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소나타24>-행주산성

  • 등록 2025.08.26 15: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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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치마

 

행주치마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호새: 달포 전에 약속된 일정이라, 비가 와도 가는군요?
돈키: 그래, 젠틀맨 은회장, 작은 거인 송회장, 그리고 나. 오래 사귄 건 아니지만 이래저래 어울리다 보니 대화가 물 흐르듯 흘러.

호새: 은회장님, 본관이 행주라면서요?
은회장: 맞아요.
돈키: 행주 하면 뭐가 제일 먼저 떠오르시오?
은회장: 글쎄… 행주산성, 행주치마, 행주대첩, 행주대교 정도지.
송회장: 고양시 행주라… 그 넷이 다인가요?
돈키: 아니지. 행주가 낳은 은회장도 있잖소. (웃음)

호새: 초행길이라 설레네요. 한 시간쯤 걸리겠죠?

(휘리릭)
돈키: 봐라, 이 성은 4국시대 축성 기법이 남아 있단다. 한성 가까이 위치해서 옛날부터 전략적 요충지였지.
호새: 임진왜란의 3대 대첩, 바로 행주대첩(幸州大捷)이 벌어진 곳이군요?
돈키: 그렇지. 권율 장군의 지략, 관군 화포의 위력, 치마부대 아낙네들의 돌멩이 지원이 어우러져 왜군의 기세를 꺾었지. 저 높게 솟은 대첩비를 보아라, 승전의 표상이 따로 없구나.

호새: 저기, 빗방울에 젖은 행주대교 위로 자동차들이 물방개처럼 달리네요.
돈키: 그래. 저 사람들, 내 땅의 힘을 돋우기 위해 제 일터로 가는 게지. 다시는 전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웃과 힘을 모으는 거야.

송회장: 역사는 참 반복되네요.
돈키: 맞아. 백제·왜 연합이 신라·당나라에 맞서다 백마강 싸움에서 패하니 백제는 멸망했고, 이어 굳센 고구려도 지도에서 사라졌지.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했지만 동북아 판도는 다시 짜였어.

호새: 몽골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했던 13세기, 그리고 16세기 임진왜란까지… 참 파란만장합니다.
돈키: 그렇지. 임금은 도성을 버리고 백성은 유린당했어. 17세기엔 청나라에 밀려 삼전도 굴욕을 겪고, 19세기엔 청일전쟁 이후 일본 손에 나라가 넘어가 35년간 식민지의 멍에를 졌지

은회장: 거기다 20세기 한국전쟁, 수백만이 목숨을 잃었죠.
돈키: 그리고 IMF까지… 나라 곳간이 텅 비어 금가락지까지 팔아야 했으니.

호새: 왜 이렇게 반복돼야 할까요?
돈키: 그래도 버텼어. 아비 잃고 새끼 잃는 판국에도 여인네들은 치마폭으로 버텨냈지. 가야국 여전사의 바지, 백제·고구려·발해·고려 여인들의 치마, 그리고 임진왜란의 행주치마 돌멩이, IMF의 금모으기 운동까지… 모두 나라를 지켜내는데 치마부대가 있었어.

돈키: 터지고 찢기고 널부러진 이 땅의 기억들… 저 강물이 흘려 보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호새: (스마트폰으로 강물을 담으며) 저 강물이 흘러가는 뜻… 곱씹게 됩니다.

호새: 21세기는 어떤가요?
돈키: 남들은 벌써 바다 위.아래로, 우주로 갔잖아. 우리 치마부대도 자녀들을 세계 곳곳으로 내보내 나라인재 양성에 나서고 있지.

돈키: 꽤 시간이 흘렀구나. 이제 내려가자.
호새: 근처에 할머니 밥집이 있을까요?

송회장: 기념으로 행주치마도 하나 사가야죠.
돈키: 전해오는 말을 빌리면, 행주치마는 돌기둥도 돌릴 수 있고, 봄 서리도 불러올 수 있다더라. 그러니 집에 돌아가면 행주치마 두른 아내에게 잘하자고!

호새: (웃으며) 결국은 그 말씀이네요.
돈키: 삶의 변곡점마다 손에 들린 짱돌, 이제 어디로 던져야 할까?
 

김경순 기자 forevernews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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