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긴 시간을 돌며 들은 게 많아요.
돈키: 많은 걸 보아도 결국 단순한 거야. 무엇을 보고 듣던지 전체 속의 한 부분일 뿐. 왜 일어났는지 그 흐름을 살피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게 바로 역사 공부지.
호새: 수어장대(守禦將臺)는 왕궁을 지키는 지휘소 아닌가요?
돈키: 맞아. 여러 산성에 장대가 있지만, 수어장대는 사적 의미가 크다네. 후금, 곧 청나라와 맞서기 위해 도성을 떠나 왕이 머문 궁성이 바로 남한산성이지. ‘수어(守禦)’라는 이름 자체가 말해주잖나. 영화 남한산성에서도 명분과 실리를 두고 갈등하던 인조의 고뇌가 잘 드러났지.
호새: 어렵네요. 돈키님은 어느 쪽이에요, 명분이요? 실리요?
돈키: 그보다 중요한 건, 왜 그 지경까지 가게 되었는가 하는 거야. 임진왜란·정유재란을 겪고 불과 한 세기 뒤에 정묘호란·병자호란이 이어졌지. 전쟁이 하루아침에 일어났겠나? 대비가 부족했음을 돌아봐야지. 무엇보다 백성의 사기가 관건이었어. 삼전도의 치욕이나 전쟁 승패에만 매달리기보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묻는 것이 더 중요하다네.
호새: 결국 일상에서 잘하라는 뜻이군요.
돈키: 그렇지. 우리 범부는 그럭저럭 살지만, 나라의 지도자는 백성과 미래를 품어야지. 눈 가리고 귀 막으면 백성 삶이 고달파진다네. 올림픽 예선전에서 어떤 선수가 그러더군. 실점은 수비 한 명의 잘못이 아니라, 모두가 상대 흐름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노래 부르던 테스 형도 말했지 않나. “민초들이 깨어야 한다”고.
호새: 눈과 귀를 열고 흐름을 읽으라는 뜻이군요. 웹서핑을 할까요, 윈드서핑을 할까요?
돈키: 허허, 장난도 치는구나. 저기 무망루(無忘樓) 현판을 봐라. 영조 때 세운 건물이지.
호새: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치욕을 잊지 말라는 뜻인가요? 그 뜻을 이루려다 사도세자마저 뒤주에 가둔 건가요? 된서리 내리던 밤, 잠도 오지 않았을 텐데….
돈키: 당시엔 왕권보다 신권이 우위였어. 흔히 말하는 당파 싸움, 패거리 욕망이 얽히며 사태를 키웠지. 결국 고통은 백성의 몫이었고.
호새: 저편 남한강에도 인조의 눈물이 흐르겠군요.
돈키: 무망루나 삼전도비는 이 땅의 주홍글씨야. 백성은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흘렸겠나. 오히려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을 테지. 인간이 부족하면 결국 우주의 이치를 거스르게 마련이야. 사회 갈등도 마찬가지. 보태고 부추기면 파도처럼 치솟지.
돈키: 저 멀리 한강 너머엔 북한산성도 있지. 세상은 늘 짝을 이루어 돌아간다네. 젓가락, 신발처럼 말이지. “남한산성 올라가~ 꾀꼬리도 짝을 지어~.” 짝을 이루면 세상이 붕붕 뜬다네.
호새: 지난여름엔 도토리묵 무침과 막걸리가 짝이라 술술 넘어갔는데, 오늘은 막국수와 어울리겠네요.
돈키: 좋지. 해 지기 전에 후루룩 한 그릇 들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