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을 지나며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충주로 가는 길이다. 한낮의 열기를 피해 이른 새벽 집을 나섰다. 구순 중반에 이른 장인을 찾아뵙기 위함이다.
한반도의 중원을 향해 달린다. 천오백여 년 전 삼국이 패권을 다투던 역사의 중심지다. 말발굽 소리가 바람을 가르던 옛길을 떠올리며 화성과 안성을 지나 충청도에 들어선다.
간밤을 설친 탓에 아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나는 조수석에 몸을 기댄 채 이내 잠이 들었다. 몇 번이고 오갔던 길이라 마음도 한결 느긋하다.
얼마나 달렸을까? 문득 눈을 떴다. 어디쯤인지 분간도 되지 않은 채 의식은 몽롱하다. 사방은 회색빛에 잠겨 있고, 두 줄기 빛이 하나의 문처럼 다가온다. 마치 어둠 저편에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듯한 풍경이다.
간밤에 접했던 양자역학과 의식세계에 관한 이야기가 채 가시지 않았던 탓일까? 현실과 꿈,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잠시 뒤섞인다.
이윽고 눈앞이 환하게 열렸다. 푸른 하늘과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제야 터널을 빠져나왔음을 깨닫는다.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일도, 터널을 지나 다시 빛을 만나는 일도 어쩌면 의식이 또 하나의 세계를 거쳐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인지 모른다. 삶은 그렇게 크고 작은 터널을 지나며 조금씩 새로운 빛을 만나는 여정일 것이다.
생각이 꼬리를 물자 엉뚱한 상상까지 따라온다.
'팔선녀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때 운전대를 잡은 평생지기가 앞을 바라본 채 담담히 한마디 건넨다.
“정신 차려요. 이제 다 왔어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온다.
으하하!
터널 하나 지나는 사이 꿈과 현실을 오가고, 우주를 한 바퀴 여행한 기분이다. 삶이란 어쩌면 이런 작은 착각과 깨달음이 어우러져 더욱 재미있어지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