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글날'이다. 아름답고 고운말 한글이다. "한글날 노래(외솔 최현배 작사 박태현 작곡)"에 등장한 배달의 나라, 세종대왕, 24자, 세계 으뜸글자, … 우리의 그 소리말이 한류에 편승해 지구촌에 널리 퍼져 간다. 어느 언어학자는 중앙아시아와 중동을 비롯해 유럽과 북미, 중미지역에 걸쳐 고대 우리말과의 혈연적 관계성을 밝혀내고 있기도 하다. 말은 사용하지 않으면 잊혀지나보다. 돌아보면 우리가 겪은 근세사의 아픔이려. 어릴적 사용하고 들었던 말 조각들이 생각난다. 짱깨, 로스케, 쪽빠리, 양키 등 비속어를 비롯한 쓰던 말들을 더듬어 정리하면 꽤나 두툼할테다. 시대가 변해 그 소리말을 글말로 배우려니 여간 힘든게 아니다. 한글날에 공휴일이라 시간을 내어 아침나절의 오가락 가랑비에도 선산자락 사래 짧은 밭에 심은 고구마를 캐려고 형님과 집을 나섰다. 낫으로 줄거리를 걷어가며 삽으로 두덕을 파헤치니 달포전 손가락 정도 굵기이던 게 주먹만히 드러내 형제의 '와아' 탄성이 쌍나팔 소리다. 어제 모임에도 동창들과 나눈 반가운 '야아' 정담에 음식점이 들썩였던 터라 연일 기분이 짱이다. '와아', '야아' 소리가 절로 튀어나오니 채 '어버버'하는 바다건너 소리말과는
1949년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에 따라 양력 10월 3일 개천절은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한글날과 함께 태극기를 게양하며 국가가 행사를 거행하는 5대 국경일이다. 단군왕검이 나라를 세운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곱씹는 '하늘을 열었다-개천'의 의미가 새롭다. 서기 2022년에다 아사달(?)에 건국한 2333년을 더하면 올해는 단기4355년일테다. 어린시절 벽달력엔 음력일과 함께 단기년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베란다에 태극기를 게양 후, 개천절 노래(김성태 작곡 정인보 작사)를 나지막히 불러본다.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이 나라 한아버님은 단군이시니" 하늘이 열린 날이니 역사적 고찰과 종교적 사고를 닫자. 그 옛적에 천손으로 주변 열국과 자웅을 겨룬 한민족이다. 모진 역경을 딛고 오늘날에 이르는 아득한 그 천손이 아니던가! 반세기전 입시준비로 달달 외우던 용비어천가 2장이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그 새암과 뿌리도, 지구촌을 들썩이는 이즘 한류도 반만년의 선인들의 아득한 발길이 시원일게다. 세간이 시끌시끌 하다. 강
마라톤은 내 '몸사랑'이요, 내 '정신차림'이다. 훌훌 일상을 벗어나 코스모스 살랑이는 들길따라 활개짓이다. "기분좋은 날"이니 아릿한 시어들도 높푸른 하늘에 몽실몽실 피어나려나. 마라톤 삼총사가 늘 그랬던 것처럼 번호표 달고 발안에 자리한 종합운동장을 찾았다. 2,000년 가정의 달 5월에 시작된 생활축제다. 제23회를 맞는 "화성효마라톤"은 가족사랑, 경로효친의 정신문화가 깃든 대회다. 지역의 융.건능이 상징하는 "효"정신문화를 스포츠문화로 승화시킨 '가족사랑' 한마당 놀이이다. 출발신호와 함께 운동장을 나서 한발 한발 내딛는 발길이 땅을 울리고, 바람을 가를테다. 시월의 첫날, 아침을 깨운 시민들의 몸활개가 화성뜰을 수놓겠다. 휘이익, 쿵쿵, 깡총깡총, 아장아장… 그렇게들 제모습에 어울려 내딛는 힘찬 발길이 자연에 순응한 생명력이려. 필자도 여느 때와 달리 삐걱한 몸 탓에 도우미로 왔으나, 제1회부터 오늘에 이른 맘이 달려나가 발안뜰을 가르고 돌담거리 호수 인근, 귀신도 잡는 해병대 관사앞, 하가등리, 관리고개를 돌아온다. 내달려 나가는 선수들을 보니 불현듯 어느 가수의 노래말이 스친다. "어떻게 살았냐고 묻지를 마라 ……. …….. 어허허 어허허 속절
경기북부 킨텍스에서 열린 "한국교육의 미래" 강연회에 지인 차에 동승해 시간반여를 달려간 나들이다. 강사는 기업, 행정, 정치, 교육 등 다양한 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자율, 균형, 미래" 3대원칙을 정립한 경기교육을 이끌 경기교육감이다. 정녕, 얼마나 되었을까? 디지털문화로 지구촌 동네가 된 탓일까? "교육"이란 글자엔 '아비 회초리의 가르침과 어미 사랑의 기름'을 잊은지 오래다. 누구를 가르치며 누가 가르치냐에 의문이 없다. 그저 권위시대와 시민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다양한 개성이 표현되는 시대이다보니 인간 존엄성(?)과 어울려야 참교육이라고 부르나보다. 경계를 지은 답습된 사회제도론 다가올 미래사회에 대응하기 버겁지 않은가? 급식문제, 교육시설, 교육인원, 콘텐츠,...등 이미 노정된 여러 난제는 세간을 달군 주지의 사실이다. 스스로 문제의 해결 능력을 키우고 편향된 가치를 벗어난 중도와 지식.기술을 가르쳐 품성을 길러냄이 궁극의 교육이라면 '무엇을 가르치며,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문제겠다. 그간 기초에 치중된 교육을 벗어나 인성교육을 바탕으로 전문성을 곁들여 창의성을 돋워야 한다는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일깨운 강연이다. 한비자, 손자, 마키아벨리
글제는 청년들에게 꽤나 웃음을 주던 옛적에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등장한 대사말인데 우연한 자리에서 소개되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군기가 바짝 들면 감기도 걸리지 않는다니, 고참 병사들이 신병들의 군생활을 '정신차림'으로 다루는 말이다. 인간의 정신을 계절적 몸기운에 비교 심신을 추스를 경구이겠다. 필자도 체질인지 여름에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긴소매 옷을 입어야 했으나, 한겨울 영하 날씨에도 냉수로 샤워하고 창호지도 바르지 않은 방에서 계곡 물소리 들으며 스스로를 '정신차림'한 경험이 있기에 지인의 우스개 소리에 공감한다. 말을 늘이면, 기의 운용이 전쟁터의 승패를 가늠했고 나라의 흥망도 갈랐음은 역사서적에 비일비재하니 말이다. 물감이 풀어지 듯 이리저리 뻗은 말머리 하나가 "정직"이다. 뒤란 한켠에 비켜놓은 케케묵은 장롱에서 헌옷가지 꺼내든 듯 좌중의 표정들이 시큰둥한데... 새정부들어 연일 어깃장을 놓는 정치권의 행태에 이것도 특권인지, 왜 그리들 안달일까? 험한 꼴을 보며 스스로들 세상사를 수 없이 서핑한 탓일까? 참됨이 가르침의 표석이라던데, 그게 정치권에선 말라 비틀린 생선인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요, 전설의 고향이려. '염치'는
봄이면 뒷동산에서 들려오는 내 고향 뻐꾹새 울음에는 시골 정취가 물씬하건만 깊어가는 가을에 웬 뻐꾸기 타령인가? 코로나로 그간 중단된 야외행사에 숨통이 트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수원에서 열리는 경기마라톤대회에 참가하려 집을 나섰다. 코로나 이전에 10여년을 한결같이 주말이면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마라톤삼총사'로 불리우는 중학교 동창들과 오랜만에 열린 대회에 펀런을 위해서다. 풀코스마라톤에 완주 횟수만 해도 30여회에 달한 동창들이라 동아, 조선, 중앙, 손기정, 경기마라톤 등, 유명세 지닌 마라톤대회엔 거의 뛰었나 싶다. 여섯마디 중턱이라 그 옛적(?) 완주한 기분으로 10키로 코스에 참가하는 두 친구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았다. 근간에 결성했다는 병점러닝클럽을 비롯해 선수들의 활기찬 에너지가 운동장에 가득하다. 출발시간을 기다리며 펀런을 고대하는 동창들도 신바람이 났다. 고관절로 힘든 내몸에도 기가 들썩인다. 어쩌다 번호표 없이 대회에 뻐꾹새처럼 참가하게 되었다. 20회를 맞은 경기마라톤대회 풀코스는 수원 공설운동장을 출발해, 올해 23회를 맞는 이웃의 '화성효마라톤대회' 초기 개최 장소인 융.건릉 인근을 돌아오는 코스이다. 다섯, 넷, 셋,...카운트다운
글제는 "혼인할 남녀의 생년월일과 시간을 음양오행에 맞추어 부부로서의 길흉을 예측하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궁합보다 우선한 '관상'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눈.귀에 익었을테다. 곧 있을 '화성청소년국제폰영화제'의 이것 저것을 챙기고, 행사경비를 줄이느라 회원들과 현수막을 게시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화성동서남북을 돌아다녀 피곤한 심신을 오전에 뉘려던 차에, "띠링 띠리링, 후배님 뭐해? 들밭에 왔는데 점심이나 같이할까?" 지역 선배님의 폰이다. 잘됐다 싶어 집을 나섰다. 점심을 들고 선배님이 정성껏 가꾸는 들밭에 들어서니 배추, 무우, 호박, 고추, 고구마, ...올망졸망한 제자태 드러낸 채소들이 배시시 눈길을 맞는다. 한걸음 건너에 작은 금송들과 밭머리에 흐르는 작은 도랑물이 들밭 생명력을 돋워 운치를 더하나 싶다. 컨테이너에 마련한 화실에 들어 커피를 들며 일요화가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수원의 풍물을 비롯해 옛 기록물에 등장한 시골집, 산야, 건물, … 그림을 그린 그간의 내력을 들려주신다. 원근 구도를 약한 완성된 그림들의 채색이 담백하다. 학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물러나 취미생활로 아담한 들밭과 캔버스를 벗하니 누군가엔 로망이겠다. 이런저런 한담 끝
'장'이야, '장' 받아라! 흔히 듣던 소리였다. 느티나무 아래 동네 어른들의 심심파적 놀이가 장기판 내기렸다. "장기두던 사람 어디갔나? " 꼼짝 못하게 한수, 외통수에 걸려 땡감 씹은 것 처럼 이즈러진 순이 할배 얼굴을 어린시절 뵌게 여름날 한두번 이었나! "옛다, 멍군이네"라면 좋으련만. 중포, 면상,.. 나름의 진법이 허술해 호위 기사는 제궁궐 지키지 못하고, 제말만 하는 마(말)란 놈은 "적로"가 아닐지니 당근 맛에 취해 제배나 두드리고, 이곳 저곳 목진지를 지키던 졸개들 마저 기강이 스러져 제자리를 저버리니 쌩하니 달려야 할 수레가 덜컹덜컹 바퀴소리만 요란한 탓에 판이 날아갔다. 그날, 마을 구판장에 막걸리 한짝 매상은 이마 주름살이 깊게 패인 순이 할배 몫이요, 그덕에 한바탕 술판이 벌어지고 오후 나절 풀지게 일손들은 들판에 해거름에야 나섰다. 장기판 놀이도 제자리 제역할이 그렇거늘 하물며 우리네 세상살이나 나라살림 살피는 제자리는 어떨까? "제자리에 서" 교련 선생님 구령에 어정쩡하게 한발 더 나아가 혼쭐나던 학창시절이었다. 우주의 법칙중 하나가 "관성의 법칙"이다. 한발 한발 어설픈 나아감 보다 몸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제자리 걸음이 더욱 어
한가위 차례를 지낸 후 충주 처가로 내달았다. 명절 때에 늘 겪는 도로상의 차량 체증으로 평소 시간보다 두배 정도의 시간이 더 걸렸나보다. '충주사과' 명성에 걸맞게 도로 양옆으로 사과밭엔 주렁주렁 사과들이 달려 버팀목을 세워 휘늘어진 가지를 떠받친 나무들도 있다. 새악시 볼처럼 불그레한 사과들은 채 이른 때라 듬성듬성하다. 복스럽게 붉게 물들 풍성한 사과밭을 스쳐 지나며 사계절 어룬 농부의 숱한 손길과 발길을 상상한다. 삼년이면 수확한다는 사과밭을 휘익 스쳐 지나며 새삼스레 여섯마디 내 나이테도 언뜻 스친다. 어린시절, 가을녁 밭머리에 서성이며 배추농사를 눈어림하시던 농부인 아버지의 생전의 모습도 생각나고, 앞산너머 그루콩을 지게질로 저나르고, 한점이라도 성적을 올리려 책장을 넘기며 밤을 밝히고, 사회인으로 어엿 성장해 결혼하고, 자녀를 출가시킨 반세기 세월의 나이테 말이다. 사는 동안에 누군들 한여름의 태풍을 맞지 않았으리오. 인생구비 돌며 누군들 한겨울에 눈보라를 맞지 않았으리오. 호기심 탓일까? 유전자 탓일까? 내 모습은 유명세를 지닌 어느 발명가의 말처럼 "stay hungry, stay foolish"였을까? 아마추어 햄, 마라톤, 등산, 기행수필
프랑스의 시인·소설가·문학평론가 인, 레미 드 구르몽의 시 "낙엽"에 등장한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슴 한켠에 아슴한 꽤나 정감있는 시어 일게다. 내일이 추석이다. 방송을 듣자니 무려 3천여만 국민이 가슴 한켠에 물컹한 "고향의 멋과 맛"을 위해 오고간다니 그 발길들에 필경 "설렘"이 한 보퉁이 일테다. 그 소리를 어찌 표현할까? 반세기 전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고전에서 배운 별주부전(토기화상)에 묘사된 동물 울음 소리가 가히 일품이라 생각했던 바다. “…. 방울새 떨렁, 물레새 찌꺽, 접동새 접동, 뻐꾹새 뻐꾹, 가마귀 꼴깍, 비둘기 꾹꾹 슬피우니, 근들 아니 경일쏘냐”, 이에 더하여 대중 가수 서수남과 하청일이 부르던 “동물농장”에서도 음머, 멍멍, 꿀꿀, 꼬꼬댁, 메에에,....동물 울음소리가 등장했던 터라 부지불식간에 동물 울음소리는 친숙하게 표준화(?)가 된 듯 하다. 소리 연구가도 아니건만 새삼스레 소리에 대해 끄적거리는 이유는 세간에 언어 사용에 대한 관심 탓이다. 표준말은 “한 나라의 표준이 되는 언어. 대개 각국의 수도에서 쓰는 말을 기초로 하여 성립하며, 한국은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표준어로 정