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소나타123>– 종자연구소

  • 등록 2025.12.12 06: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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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


미지의 세계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아직 새벽 다섯 신데 벌써 나서요?
돈키: 오늘은 대관령까지 20킬로야. 열 시에 고개에서 일행 만나려면 서둘러야지. 종자연구소 지나서 대관령 휴게소, 신재생에너지 전시관까지 들러야 하거든. 오늘이 마지막 일정이니 더더욱.

호새: 마지막… 그러고 보니 여행 끝이 보이네요.
돈키: 그래. 한동안 게으름에 빼앗긴 시간을 오늘에서야 되찾는 느낌이야. 이 아침고요엔 참 이상한 힘이 있어. 머릿속 잡념이 서늘하게 가라앉고, 오직 나만 또렷해지는 순간.

호새: 길이 점점 깊어지네요. 간판 보세요, ‘오대산 콘도’, ‘오대산 산장’…
돈키: 오대산 자락이란 증거지. 산이라는 건 가까울수록 이름이 더 많이 나타나는 법이야. 저기, 당나귀 목장도 보인다? ‘돈키호테 목장’이라니 웃기지 않나? 내 별명이 돈키호텐데 말이야.

호새: 왜 돈키호테예요? 풍차에 돌진하는 그 사람?
돈키: 열정이란 게 때론 엉뚱함과 붙어 다니는 법이거든. 한여름 뙤약볕에 도보 장정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면… 뭐, DNA 속에 그런 기질이 있는지도 모르지.

<종자연구소 앞에서>

호새: 여기가 종자연구소군요. 고랭지연구소 지나니까 금세네요.
돈키: (앉으며) 어휴… 아니, 어이구…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격상되는구나.
저기 봐. 담벽에 박힌 글자, ‘종자연구소’.

호새: IMF 이후 종자회사들이 외국 자본으로 넘어갔다는 얘기 떠오르네요.
돈키: 그래. 종자를 매년 수입하니 국부가 빠져나가는 셈이지. 지하자원도 없고 인재가 자원인 나라에서 ‘씨앗’까지 잃는다는 건… 아픈 이야기야.

호새: 교수님 말씀이 생각나요. 인구 감소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했던…
돈키: 2006년, 옥스퍼드 데이비드 콜먼. 2750년이면 먼 얘기 같지만, 씨앗과 사람이 모두 줄어드는 건 오늘의 문제지.
DNA 복제기술이 어떻고, 인공지능 시대가 어떻다 해도, ‘사람이 사는 사회’를 이어갈 비전이 없으면 허공에 그린 선이지.

호새: 출산 장려에 80조 원을 썼다는데 효과가 거의 없었다고…
돈키: 그렇지. 돈만 투입한다고 씨앗이 싹을 틔우는 건 아니니까. 흙, 물, 햇볕… 사회적 토양이 무엇보다 중요한 거야. 종자연구소 앞에 서니 새삼 절박하게 느껴진다.

<오르막 끝에서>

호새: 숨이 차네요.
돈키: 몸의 피로가 정점에 닿고… 동시에 길도 정상에 닿는구나.
인생길도 이런가 봐. 올라갈 땐 힘든데, 꼭대기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지.

호새: 그러게요. 오늘 마지막 일정이라 그런지,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더 깊어지네요.
돈키: 길이 사람을 만든다니까. 미지의 세계는 먼 곳이 아니라, 이렇게 한 발짝 더 나아간 자리였던 거야.




 

김경순 기자 forevernews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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