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띄우는 편지 383(6월 16일)

  • 등록 2025.06.15 23: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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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서 우리로

 

나에서 우리로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야, 인마, 너 누구야?”

 

한때 TV 앞을 떠나지 못하게 했던 <야인시대>에서 툭 튀어나오던 그 한 마디. 중절모를 깊게 눌러쓴 사내들이 골목을 휘젓고 다닐 때, 그들은 먼저 ‘자기’를 세우고 상대를 흔들었습니다. 그 속에는 묘하게도,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나’의 그림자가 어른거렸죠.

 

“나?” 하고 어깨를 치켜올리고, “알아 뭐하게?” 하고 시선을 던지던 그 시절의 우리는, 아니 그때의 나는

참 많이도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했습니다. 검은 안경, 중절모, 단단하게 여민 검은 재킷 속에 세상이 뭐라든 꿋꿋하고 싶은 제멋의 ‘나’가 숨어 있었던 겁니다.

 

얼마 전, 문인들의 카톡방에 맞춤법 전문가를 모신다니 괜히 쓱 떠오르는 생각. 그동안 내가 그냥 흘려 쓴 말들, 조심성 없는 조사 하나, 연결어미 하나가 어쩌면 ‘내 마음’보다 더 나를 말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불쑥 생각이 나더군요. 그 옛날, 노래 속에서 만났던 ‘내가’와 ‘나는’이란 언어의 의미.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 .노래 <여러분> 중에서

 

노랫말 속 ‘내가’에 강한 기운이 돕니다. ‘내가’는 나를 움직이게 합니다. 어둠을 밝히겠다는 의지, 누군가를 위해 다 타겠다는 각오지요.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아름다운 나비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아

앞길도 보이지 않아

나는 아주 작은 애벌레…”

……………..노래<나는 나비> 중에서

 

여기서의 ‘나는’은 다릅니다. 그저 존재를 드러낼 뿐, 조용히 자신의 이름을 말할 뿐. ‘나는’은 나의 소개이지요.

 

어린 시절의 일기장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일찍 일어났다. 나는 밥을 먹었다. 나는 마당을 쓸었다...”

순박한 문장들 틈에서 하루하루를 ‘나’로 열고 ‘나’로 닫았죠. 어쩌면 그건 글 세계가 아직 서툴러, 자꾸만 어린 내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일겁니다.

 

그러던 ‘나’가, 청춘을 지나며 목소리를 키웁니다.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여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야”

 

강한 리듬, 세네번씩이나 반복되는 ‘내가’와 ‘나는’. 그건 사랑이고, 다짐이고, 간절함입니다. 세상에 나를 던지는 강렬한 외침이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내 안에 조용히 스며드는 또 다른 존재. 그건 ‘너’였고, 결국엔 ‘우리’였습니다.

 

“소리 없는 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는 우리는

눈빛 하나로 모두 알 수 있는 우리는 연인…”

……….노래 <우리는> 중에서

 

이제는 굳이 외치지 않아도 되는 사이. 눈빛 하나로 마음이 전해지는 ‘우리’의 언어가 시작된거지요. ‘나는’이란 이름으로는 닿을 수 없는 거리. 걷고 또 걷고 뒹글어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됩니다. 여섯 마디쯤 지나서 문득 돌아보니 내가 그렇게도 외치고, 달리고, 무릎 꿇고 일어나야만 그 옆에 ‘우리’가 있더군요.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그리고, 내가 다짐했던 맹세처럼. 이제 ‘나’는 ‘우리’를 위해 존재합니다. ‘내가’ 우러러보는 그 자리에 ‘우리’가 서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화성에서 띄우는 이 편지 한 장에 조심스레 ‘나’를 적어봅니다. 허나 그 끝에는 언제나, ‘우리’가 남습니다.

 

 

 

 

김경순 기자 forevernews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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