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터 북한땅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저기 철조망 너머… 진짜 ‘갈 수 있는 땅’ 맞나요?
돈키: 그래. 우리가 부르는 “피어린 600리” 바로 그 이북 땅이지. 본능과 경험, 그리고 상상이 세상을 여는 법. 오늘은 염력 보태서 상상열차 한번 타보자고.
호새: 임진각이나 강화도, 백령도에 가면 망원경으로 보인다던데…
돈키: 그렇지. 눈앞에 보이지만 발은 못 디디는 북녘. 지도에서 38도선을 쓱 넘겨보면 펼쳐지는 그 땅 말이야.
코로나 때문에 원래 영·호남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이쪽으로 돌아왔는데, 나도 뜬금없이 공상을 좀 해본 거지.
호새: 공상 치고는 너무 설렌다니까요?
돈키: 하하, 부산에서 화성, 화성에서 강릉까지 걸었던 사람 아닌가.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날아갈 기세지.
호새: 그런데 이게 고대 여행인지 미래 여행인지 헷갈려요.
돈키: 아득한 옛날을 떠올려봐. 압록강 너머, 선인들이 말 달리고 눈물 흘리던 곳.
사극에서나 보던 요하, 용정, 북간도…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의 그림자가 스친다.
학자들이야 깊이 들여다보겠지만, 우리는 오늘 서너 곳만 데생하듯 그려보자고.
호새: 애국가에도 나오잖아요. 동해·백두산…
돈키: 압록강, 두만강, 묘향산, 금강산… 평양, 함흥, 박연폭포, 영변약산까지.
오늘도 이산가족과 후손들은 망향가를 부르고 있을 테지.
냉면집 상호부터 금강산 관광, 옛 노래와 문학까지—북한지역의 기억은 우리 주변 어디나 살아 있어.
호새: 그러고 보면 남북을 오가는 길도 가끔 열리잖아요.
돈키: 철새도, 소떼도 줄지어 넘고, 정상회담은 생중계되고, 개성공단은 기적소리에 맞춰 문을 열었지.
부산에서 유럽까지 달린다는 ‘오리엔탈 특급열차’ 꿈은 또 어찌 되고 있을까?
호새: 그런데 현실은… 70년 동안 닫혀 있죠.
돈키: 그래도 열리면 갈 수 있는 땅이다. 한반도와 부속도서가 명시된 영토.
활시위는 오랫동안 팽팽하지만, 언젠가 한 번은 시위를 놓아야지.
최근 망명한 황장엽·태영호,... 같은 이들은 얼어붙은 대동강물에 금이 가는 소리를 들려주고 있어.
어쩌면 머지않아 우수·경칩 같은 봄기운이 찾아오지 않겠나.
호새: 6·25도 있고 긴 역사에 어린 상처도 많은데…
돈키: 그렇지. ‘통일’ 얘기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우리는 그저 흩어진 기억을 주섬주섬 모아 유람길 한번 떠나보는 거다.
언젠가 비행기·기차·자동차… 사람 발길이 자연스레 닿게 되길 바라면서.
호새: 역시 상상력이 신이 준 선물 맞네요.
돈키: 고려 문인 정지상이 노래한 “봄이면 해마다 눈물 보태는 대동강”도 걸어보고,
“그리운 금강산”을 흥얼거리며 정상에 올라 휘파람도 불어보자고.
가고자 하는 마음에 길이 생긴다잖아. 날개 돋운 호새(飛馬)와 떠나는 길, 한번 열어보자구.
돈키: 독자들과는 어디까지 가볼까? 혹시 도중에 영변약산 꽃소식이라도 전해줄 텐가?
호새: 아니, 방북 허가도 없이 무슨 소리예요? 시절이 하수상하니, 서너 곳만 얼른 훑고 돌아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