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수((實數)와 허수(虛數)
시인/영화감독 우호태
실수는 실제 존재하는 수(Real number)이고, 허수는 상상 속의 수(Imaginary number)이다.
수 체계는 자연수로부터 차곡차곡 쌓아 정수, 유리수, ‘실수’, 그리고 다른 한편의 ‘허수’와 어울려 복소수를 구성한다. 학창시절 배운 바 있으나 가물가물하다. 새삼스레 더듬대며 글제를 언급하는 것은 정치권에 때 아닌 셈법이 등장한 까닭이다.
그간 정치권은 온 국민을 환경운동가, 의사, 법률가, 전위예술가로 변신케 하더니, 요즘엔 머리 아픈 수학공부를 시키나도 싶다.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가상 대결의 여론조사의 수치 발표가 그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는 조사주체, 기간, 방법, 내용에 따라 천양지차이기에 작위적인 조사는 세간에 정서적 공감을 이루기가 실로 어렵다. 더우기 검증된 실상과 가상한 허상과를 비교하는 조사라면 그릇된 여론을 생산할 여지가 있어 매우 신중해야 한다.
모름지기 통치자에겐 백성들과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할 젊은 날의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경험과 집념어린 사회화 과정이 필수 자격 요건이다. 이를 바탕해야만 어린 백성을 위한 경륜, 철학, 비젼이 갖춰지기 때문이다. 하여 ‘나’의 존재감은 몸 값, 나이 값, 이름 값이 함의된 ‘실수’라 할 만하다.
한편, ‘실수’와 어울려 이른바 복소수를 구성하는 ‘허수’는 비유컨대 솔향기 그윽한 산길에서 사유의 세계인지라, 사회시스템의 한축이라 할 수 있겠다.
두 귀를 여니 혼돈의 시대에 대응할 ‘미래사회 전략’이 절실하단다. 시대변화에 따른 ‘양자정부’로의 과감한 변혁도 필요하단다. 여.야 정치권은 어제도 오늘도 시끌하다. 정당별 이어달리기 러너 최종 선발도 끝났건만, 어린 백성들의 등.허리가 휘어지는데 채 ‘고차방정식’도 아닌 산수풀이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야권은 진즉 선발이 끝났다. 단일화로 시끌한 여권 지도층에 세간의 전언이다. 들판에서 지휘관 경험과 사무실에서의 참모 경험은 나름 특화된 영역인 탓에 어찌 비교할 수 있으랴만 “백성이 어리석어도 속일 수 없으며 아무리 약해도 이길 수 없음”은 만고의 진리인게다. 눈비 맞아 온 농부야말로 천심을 알지 않겠는가? ‘경전문노’, 케케묵은 궤짝에서 꺼내 펼쳐들어도 아직 의미로운 경구이다.
자문할 일이다. 나는‘실수’인가? ‘허수’인가?
정직하게 정의롭게 살아온 ‘실수’는 사회의 표상이다. 시대가 ‘실수’를 부르지 않는가? ‘실수’는 피눈물이 어린 과정의 산물이며 ‘허수’는 그것을 품는 그릇이다. ‘허수’의 가치는 ‘실수’를 품을 때 그 가치를 발한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말처럼 지지고 볶아도 정치도 정치인이 해야한다. 사계절 눈비 맞으며 농부는 들판(세상)을 풍요롭게 가꿔 왔고 기꿔 갈 사람이다. ‘허수아비’는 농부가 정성들일 들판의 풍요를 상징한다.
두 손 모으니 품으시라. ‘모름지기 사회질서 인게다.
이제 껏 보지 못한 자유대한의 ‘어른’이 되는 일이다. 3류정치를 G7 위상에 어울릴 일류 정치로 돋움할 ‘신의 한 수’, ‘허수’는 코리아 정치문명을 변화시킬 양자의 세계다. ‘허수’는 대우주를 품고 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