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겅퀴가 가르쳐준 것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투표일 아침, 지인들과 세상 이야기를 나눈 뒤 천변 가까운 독산에 올랐다.
논두렁에는 엉겅퀴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고독’과 ‘독립’을 꽃말로 지닌 엉겅퀴는 어린 시절 함부로 만졌다가 가시에 찔리곤 했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경지정리와 기계화 농업이 확산되면서 이제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풀꽃이 되었다.
산길 초입에는 별꽃들이 반긴다. 개별꽃, 큰별꽃, 쇠별꽃 등 이름도 다양하다. 오래전부터 약초로 쓰여 온 풀꽃들이다. 곁에는 주름조개풀과 석잠풀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듯 조물조물하다. 역시 사람들의 건강에 도움을 주는 야생초로 알려져 있다.
산길을 걷다 보면 이름 없는 풀꽃 하나에도 선인들의 삶과 지혜가 스며 있음을 느끼게 된다.
생각해보면 산과 들은 거대한 천연 치유의 공간이다. 풀꽃은 말없이 향기를 내고, 사람은 그 곁에서 위안을 얻는다. 자연은 늘 인간보다 먼저 생명의 이치를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산을 내려오며 작은 텃밭의 오이꽃을 만났다. 뜨거운 햇살을 견디며 시민들의 식탁에 오를 열매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묵묵히 땀 흘리는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산 아래 다랑이논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황토빛 물논 곁에 선 백로 한 마리가 고요히 풍경을 지켜보고 있다. 투표일의 분주함 속에서도 자연은 변함없이 자신의 시간을 살아간다.
엉겅퀴는 가시에 앞서 꽃을 피우고, 별꽃은 작지만 세상을 밝힌다. 자연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
마치 영종도에서 새벽길을 달려 장모님 산소를 찾은 어느 중년의 말없는 발걸음처럼, 삶의 진실은 소란한 외침보다 묵묵한 실천 속에 있는 것이 아니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