리 물길에 서린 뜻은 아직 얼마나 더 익어야 할까.
호새: 강 한가운데 표시된 저 섬이 위화도인가 봐요?
돈키: 섬의 위치는 설문해자(說文解字)로 풀이해도 논란이 많은 곳이지. 단지 고려왕조만이 아니라, 한반도 역사의 물줄기가 바뀐 자리야.
요동정벌길에 올랐던 이성계 장군이 이곳에서 회군해
470여 년 고려의 대하역사에 마침표를 찍고 조선을 열었지.
청나라 봉금정책과 식민사관이 뒤엉켜 위치조차 흐릿하지만 정밀한 고증이 필요한 대목이야.
호새: 말머리 한번 돌려 세상을 바꿨으니,
이참에 ‘섬(島)’이라는 존재부터 살펴야겠네요.
돈키: 그렇지. 섬이 사람을 꺾기도, 돋우기도 하지.
우연이라 하기엔 섬은 늘 운명의 전환점이더라.
엘바섬의 나폴레옹, 위화도의 이성계, 거제도의 YS, 하의도의 DJ….
스티브 매퀸·더스틴 호프먼이 나온 영화 빠삐용의 악마섬도 결국 ‘자유’라는 인간의 본성을 바다 위에 펼쳤어.
섬은 갈라파고스처럼 단절되어 진화가 멈추기도 하지만, 인간에게는 오히려 의지를 단단히 여물게 하는 고독의 공장이지.
섬이 꼭 바다만을 뜻하는 건 아니야.
한반도도 동·서양의 경계에 선 하나의 거대한 섬.
한류라는 파동을 세계에 일으킨 걸 보면
이곳은 어쩌면 ‘반도체(半導體) 같은 섬’인지도 몰라.
호새: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시처럼,
자연도 결국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건가 봐요.
돈키: 그게 바로 꿈의 모태지.
하지만 이웃 섬나라 타짜들-히데요시, 히로히토-는
그 꿈으로 우리에게 병란의 상처를 남겼지.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 세상도 달라지는 법이야.
호새: 우리 타짜들은 여의도 좁은 섬에 갇혀서
늘 아우성인 걸까요?
돈키: 글쎄…
호새: 만약 회군하지 않고 그대로 요동정벌을 강행했다면요?
임진왜란도, 6·25도 없지 않았을까요?
돈키: 역사는 ‘만약’을 허락하지 않아.
삼전도 굴욕 후 북벌도 그랬고,
왕의 큰 뜻을 주변의 작은 자들이 번번이 꺾어버린 게 안타까울 뿐.
호새: 주인님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어요?
돈키: "만약에 내가 너라면…"
이미 거북이와 태연이 노래했잖아.
우왕과 효종이 희나리 더미 위에서
홀로 의지를 불태운 모습이 생각나구나.
좀 상상해 볼까—
강하구 경제특구 황초평보다 더 큰
백두산 국제 행글라이더 페스티벌은 어떻겠니?
호새: 전 압록강 뗏목타기 페스티벌이 좋겠어요.
동란 때 수통에 물을 담던 ‘초산용사상’ 보셨잖아요.
물은 생명이죠.
그 생명수가 이천 리를 흐른다면서요?
돈키: 강물은 생명수니까.
그래서 오래전부터 큰 싸움도 그 강가에서 터졌지.
가뭄 나면 개울 하나 트려고
논머리에서 삽자루가 날아다니던 이유도 그거야.
호새: 그럼 봉이 김선달이 팔아먹었다는 대동강 물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요?
돈키: 70년째 남북이 품고 씨름 중인
가장 어려운 문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