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소나타57>–영월에서

  • 등록 2025.10.05 21: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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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장에 삿갓 쓰고


죽장에 삿갓 쓰고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맹맹하니 두어 곡 뽑아봐요.

돈키: 좋지.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미스김도 잘 있어요, 미스리도 안녕히~…”

호새: 지난번 <전원일기>에도 인용된 노래 말 같아요.
“붓펜에 배낭 메고 유람 삼천리…”
“…경포대도 잘 있어요, 정동진도 안녕히~”
이렇게 개사하면 괜찮겠네요?

돈키: 허허, 김삿갓 아니더냐.
그 삿갓은 단순한 차림이 아니라,
사람이 지닌 본성-양심의 상징이야.
술 한잔에 시 한 수 읊으며 세상을 유랑하던 시인,
오늘 그 자취를 따라 영월에 온거야.

이곳은 단종의 애사(哀史)가 깃든 청령포와 장릉이 있는 고장이야. 그 비감 속에서도 난고 선생의 해학은
바람처럼 웃음을 남기지.

호새: 듣자니, 몇 마디로 사람 마음을
풍선처럼 부풀려 웃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면서요?

돈키: 그건 재주라기보다 성품에 공부를 얹은 거야.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힘들면 헛웃음이 나오는 법이지.
참된 웃음은 진심의 여백에서 피어난단다.
그분의 해학은 서민의 눈물 위에 핀 웃음꽃이었어.

호새: 그럼, 김형곤이도 그런 계보인가요?

돈키: 갑자기 웬 김형곤이야?
허허. 그렇구만. 그도 ‘공포의 삼겹살’ 애칭으로 사랑받았지. 연구하고 읽고 깨달아, 웃음을 선사한 타짜 개그맨이었어. 해학은 순간의 위트이자 행동의 품격이야. 말장난이 아니라 삶의 철학이거든.

호새: 지구촌에서도 그런 유머가 통하죠?

돈키: 물론이지.
영국의 처칠 수상도 유머의 달인이었어.
한번은 의회 화장실에서 노동당 대표가
옆에 빈 변기가 있음에도 서있자, “왜 볼일을 안 보시냐”고 묻자, 처칠이 이렇게 답했대.

“노동당은 큰 것만 보면 국유화하려고 덤비니
감히 볼 일을 볼 수가 있겠나.”
그 한마디에 폭소가 터졌지.
유머 하나로 전쟁보다 무거운 정국을 누그러뜨린 사람이지. 그게 바로 해학의 힘이야.

호새: 결국 시대가 김삿갓을 방랑 시인으로 만들었네요.
돈키: 그래, 시절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시대를 다시 빚는 법이야.

호새: 주인님이 늘 말하던 ‘覓(멱)’자 운 시가 저기 있네요.

돈키: ‘覓(멱)’자는 어려운 운이지.
한시를 지으려면 공부를 깊이 해야 해.
자, 들어봐라. 영월 산촌에서 김삿갓이
숙식 청하다 훈장에게 시로 응수한 이야기야.

<난고 김삿갓의 ‘멱(覓)’자 시>

훈장: “멱(覓)자로 운을 떼시오.”
삿갓: “허다한 운자 중 어찌 하필 ‘멱’자란 말인가.”
(許多韻字何呼覓)

훈장: “또 멱이요.”
삿갓: “앞의 멱도 어려운데, 이번 멱은 더 어렵네.”
(彼覓有難況此覓)

훈장: “또 멱이요.”
삿갓: “하룻밤 묵는 게 ‘멱’자에 달렸구나.”
(一夜宿寢懸於覓)

훈장: “한 번 더 멱이요!”
삿갓: “산골 훈장은 아는 게 ‘멱’자뿐이구나.”
(山村訓長但知覓)

호새: 웃어야 할까요, 울어야 할까요?

돈키: 허허, 술 한잔에 시 한 수.
그게 김삿갓의 인생이지.
이즘 세상에도 그런 산골 서생이,
그런 난고선생이 한둘이겠어?

호새: 그래서 오늘은 어떻게 마무리하시렵니까?

돈키: 문학관 뜰에서 들은 한마디면 돼.
한세상인데, 마음 가는 대로 살자고.

<상경(賞景>
가다 가다 서서 둘러보니
산이 푸르러 허연 바위에
틈새마다  꽃이 피어있구나
화공이 이 풍경을 그리려면
숲속 새소리는 어찌 하려나.

一步二步三步立
山青石白花開滿間
若令畫工描此景
林間鳥語奈何看
                         – 김병연 (1826~1863)

김경순 기자 forevernews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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