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칙칙폭폭이 날다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눈 내리는 날에 차창 밖 풍경,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나요?
돈키: 겨울방학전 흥부전 연극무대가 기억이 나네. “눈 내리는 겨울밤에 어디로 가나 형님께서 저러시니 애달프고나”… 초등학교 때 불렀던 노래야. 휘익―
호새: 저 레일바이크도 눈 덮인 채 멈춰 있네요. 호수마저 적막하니, 오늘은 관람이 어렵겠어요. 지난번엔 공사 중이라서 못 타봤는데…
돈키: 그래도 왔으니 주변은 둘러봐야지.
호새: 철도의 역사를 찬찬히 살펴보고 싶어요.
돈키: 웹서핑을 해보니, 최초 철도 부설에서 지금까지의 역사와 미래까지 잘 정리되어 있더군.
호새: 결국, 달리는 말이 기차로 발전한 셈인가요?
돈키: 꼭 그렇진 않지만, 편리한 이동수단이 된 건 사실이지. 옛날 ‘역참(驛站)’이란 통신제도가 있었는데, 거기에 쓰인 역말을 기차가 대신한 거야. 1899년 종로통 전차와 경인선, 1900년 한강철교, 1905년 경부선, 1906년 경의선… 이렇게 연달아 개통되면서 큰 변화가 일어났지. 다만 일제강점기엔 물자 공출에 악용된 아픈 역사가 있어. 여기까지 왔으니 인근 물류기지도 한번 살펴볼까?
호새: 칙칙폭폭 기차에서, 이제는 쌩 달리는 KTX와 SRT까지… 참 놀라워요.
돈키: 머잖아 유라시아 횡단열차도 달리고, 자기부상열차도 본격화될 거야.
호새: 땅에는 자율주행차, 하늘엔 드론, 우주에 로켓… 꼭 환타지 영화 같아요.
돈키: 아니야. 이미 도시공학자와 과학자들이 만들어내는 현실 드라마지.
돈키: 사실 퀀텀점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야. 역사학자가 어제를 살피고 미래학자가 내일을 예측한다지만, 어제·오늘·내일은 결국 물리적 개념일 뿐이지. 1·2·3차 산업혁명을 지나 4차산업혁명의 인공지능 AI 시대로 들어선 걸 보면, 발전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어. 어울린 인간의 삶도 그렇고.
호새: 점점 개인 중심으로만 흘러가는 시대 같아요.
돈키: 과거나 미래에 대한 평가는 늘 편견이 섞이기 마련이야. 선인들 말씀처럼 ‘Now & Here’,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가는 게 가장 중요하지. 기차가 달리듯 우리도 그 속에서 진화하는 거야.
호새: 쌩― 달려버리니, 옛날처럼 이쁜이 곱분이도 못 보고, 하얀 손수건 흔들던 플랫폼의 낭만은 사라졌네요.
돈키: 그럴 파트너는 있냐? 세상이 변해도 내 할 일을 묵묵히 하면 되는 거야. ‘철마’나 ‘자기부상열차’도 결국 그 흐름 속에 있는 거니까. 세상이 시끄러워도 때가 되면 의연한 지도자가 등장하듯 말이지.
호새: 맞아요. 줄행랑의 유비를 태우고 협곡 단계를 뛰어넘은 ‘적로’도 그랬잖아요.
돈키: 그래, 나라를 지킨 인물들도 다르지 않아. 장판교에서 조조군을 홀로 막아선 장비, 열두 척으로 왜군을 막아낸 충무공, 동양평화를 위해 몸을 던진 안중근 의사… 두려움을 깨고 나선 사례지.
호새: 그렇다면 지금은 ‘이불 속에서 호랑이 잡는다’는 말이 어울리겠어요?
돈키: 하하, 글쎄. 하지만 얼어붙은 호수도 때가 되면 녹아 새들이 날아들 듯, 사람도 제 때가 오면 제 꽃을 피우는 법이야.
호새: 결국 꿋꿋한 중심을 잃지 않는 게, 내일을 여는 힘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