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주부전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지난주엔 그 어려운 성리학 공부했잖아요. 오늘은 머리 식힐 겸 멋진 데 가면 어때요? 하늘은 높고, 호새가 살찌는 가을이 왔거든요!
돈키: 그래, 네 말 들으니 생각난다. 혹시 ‘별주부전’ 아니? 용왕님 약 고치려고 토끼 간 구하러 자라가 뭍에 올라와 토끼랑 수다 떨던 이야기. 토끼가 간 줄 수 없다며 버텨서 째지는 그 기분을 ‘재즈’로 풀려고 자라섬에서 페스티벌을 연다니, 가보자고!
호새: 자라 간이든 토끼 간이든 각자 달린 대로 사는 건데 뭘 거길 간다요? 근데 주인님은 재즈가 뭔지는 아시기는 해요?
돈키: 재즈? 알면 뭐 하냐, 그냥 몸이 먼저 흔들리면 그게 재즈지!
호새: 또 저번처럼 목 뒤로 젖혀 “마이웨이”나 한 곡 뽑으실거요?
돈키: 허허, 말 잘한다. 가을엔 떠나는 거야. 달빛에 들바람 불고, 강물은 물향기 실어 나르고, 솔숲에서 잣향기 은근히 풍기고… 운치가 장난 아니야. 게다가 코로나 스트레스도 훅 날려버릴 거라니까!
_휘릭!_
돈키: 근데 자라라는 놈이 원래 성실하고 지혜롭거든. 요즘 같은 세상엔 딱 맞는 캐릭터야. 자라만큼은 해야지. 넌 홍당무나 봐야 눈이 휘둥그레하지, 충직함은 글쎄~
호새: 에이, 먹는 게 남는 거니 난 잣과 강냉이나 챙길랍니다. 근데 섬이 꽤 넓어 토끼도 뛰놀고 자라도 살겠네요?
돈키: 원래 이름은 따로 있었는데 요즘 와서 ‘자라섬’이라 부른다네. 근데 말이야, 고조선 시절 주몽의 외할아버지가 ‘물의 신 하백’이었거든. 자라 별호가 ‘하백사자’니까, 비서실장이 노니는 자라섬이 단순한 섬이 아닌게지. 인근 달전리에 고조선 관련 유적지도 있거든. 아마 고조선 유민의 숨결이 배어 있는 땅인가도 싶어!!
호새: 어, 저기 커피점 보인다! 다 왔나 봐요.
_휘릭!_
돈키: 주인장, 컵라면이랑 커피, 강냉이 한 봉지요. 근데 뭘 저리 열심히 꾸미시나요?
상인: 아이고 손님, 여름 장마에 소양강 처녀 동상까지 다 떠내려가 걱정이 태산 이네요. 가을에 개최할 재즈페스티벌을 준비 중인데, 이게 또 국제행사거든요. 외국 연주자들도 이곳만한 무대는 드물다고 하더라고요. 천천히 꽃밭도 한번 둘러보시면서 강변에 물소리를 들으면 참 좋아요.
호새: 오, 다리 난간에 자라 돌상이 있네요! 토끼는 어디에 숨었을까?
돈키: 그건 상상력으로 채워야지. 자라랑 토끼가 토크쇼 진행하며 남극 펭귄이 우정 출연하거나 미키마우스가 춤추는 장면을 생각해 봐. 어때, 끝내주지?
호새: 이야, ‘자라섬 별곡’ 한 판 나오겠는데요?
돈키: 그러고 보니 저기 놀이기구 보이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딱 어울리네. 또 ‘요산요수’라 했어.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말처럼 토끼랑 자라가 그 짝이라 재즈 듀엣도 어울릴걸?
호새: 저 무대가 재즈 무대인가 봐요.
돈키: 맞다. 근대음악의 선구자 난파 선생이 YMCA에서 재즈를 처음 알렸는데, 이게 국제페스티벌로 자라섬에 자리 잡았다니, 별주부전 수궁가가 리메이크 된 셈이지!
돈키: 생각해 봐라. 오랜 세월 물길에 쌓여 생긴 섬에 꽃밭과 바람이 어우러지고, 네잎 클로버 같은 행운이 가득하니, 이곳이 바로 현대판 수궁(水宮) 아니겠냐! 그 흔한 조형물 하나 없어도 상상력이 무한히 펼쳐져 세상 시름 잊을 수 있는 북한강 한복판의 낙원인게지. 산토끼, 물자라, 거기에 재즈까지 어우러지니 정말 복덩이야!
호새: 주인님, 솔바람이 솔솔 부네요. 잣향기 불어오니, 잣자시러 갑시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