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만 친구야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돈키: 오늘은 영일만 친구 만나러 간다.
호새: 바닷가 오두막 짓고 살던 그 어릴 적 친구요? 호미곶에서 일출 맞으면서요?
돈키: 아침해가 세상을 깨우는 법이지. 하지만 이번엔 그보다, 지구촌 밤바다를 밝히는 ‘등대지기’의 숨결이 모인 곳. 등대박물관부터 들러볼 참이다.

호새: 그럼 먼저 과메기 한사라 하고 둘러보죠?
돈키: 먹는 게 먼저냐? 배부르면 눕게 돼. 둘러보는 게 먼저지. 예의 차릴 때나 "Lady First" 하고, 싸움판에서는 먼저 선제공격이 흐름을 바꾸는 거야. 예전 6일 전쟁도 그랬어. 선방으로 승부가 갈렸거든.

호새: ‘먼저’가 이렇게 깊은 뜻이 있었네요. 선제 조건이 나머지 자원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전략인가요.
돈키: 그래. 하이테크가 시장에 진입하면 기존 기술은 바로 밀려난다. 기술 개발 경쟁이 치열한 이유야. 국가안보도 그 흐름 위에 서게 돼.
호새: 결국 미래전략적 사고와 기술력이 국력이겠네요.
돈키: 맞아. 미래를 내다보는 두뇌, 그리고 그걸 뒷받침할 경제력이지.

호새: 그럼 포스코나 포항공대가 바로 그 축이겠어요?
돈키: 그렇지. 이곳이 바로 그런 인재들을 길러내는 자리야.
호새: 포항제철 용광로의 쇳물이 산업화에 크게 힘을 보탰겠어요.
돈키: 자동차, 조선… 모든 산업에 영향을 줬지. 청동기에서 철기로 시대가 바뀐 것처럼 이나라 산업화를 끌어낸 불꽃이었거든. 고향에 김재관 박사가 우리나라 철강산업 진흥에 크게 기여했어

실버맨: 제1정문 문구 좀 보세요.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 박태준 회장님의 말씀이죠. 앞으로 나라 이끌 사람들은 새겨야 할 큰 말입니다.

호새: 요즘 화석에너지 탓에 기후협약을 맺어 신재생에너지가 뜬다는데요?
돈키: 그래서 수소가 부각되는 거지. 원자 융합처럼 큰 에너지를 내잖아.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시대에서 → 수소와 함께 이동하는 시대로 변화지. 수소차 핵심 부품에도 이곳 스테인리스강이 들어간다더구나. 지구촌 경제에 또 한 번 선방을 친 셈이지.
호새: 그럼 말 할 필요도 없겠네요?
돈키: 아니, 말도 필요해. 다만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고 눈 부릅뜨고 앞으로 달리란 말이다. 알겠어?

호새: 이제 과메기 한 접시 합시다.
돈키: 아는 식당 있냐?
호새: 근처 맛집 아무 데나 가면 되죠. 오면 다 단골이 되는 거죠.
돈키: 세상 쏜살같이 지나가네. 젊은 날 시를 띄워준 영일만 아주머니네 가야 하는데…
저기 오복집에서 곰탕 한 그릇 어때?
호새: 그러다 구룡포에서 립스틱 짙게 바른 다방 마담한테 눈 찡긋하며 차 한 잔 하는 거죠?
돈키: 그럴까. 도라지 위스키 한 잔이면 파도소리가 색소폰 소리처럼 은근해질 테지.

호새: 얼얼해지면 포항공대도 들를 수 있겠네요?
돈키: 그걸 왜 술이랑 연결하냐. 이태백도 말했지.
人生得意須盡歡, 惟有飮者留其名
(인생이 뜻을 얻었을 때는 마음껏 즐기라. 술 마시는 자만 이름을 남기나니)
호새: 그거 수소경제 로드맵에 쓰인 문구였나요? 아니면 선술집 사장님 말인가요?

실버맨: 포스코, 빨간 명찰 해룡 해병, 호미곶 등대박물관까지 봤으니 이제 포항공대 정문을 지나 시계탑에서 사진 한 장 찍죠. 학생들을 보면 대견하거든요.
호새: 보니 ‘모모’는 철부지가 아니라, 이 생을 밝히는 시계바늘이 바로 여기 학생들이네요.
돈키: 그래. 부모가 등대였다는 것을 아는 청년들이지. 장차 세상을 밝힐 빛들이야.

돈키: “생각하라. 이 나라 지킴이 무적해병 해룡의 굳센 정신이 깃든 곳.”
젊은 날 친구들과 부르던 노랫소리가 아직 생생해…
실버맨: 호미곶에 왜 손이 둘이겠어요.
“내 손 안에 들었소이다.” 보다 ‘손에 손잡고’가 이 시대에 더 어울리지요.

호새: 에구, 주식값이나 떨어지지 말아야 할 텐데…
자, 저기 찰보리빵 하나씩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