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5 (수)

화성에서 띄우는 편지 537

무궁화 – 천변기행 42


무궁화 – 천변기행 42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모처럼 한 시간 남짓 몸을 울렸다. 여느 날의 느린 산책 대신 물병과 간식을 허리춤에 챙기고 천변 둑길을 달렸다.

 

보폭을 가다듬고 들숨과 날숨을 헤아리며 천천히 나아가자 활짝 핀 무궁화가 길게 이어진다. 무궁화. 삼천리 강산을 상징하는 우리나라의 꽃이다.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묵묵히 피어난 모습이 새삼 반갑다.

 

얼마쯤 달렸을까. 도로를 가로지르는 달팽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헉헉거리며 달리는 내 발걸음과 달리, 달팽이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는다. 문득 김제현 시인의 「달팽이」가 떠오른다. '조금도 서두름 없이 전속으로 달리고 있다' 그 한 구절이 시간을 잠시 멈춰 세운다.

 

그늘진 다리 아래를 지나며 달아오른 몸을 식힌 뒤 다시 햇볕 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맞은편에서는 젊은 청춘이 바람을 가르며 달려온다.
냇가에는 부쩍 늘어난 백로들이 흰 날개를 펼치고, 가마우지와 왜가리 사이에서 순백의 자태를 뽐낸다. 며칠 전 내린 비 덕분에 녹조는 한결 잦아들었고, 천둥오리의 모습도 줄어들었다.

 

비 개인 천변은 유난히 맑고 청초하다. 가시박과 칡덩굴은 길가까지 뻗어 나오고, 생태계 교란종인 도깨비별꽃도 환하게 피어 있다. 자연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계절을 이어 간다.

 

한 시간 남짓의 달리기를 마치자 세상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어느새 멀어졌다. 몸은 땀에 젖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달팽이처럼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속도로 끝없이 나아가는 것. 어쩌면 오늘 천변이 내게 들려준 가장 깊은 삶의 가르침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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