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여 들어요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날씨가 제법 쌀쌀해 두터운 점퍼에다 목도리를 한 후 집을 나섰다. 마치 지게에 고구마 줄거리를 잔뜩 걸머진 어스름녘 귀가길처럼 서둘러 움직였다. 1키로쯤에서 되돌아오며 쌈지공원에서 어깨, 팔, 다리, 허리운동을 곁들이니 전신에 온기가 돈다.
아파트단지내로 들어서니 포장차에 옥수수와 돼지족발이 어여어여 손짓을 해 발길이 머뭇대자, 아내가 어여어여 들어가 저녁식사를 하잔다.
시장이 반찬이라더니 입맛을 돋운다. 식탁위 차림을 보니, 우선 앞에 서리태 귀리를 섞은 밥이요, 그 옆에 소고기 조각과 버섯이 어울린 무국이다. 밥과 국이 기준을 잡으니, 중앙에 고춧가루에 버무린 배추가 뻘겋게 폼잡고, 왼편에는 꽁지머리 늘인 알타리와 새우젖에 들들 볶인 애호박이요, 오른편에는 애간장속에 쩔은 대하와 메밀가루 휘들러 쓴 고추찜이 놓여있다.
번거로울 상차림인지라 야아~ 정말 맛있네 아양을 떨며 상차림 양념에 대해 물으니 30여년간의 주부경력이 우루루다. 소금, 간장, 고추가루, 마늘, 파, 설탕, 감초, 당귀, 새우젓, 까나리액젓, 들기름, 참기름, 된장, 고추장, …, 등등 수 없이 등장한다. 계절따라, 음식별로 친가와 시가의 손맛이 나름 전해져와 유네스코의 음식문화 유산으로 등재할 전통적이며 동시에 첨단 과학적인 코리아의 양념 레시피다.
우리네 어머니들의 기본적 솜씨는 제철에 맞춤 요리사에다 제병사(떡)는 물론이요 생명체의 터, 흙의 디자이너이셨다. 더구나 밥상머리의 미소와 덕담으로 가정은 물론 선한 세상을 만들어 오신 훌륭한 교육자들이셨다.
어찌 손맛이 손에만 머물러 있으랴! 시각, 미각, 후각, 촉각. 청각에다 지각에도 영향을 끼치니 한국인의 두뇌가 뛰어남도 이와 상관할게다.
“왜 내일부터 나에게 밥상 차려 주려고 그래요? 국 식기전에 어여 들어요”. 미소와 따스한 정이 흐르는 밥상이다. 내일 한번 나도 해볼까? 내일 나도 한번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