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띄우는 편지 393 (7월 26일)

  • 등록 2025.07.27 09: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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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 산행

 

맨발 산행

 

시인 / 영화감독 우호태

 

아침 이른, 먹거리를 챙겨 평생지기와 함께 양산봉으로 향했다. 오늘은 평소와는 다른 길, 발끝의 감각을 깨우기 위해 신을 벗었다.

 

맨발 산행. 문명의 단단한 껍질을 잠시 벗어던지고 원초적인 나를 마주해본다.

여린 발바닥에 전해지는 흙의 숨결, 나뭇잎과 자갈의 울퉁불퉁한 촉감이 발끝에 말을 건넨다. 눈길은 자연스레 발밑에 머문다. 의식조차 하지 못했던 작은 것들이 시야 속으로 들어온다.

 

무심코 지나쳤던 풀잎 하나, 이름도 모르는 생명들, 구불구불한 나무뿌리까지도 모두 새롭게 다가온다. 마치 셜록 홈즈처럼, 나는 풍경을 스캔하며 걷는다.

 

느린 걸음은 느림의 선물을 안겨준다. 황갈색의 대벌레 한 마리가 조용히 오솔길을 건넌다. 낡은 솔가래와 어우러져 눈에 띄지 않았다면, 등산화는 그 생을 무심히 덮고 갔을 것이다. 맨발 덕에 그 존재를 알아보았다.

 

곁길에 눈을 돌리자 노란 망태버섯이 시야에 들어온다. 갓 아래 퍼지는 섬세한 망사, 생애 두 시간만 펼쳐진다는 황홀한 자태. 이 작은 만남이 어쩌면 오늘 산행의 가장 귀한 복일지도 모른다.

 

산세가 그리 높지 않아 참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밑둥을 어루만지니, 마치 평생 농사일에 손이 갈라진 아버지의 손등, 어머니 이마의 주름골이 떠오른다. 나무의 세월이 사람의 세월과 겹친다.

 

아앗, 차돌 하나 밟았다. 어릴 적 자주 만지던 돌멩이, 장난감이 귀하던 시절의 친구다. 이 작은 돌조차도 오늘 산책을 나온 듯하다. 나란히 드러낸 두 돌멩이가 무언가 말을 건네는 듯 야무지다. 보호대를 두른 연리지 곁에서 평생지기와 폰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찰칵 한 컷에 결혼 후 서른일곱 해가 휘리릭이다.

 

조금 숨이 차오를 즈음, 산마루에 다다른다. 누군가 정성으로 만든 평상과 벤치, 운동기구들… 작은 쉼터가 반긴다. 며칠 전 선물 받은 거창 복수박을 갈아 만든 주스를 나눠 마시며, 솔바람에 실려오는 숲내음을 들이킨다. 참 좋다. 이 산, 신비한 이 하루.

 

괴테의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활발하게 생산할 때에만 사람은 자기 삶을 뜻있게 살고 있는 것”, 어쩌면 우리는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그 마음 하나로 삶을 견디고 또 견뎌온 것은 아니었을까. 그간 살아낸 우리네 시간들이 참 고결했다.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게.

 

 

김경순 기자 forevernews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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